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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l 22. 2020

지심도

거제 동백섬 지심도에 대한 소회


수년 전 무박 여행으로 지심도를 다녀왔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지심도를 통째로 사들인 거제시가 관광도로 개발하기 위하여 

주민들을 몰아내려고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지심도를 걸을 때 일제 강점기 군기지로 사용하기 위하여 

지심도에 살던 10여 가구를 강제이주시켰다는 팻말을 본 기억이 났다.  

그 때와 지금이 뭐가 다른가,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있어야 섬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초라하면 어떤가, 불편하면 어떤가, 

설령 그들이 살던 곳에 살면서 조금 이익을 보면 어떤가, 

나라는 국민이 잘살기를 바라지 않는가, 

도대체 사람의 흔적을 없앤다는 놀라운 발상이 참으로 경이롭다. 

섬사람들의 오랜 삶의 자취를 지워버리고 오직 삐까뻔쩍? 

아 그 천박한 상상에  ㄸ물을 끼얹고 싶다. 


아래는 수년 전 다녀온 지심도 여행기  


               

그렇다. 

달빛이 문제다. 달빛 아래가 문제다. 달빛 아래 있으면 다가오는 모든 것들이 아득해진다. 

창문에 비친 이른 새벽 항구는 어둑어둑하다.

다들 버스 안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달빛이 나를 깨웠다고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달빛 아니고 무엇이었을까.....

나는 조용한 버스 안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신발은 부드러운 고무로 되어 있어서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밤인지 새벽인지 모호한 시간 반달인데도 달빛은 휘영했다.

마치 금방 바다 위에서 솟아난 듯이 바다 위에 달이 떠 있었다. 

새벽 즈음 가장 어둡다고 한 시간은 거기 없었다. 여명이었다. 

여명은 옅어짐.... 섞임.... 물타기인 듯 싱거워지고 바래고 순해보였다.  

달빛 아래, 아무도 없는 낯선 항구에서 여기저기를 달빛과 함께 거닐었다.

달빛은 점점 더 환해지는 것처럼 여겨졌다. 

수평선에 자리 잡은 노랑 주황의 빛들이 사라지며환해지는 사위... 그 어느 순간

환하던 달빛은 낮달이 되었다. 

천천히 느리게가 아니라 어느 순간이었다.    

내 어릴 때 꿈인가 생신가 하며 누군지도 모를 다수의 사람들에게 들었던 이야기. 

죽을 때 그 영혼이 불이 되어 몸에서 나간다는.... 

그 불이 바로 앞산을 너울거리며 지나간다는 것, 

먼데 사람들 누군가가 우연히 너울거리는 영혼을 바라보며

세상을 떠난 이.... 누군가... 세상을 떠났네...... 한다는 것,    

낯선 장승포 항 새벽

그 순간 어릴 때 아득하게 들었던 이야기 속  너울거리는 불덩어리가 어디선가 나타나

달빛에 안겼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달빛이 문제다.      

여행이 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즐겁기 위해서 여행을 간다면 나처럼 뒹굴거리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편안한 집 소파에서 뒹굴뒹굴하며 스토리 찹찹한 소설책 보는 것이 

적어도 열일곱 배는 즐거울 것이다.

하루라도 집을 비우고 여행을 가려면 소소히 처리해야 할 일거리도 보통이 아니다.

하루치 일을 모아서 해놓아야 하고 갑자기 걸리는 일도 생긴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깊은 밤 혹은 이른 새벽 집을 나서야 한다는 것, 

이 나이 들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깊은 밤은 에너지가 소멸되어 있는 시간이다.

그러니 부족한 에너지를 정신력으로 대치해야 한다. 

뿐 아니라 여행은 일상을 저버리는 일인데

일상이라는 단단한 형체가 타성이 되어 사람을 제법 힘 있게 붙잡는다.    

그러므로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만큼 강해져야 한다. 뿌리칠 여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떠나면 거기 무엇이 있을까.

