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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Nov 21. 2019

당오름에서 보이는 풍경

차귀도와 와도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숙소를 나섰다. 가벼운 밑반찬 거리에 누룽지 과일과 차만 있으면 아침식사는 훌륭하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먹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비중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건너 뛸 수 없다는 의미에서, 물론 먹는 즐거움이 여행의 즐거움에 방점을 찍기도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알맞은 맛집이 가까이 있으면 더 바랄 것 없으나 그게 썩 그리 적당하지는 않다. 그러니 숙소에서 아침저녁은 가능하면 해결하려고 한다. 물론 경비도 적게 들고..

 야트막한 차나무 밭이 넓게 펼쳐져 들어섰더니 오설록의 한 귀퉁이다. 아이고 아침부터 인산인해다. 슉 둘러보고 나왔다.  사람은 풍경을 헤친다, 고 말하면 썩 좋은 말은 아니다. 그러나 팩트다.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이라도 거기 사람이 그득하면 아름다움은 소멸된다. 그러고 보면 아름다움은 결국 여백이라는 뜻으로 풀이 될 수도 있겠다.

 오늘 목적지는 고산리...였는데 가는 길에 신화공원이라는 팻말이 보여 들어섰다.

그곳에서 한 시간 반 쯤 걸었다. 제주도의 소박한 곳자왈에 길을 내고 이름답게 제주도에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속 사람, 동물 설치물이 간간히 있었는데 재미있었다.

 간결하게 설명된 신화 속 이야기는 과감한 생략 비논리적 유추 그리고 넘치는 과장이 해학으로 이어져 신화라기 보다는 유머처럼 느껴졌다.

 가령 밥도 장군 힘도 장군 으라차차 궤네깃도는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 영웅신으로 한손에는 돼지를 움켜잡고 다른 손은 사람을 움켜잡으려 하고 있었다.

 설문대할망은 박나무를 타고 올라가 두?개의 해와 달을 활로 쏘아 잡아서 자신의 발밑에 두고 조정하는 거대한 신이었다.

 저절로 춘향전이 연상되는 신방산의 전설 ㅡ산방덕선녀와 그의 연인을 질투한 사또 그들의 못다 이룬 사랑에 대한 비통한 눈물이 샘을 이뤄 지금도 흐르고 있다는 데....

 문득 호접지몽이 아닌가, 장자의 나비 속 이야기가 지금 여기 펼쳐지는가, 여행 자체가 현실을 떠난 거니, 그러나 이 또한 선명한 현실이 아닌가, 현실이란 실팍한 단어가 몽롱하게 여겨지는 시간이었다.   

 사람이 거의 없었다. 거의가 아니라 아예 우리 밖에 없었다.

 호젓한 곳자왈은 오직 우리 부부의 것이었다.

 개장을 안 한, 지금 만들고 있는 공원을 걷고 있는 줄 알았다.

 들어갈 때는 아무 길이나 들어섰고 나올 때는 정문으로 나왔더니 세상에 여러 종류의 식재해 놓은 나무들이 자라나고 있었고 햇빛이 유별나게 따숩다 생각했는데 새로 난 연초록 쑥과 풀들이 함께 봄을 이뤄내고 있었다.

 하얀 꽃이 나무위에 피었는데 생김새는 이화인데 꽃잎이 저리 자라 있으니, 알 수 없었다. 내게는 가을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봄이었다. 하얗게 핀 두어그루의 나무들이 무릉도화 촌의 나른한 봄을 연상케 했다면 나 또한 무엇엔가 취한겐가,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무려 삼년여전에 문을 연 ‘신나락 민나락 공원’이었는데 뭔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활성화 되지 않고 있는 사연 많은 공원이었다. 



 고산리 당산봉 식당을 찾아서 점심을 먹었다. 젊은 청년이 쥔이었는데 자그마한 생선을 삐득하게 말려서 그대로 튀겼다. 생선은 무조건 싫어하는 내가 아주 열심히 먹었다면, 비린내를 하나도 안 느꼈다면 훌륭한 집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바로 지척에 있는 당산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이름은 당오름이었는데 뱀을 신으로 모시는 신당이 있어 산 이름이 사귀고 사귀가 와전 되서 차귀라고 불렀다는 지나치게 불분명한 설명의 패를 읽으며 웃었다.

 당오름에 대한 이야기가 어찌 차귀도로 향했을꼬,

 당오름 위에 오르니 차귀도가 선명히 보이긴 하더라만....

 제주에서 살다가 제주에 재로 뿌려진 김영갑작가의 갤러리 두모악에 가면 거의가 다 제주의 오름 사진이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이름이고 오름은 산의 제주도어다.

 제주도의 오름은 한라산의 기생화산으로 자그마한 제주의 산 모두를 오름으로 봐도 그다지 틀리지 않는다.

 무려 368개라고 한다. 당오름에 오르니 발걸음 몇 번에 사위가 훤하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겨우 몇 번의 경험으로) 제주의 오름에 서면 그곳이 어디든 절경이다.

 자연은 말 그대로 모든 예술의 근원이자 기착점이기도 한 자연스러움의 자연이기에 사람을 사무치게 한다.

생각이나 철학이나 의미나 가치를 떠난 더 큰 어떤 감정ㅡ섭리의 손길일지, 침묵하게 하는 숭고의 감정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김영갑도 한평생 제주도의 오름을 벗어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전망대에 망원경이 있어 차귀도 쪽을 바라보았더니 개미보다 더 작은 모습으로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차귀도와 와도가 푸르른 바다에 더 짙푸른 모습으로 엎드려져 있는데 마치 그 모습이 먼 바다를 향해 절을 하는 듯 겸손해 보인다. 

사람의 손이 타지 않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그분의 손짓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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