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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Nov 13. 2019

제주 항몽유적지

항파두리 토성



이번 제주 여행의 방향을 서쪽으로 삼고 숙소도 중문에서 살짝 서쪽으로 기운 곳에 잡았다.

목표랄 것도 없지만 오름 몇 군데 오르는 게 다른 때와는 조금 다르다.

몇 년 전부터 제주도에 오면 다니는 반경을 적게 잡는다.  

숙소와 가까운 곳을 천천히 다니는 것, 대신 찬찬히 볼 것, 

차를 렌트하고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으며 ‘느리게 천천히 다니세.....’를 양주는 다시 다짐했다. 

 제주는 약간의 도시를 제외하면 섬 전체가 공원이다. 그러니 이미 우리는 정원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우리 동네는 만추였는데 제주는 늦여름이다.

시내를 살짝 벗어나자 늘 푸른 나무들의 세상이다.

먼나무의 열매는 빨갛게 익어 윤나는 초록 잎들 사이에서 빛나고 담팔수ㅡ‘팔’ 자에 얽힌 이야기도 많다. 여덟 개의 이파리 중 하나가 단풍잎이라는 것, 여덟 번을 진다던가, 나뭇잎들이 여덟 가지 색이 보인다던가ㅡ의 붉은 잎이 선명하다.  

 숙소 가는 방향으로 항몽 유적지에 들른다. 단풍이 아름답다는 어느 블로거의 글을 읽었는데 빛바랜 화살나무에 내려앉은 단풍은 제주도와 맞질 않는지 시시하다. 

 <몽골과 굴욕적인 강화를 반대한 배중손을 위주로 진도에서 항몽 투쟁을 벌이다가 함락되자, 새로운 지도자 김통정(金通精) 장군이 제주도에서 투쟁을 시작한다. 삼별초군은 적의 상륙 예상지인 함덕포(咸德浦)와 명월포(明月浦)의 지세(地勢)를 고려하여 그 중간 지역인 항파두리 둘레 15리에 달하는 토성을 쌓고 성내에 건물을 짓고 삼별초의 근거지로 삼는다. 결국 삼별초군의 장렬한 전사로 제주도는 몽골의 직속령(直屬領)이 되어 무려 백여 년 동안 몽골에 공물을 바치고 몽골의 일본 정벌을 위한 준비로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하여 군마를 기르고, 산야의 나무를 베어 함선을 건조하는 군역(軍役)에 동원됐다. 공민왕 23년(1374년) 8월 고려는 마침내 최영(崔瑩) 장군을 삼도 도통사(三道都統使)로 삼아 몽골 세력을 토벌한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삼별초가 그림으로 나타나 있었다.

무려 백여 년을 몽골에 시달렸다니 그 가난하던 시절에 찬탈을 당하던 민초들이 새삼 가슴 아파왔다. 

중학교 때 목포에서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온 것이 제주의 첫 발걸음이었다. 그때 정말  멀미를 심하게 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니 아주 옛날 사람들의 배는 더했을 것이고  얼마나 긴 시간을 배를  타고 왔을까,

그 먼 길을 와서 전쟁을 하고,  최영 장군! 최영 할아버지 만세!

 항몽유적지의 토성을 걷기 시작했다.

전쟁과 성이라는 단어가 무색하리만치  내가 보았던 거의 모든 토성들은 야트막하고 부드럽고 아늑해 보이는 곡선이었다. 우리 동네 행주산성의 토성, 연천의 토성, 청주의 토성, 항포 두리의 토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른쪽 옆에서 걷다가 왼쪽 옆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토성 위도 걸었다.

자연의 거의 모든 존재는 곡선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이 만든 토성이지만 흙을 써서인지  걷는 내 마음조차 곡선으로 다독여주는 힘이 있었다.

조금씩 걷다 보니 복원해놓은 항포 두리 토성을 다 걸었다. 한 시간 정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토성 초입에 관광객을 위해 심어놓은 벌판의 꽃들만 보고 사람들은 그대로 뒤돌아 셨다.  토성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덕분에 두 양주에게만 허락된 양주의 토성이다. 

여름 지난 햇살은 부드러웠고 가끔씩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토성을 걷는 내내 집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메밀꽃 흐드러지게 심어진 들판과 가꾸지 않는 날것의 모습으로 들판이 다가오고 멀어져 갔다.

오고 가는 시간이 보이는 시간이라고나 해야 할까, 무념무상의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토성을 거의 다 걷고 돌아설 즈음 작은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 나무에 노란 꽃이 제법 무성하게  피어나 있었다. 까마귀쪽나무였다.

 열매가 쥐똥같아서 섬 쥐똥나무라고도 불리는 사스래 피 나무의 열매도 보였다. 

 돌아 나오면서도 토성을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곤 했다.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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