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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l 27. 2020

오란비 시간에


나뭇잎 무성해지고 숲은 더욱 짙어간다. 

오란 비 시절 지금,  숲은  여름의 정점을 찍고 있을 것이다.  

매실이 익어가는 유월 하순과 칠월 상순 무렵의 비오는 하늘을 梅天이라고 했다. 

매실이 익어갈 즈음 누군가 비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는 이 있어  梅天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을까, 

매천의 시작은 雨季의 시작이다. 

비가 오는 기간이 길어 어느 이는 장마철을 제 오의 계절이라고도 했다. 

사물을 나타내는 이름의 어원을 찾아가는 길에는 거의 언제나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웅숭깊은 서정이 숨어있다. 

오란비는 장마의 옛말이다. 말 그대로 오랜 비라는 뜻의 오란비는 1500년까지도 장맛비로 사용되었다. 

장마는 ‘長’ 과  ‘마ㅎ’의 합성어인데 이 ‘마ㅎ’는 물의 옛말로 말갛다, 맑다에서 파생된 언어로 의 '말''의 옛 형태인 ''마라''의 준말로 설명되어 있다. 즉 ''마''는 물의 옛 형태인 ''무르''가 바뀐 것이고. 

맑거나 말갛지 않으면 물이 아닌 시절의 진실함을 보여주는 단어 같기도 하다.     

강수량에 일부만 변화가 와도 몇억 명이 기아에 시달릴 수 있다는 

기후학자의 글을 생각해보는 아침이다. 우리가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 있겠는가, 


올해는 오란비 시간이 제법 길다. 

비 내리는 아침, 거실 창문에 빗방울이 부딪히고 자그마한 나뭇잎들에 

물방울 어려 있으면 마음속에 타래난초의 휨과 같은 아우라가 어른거린다.  

비는 궁리하기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그 궁리 속에 이유나 논리가 없어도 괜찮게 한다. 비의 신비로운 힘이다.  

마음 다스리는 법을 몰랐던 젊은 시절에는(지금은 아는가?)비에 홀린 적이 많았다. 

멍하니 비를 바라보고 있다가 맨발에 슬리퍼를 꿰차고 하염없이 돌아다니곤 했다. 

그저 비에 홀린 감정 덩어리였다고나 할까, 

기억건대 마음이 기뻤는지 슬펐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저 그 순간 가장 적합한 상태를 고른다면 비와의 동화라고나 할까,      

비에 대한 호감은 소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릴 적 언니랑 내가 쓰던 우리만의 방은 원래 집 건물에 잇대어 지은 

부엌도 자그마하게 있는 정말 앙증스러운 방이었다. 

그 방의 지붕이 슬레이트(지금도 이런 지붕 있을까?)였다.  

아마 양철보다는 조금 더 후에 나온 지붕이 아니었을까? 

굵은 비라도 거침없이 내리는 날이면 방안에서 하는 작은 말소리는 

거의 안 들릴 정도였다. 

얇은 여름 이불을 깔고 그 위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후두둑 거리며 빗방울이 내 몸으로 내리쏟아지는 것 같았다. 

배에 슬쩍 걸치고 있던 홑이불 자락을 목까지 덮으면 왜 그렇게 방은 아늑해졌을까,     


영화를 보면서 언제나 드는 생각 중의 하나가 영화에 음악이 없다면? 이다. 

저 스산한 모습이 과연 스산할까, 저 슬픈 모습은 과연 슬픔이 될까, 

저 황폐한 모습은, 저 소름 끼치는 광경에서 소름은 돋아나올까, 

만약 음악이 없다면 말이다

그래서 영화를 날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음악 사용을 거의 하지 않는 감독도 있다. 

음악이 주는 감정 속으로 빠져들 무렵 탁 꺼버리는 감독,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를 타는 소년’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의 이악장......

언제 들어도 가슴을 누르다 못해 키까지 푸욱 꺼지게 하는,   

영화 속에서 이악장이 흘러나와 아, 분위기를 잡으려는 순간 감독은 음악을 소리나게 탁 멈췄다.         

빗소리는 자연이 내는 음악으로 아무런 기교 없이 사람의 마음에 들이차 속절없이 만들어버린다. 

굵은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기 위하여 파초를 심는 선비의 마음은 

비의 정한을 알고도 남음이 있어서일 게다.  

뒤 안 대숲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잠 못 들어 뒤척이다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편지는 이미 사라져 버렸지만 마음속 정경을 기록하는 일이라도)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마루 위에서 무연히 들으며 가슴에 빗방울 소리를 새겼던 사람이라면 

적어도 남을 해하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을 잘 모른다. 

러시아의 오호츠크해가 녹으면서 생기는 차가운 오호츠크해 고기압도 잘 모른다.

공기 차이가 큰 이 둘이 어디쯤서 만나 생기는 전선도 잘 모른다.  

그저 맑은 물, 말간 물이 선물처럼 하늘에서 내린다. 

셀 수도 없는 나뭇잎들이 빗방울에 눌러지고 다시 살짝 오르는 순간

다시 누르는 비와 나뭇잎이  썸타는,

오란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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