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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Sep 12. 2019

쥐똥나무

헤이리시네마에서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를 보고 나온 길이었어요. 

영화관이 커피공장과 함께 있어 주차하기가 복잡해서 다른 게이트에 주차를 했거든요.  

헤이리는 도시가 아닌 커다랗고 둥근 동네라서 번다한 동네 길을 돌지 않고 아예 큰길가로 걸어가니 오히려 한적하더군요.  

어디선가 쥐똥나무꽃 향기가 다가왔어요. 세상에 커다란 꽃송이가 ㅡ그래봐야 검지 크기도 못 미치긴 하지만ㅡ 가득 피어나 있더군요.. 우리 동네에는 이미 지고 말아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이렇게 만개 하다니, 나무가 무성했어요. 지 맘대로 자라나서 꽃송이가 큰가 싶었어요. 길가에도 가로수는 아니지만 그 아래 혹은 화단 주변으로 라인 삼아 쥐똥나무가 꽤 심어져 있어요. 울타리목이나 경계목으로 부르기도 해요. 하지만 옆으로 퍼지지도 위로 크게 자라나지도 못하게 해서 매양 그대로에요.  조금 오래된 것들을 보면 아래 가지들이 얽히고 설켜서 가엾기도 해요 . 불만이 왜 없겠어요. 그러니 화가 나서 꽃을 아주 작게 피어내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사실은 새로난 가지에서 꽃이 핀다고 해요, 

그러니 순이 피어나면 잘라버리니 거기 어디 꽃 필 틈이 있겠냐구요. 

쥐똥나무는 물푸레나뭇과예요. 

왠지 ‘물푸레’라는 단어에는 소박하면서도 고귀한 아름다움이 느껴지곤 해요. 

인위적인 화려함이 아니라 태생적인 고귀함 같은 거요. 

그래선지 물푸레나뭇과에는 향기로운 식물들이 많아요. 

정향나무 개회나무 미선나무....아, 미선나무 향기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 생김새가 또 향기 없어도 충분할 정도로  출중해요.  더군다나 이른 봄에 피어나니까요. 

쥐똥나무....이름이 좀 하찮아 보이긴 하죠. 열매가 초록색을 지나 까맣게 익으면 딱 쥐똥처럼 생겼거든요. 숫자처럼 구별하기 좋은 이름이죠.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 누군가가 부르기 시작했겠죠. 

‘아니 어디서 이런 향기가 나지?’ 

누군가 물었을 거예요.. 누군가 대답했겠지요. 

‘아 가을에 쥐똥  같은 까만 열매 매다는 나물거야, 작년에도 보니 그것이 꽃은 볼품없는데 향기가 아주 좋더라고‘

그렇게 향기 날 때마다 사람들 물었을 거고 누군가들이 예의 쥐똥을 사용하여 대답하다가

쥐똥나무가 되었을 거예요.

정향나무도 꽃 생김새가 丁자 같아서 그리고 향기가 좋으니 정향나무가 되었거든요.   

향기라는 게 혹 사람의 인격 같은 게 아닌가 생각해봐요.

보이지 않잖아요. 

확실히 존재하잖아요.

격이 다르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잖아요.    

몰라서 그렇지, 

쥐똥나무라는 이름은 향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죠. 

예수님께도 나다나엘이 그랬거든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쥐똥나무에서 향기가 난다고?‘ 

이 두 문장은 같은 뜻으로 읽혀지는군요.

쥐똥나무 꽃향기는 우아하기 그지없어요. 

장미꽃 향기처럼 분분히 날리는 향기도 아니에요.  

가늘고 우아한 모습으로 어쩌면 곧은 형태로 다가오곤 하죠. 

 아무도 없는 길을 하마 도둑의 시선으로 휘둘러보았죠. 

그래 이 빈 길에서 누가 이 향기를 맡겠어, 차로 휙휙 지나다니는 길이니 몇 송이만  끊자, 

참고로 나는 누군가 산길에서 하다못해 흔한 현호색을 뽑아가도 

저런 무식한 짓을 하다니 속으로 겁나게 욕을 하는 사람이죠.

그러니 나는 얼마나 이중적인가요. 

그래서 나는 진보나 보수에게도 암말도 안하고 살긴 해요. 

그저 속으로만....이말 저말 하긴 하죠.

위에는 피어나고 아직 밑에는 여무지게 다물고 있는  꽃송이로 골라서 끊었어요. 

그리고 살짝 핸드백에 담았어요.

집에 가져와서 멕아리 없는  이파리들은 적당히 떼어서 유리로 된 작은 설탕기에 꽂았어요. 

꺾어온 쥐똥나무 꽃가지를 작은 유리병에 담아 책상위에 두었더니

방이 향기세상이 되었어요.

쥐똥나무 향기는 매우 서정적이라 약간 슬픔의 냄새도 담고 있어요.

문득 책상위의 쥐똥나무 향기를 더듬으며 다시 궁구해보니

어머, 이  향기, 늙음 아니야? 아네스바르다 같은 아흔 살의 늙음? 

슬픔을 이슬처럼 머금고 있는,  

무슨 선한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볼품은 없더라도 

쇠락해가며 쇄락을 느끼게 하는 향기라고나 할까요. 

     

오월이 가는 향기, 유월을 느끼게 하는 향기, 

유월은 숲이 깊어지는 달이죠. 

나도 유월처럼 쥐똥나무 향기를 담고 깊어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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