이제 이 나이 되니 걷는 것의 소중함을 느끼며 걷게 된다. 젊음의 생각 없는 걸음과는 확연히 다르다.

늙음은 어디에서나 시간을 신선하게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시간이다. 

젊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젊음이 지닌 태생적 한계로 인하여, 

마라톤을 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러너스 하이.... 같은 것이다.     

공부하는 것, 독서를 하는 것 음악을 듣는 것, 

그러니까 모든 행위 자체가 여행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럼에도 왜 굳이 여행을 떠나는가. 

여행은 새롭게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여행 아니면 어디에서 바닷가 여명의 빛을 보는 나를 바라보겠는가.

달이 어느 순간 낮달이 되는 것을 처음 안 나를,

새로운 하늘과 바다와 거기 깃들어사는 배와.....평소에 몰랐던 무엇을 바라보는 나를, 

낯선 항구의 향취 속에서 스스로 어둑한 그림자가 되어 걸을 수 있는 나를,

그 희미한 것들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나를 본다는 것은 나를 생각한다는 일이고

나를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생의 근원에 대해 성찰하는 일이다. 

설마, 그렇다면 생의 답을 얻었는가. 물으실 그대는 아니시리라.     

여행 편지는 여자들만을 위한 여행클럽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말을 하거나 미소를 짓지 않아도 된다는 일이다.

자거나 생각하거나 책을 읽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버스 안에는 공인된 무심함이 흐른다. 

함께이면서 혼자인 것, 

그래서 외로운 듯 외롭지 않다.

그래서 외롭지 않은 듯 외롭다.      

깊은 밤 집을 나서 충무로에 가서 버스를 타고 밤새 내 버스는 달려 장승포항에 다다른다..

새벽 6시 20분에 굴 국밥을 먹는다. 국물이 시원하다.

무박 여행을 갈 때 여행편지의 아침과 점심은 소박하면서도 괜찮다. 

리더 김휴림 씨는 뻥이 없다. 볼수록 여행의 고수라는 사실이 그 <뻥 없음>과 함께 

은근하게 엿보인다.

“사람 손 가득한 외도보다 자연스러운 지심도가 한 열 배는 좋아요.”

그렇다. 나는 한 열세 배쯤 더 좋았다.  

배를 타고 동백이 지천이라 동백섬이라고도 부르는 지심도에 들어선다. 

섬이 마음 心 자를 닮았다고 한다.

그러니 지심도에 가는 것은 아마도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지심도의 동백은 뭐랄까....꽃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그보다 동백나무들은 곷나무가 아닌 그저 나무가 되고 싶은 듯 했다.  

거대하고 장대한, 그러면서 무심해 보이는 나무.

꽃으로 사람의 시선을 호리는 그런 나무이기보다는 그저 나무이고자 하는... 

지심도에는 거대한 후박나무들이 몇 그루 있었는데 수많은 동백나무들이 

후박나무를 멘토로 삼고 살지 않나,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꽃과 열매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내보냈다가 거둬들이는 성숙을 향한 일념이 가득한 나무.

그런 후박나무를 동백나무는 본받으려고 붉은 꽃에 마음 쓰지 않겠다는 듯, 

꽃, 지가 간절히 원하면 그래 그렇게 원한다면 피려무나...허하는 듯, 

동백나무 치고는 엄청 크고 거대한 몸에 꽃을 몇 개씩만 드문드문 매달고 서 있었다.

설마 거기까지 의도했으랴?그러나 그 소소한 모습이 고상해 보이더라는 것,     

수많은 길에서 하염없이 생이란 길을 생각하고 많이 걸었다.

지심도에서 공곶이 그리고 멍게비빔밥 거제도 포로수용소 여러 사람과 부딪히던 하루

그러나 하루 종일 혼자였던 길

돌아오는 밤길. 피곤했다. 그래선지 조금쯤 슬프기도 했다 

삶의 마지막도 그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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