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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ul 21. 2020

여름, 벌레의 계절

모기가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이유


어제 오후 가까운 네 부부와 함께 삼  대신 능이 버섯을 넣은 능계탕을 먹었다.

뚝배기에 담겨서 펄펄 끓는 능계탕은 국물이 시원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모두 함께 지인의 농장으로 갔다.

자유로가 훤히 보이는 넓은 들판이었다. 

이미 그 넓은 하늘만으로도 모두 활짝 개였다.    

바람은 부드럽게 불어오고 비 온 뒤 하늘은 푸르고 깨끗했다. 

잠시 후에는 붉은 석양의 빛으로 물들어 왔다.

개와 고양이 시간의 비밀은 세상을 잊게 하고 시간에 집중하게 한다는 것, 

우리는 해저물 무렵의 매직에 푹 빠졌다.  


마치 채소 전시장 같았다. 

고추 부추 호박 참외 수박 고구마 더덕 도라지 가지 토마토 대파 옥수수

아로니아도 따가라고 했는데 벌레 때문에 따지 못했다.

참외는 달고 수박은 비온 뒤라 금방 따서 먹는데도 시원하고 달았다.

다들 열심히 열매를 거둬서 똑같이 나눴다. 나중에는 캐논 감자 까지 나눠주시니

세상에 커다란 박스를 둘이서 들어도 낑깅거린다.

살짝 어두워지니 모기가 등장할 때라며 떠나야 한다고 하신다.

사실은 이미 나는 모기에 세네 방 물렸었다.  


  

 이상하게도 네 남매 중 작은 오빠와 나만 하얗다. 그래서 작은 오빠는 이름 대신 친구들에게 백새야! 

(이 백새가 고니의 사투리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라고 불렸고 

나는 노락쟁이(노랑머리)라는 별호를 달고 다녔다. 

이즈음은 아이들이 샛노랗게 염색을 하기도 하지만

그때만 해도 노락쟁이란 별명은 그다지 좋은 어감은 아니었다.

미운 말 잘하시던 사촌동생 할머니는 내게 그러기도 했다. 

‘아야, 느그엄마가 으디 돌아다니는 이상한 사람이라믄 느그아부지를 다른 나라 사람으로 알겄다. 잉,’ 

이젠 늙어가면서 투명하던 피부도 점점 어두워져 가고 점도 생기기 시작하니

살빛 좋다는 말도 아득한 옛날이야기다.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만난 동창의 첫마디는 너 머리가 까맣네, 였다. 흰머리 염색 탓이지......

   

피부가 희어선지 어렸을 때부터 두드러기가 자주 났다. 음식을 잘못 먹든지,

하다못해 맨 다리에 풀이 스치기만 해도 붉고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진짜 공주는 열두 겹 비단 이불 아래에 콩 반쪽이 있어도 밤새 내 잠을 못 이룬다는데

전혀 공주답지 않으면서 공주티를 내는 유일한 곳이 바로 이 피부이다.     

거짓말에 대한 첫 기억도 바로 이 두드러기 피부 때문이다.

 

여름이었을 것이다. 엄마 닭이 병아리들을 끌고 마당가를 여기저기 거닐고 있었고, 

나는 샘가에 놓여진 나무로 된 통에 들어가야 했다. 

엄마가 두드러기에 좋다고 한 밤나무껍질을 삶은 물이다. 물은 검고 뜨뜻미지근 했다. 

물 마른 시멘트 바닥에 검은 물을 뿌리기도 하고 검은 물속에서 하얀 팔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놀았다. 

엄마가 아랫집에 잠깐 다녀오신다면 대문을 나섰다. 얼마나 지났을까, 

깨당 벗은 아이가 통 안에서 일어나 병아리처럼 엄마 닭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아이가 다가가면 도망가는 닭이 잼있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싫증이 난 아이는 다시 검은 물 담긴 통속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삐꺽 열리는 대문,

오메 울 애기가 아직도 이라고 물속에 있네, 오메 세상에,.........

그 때  물에 내내 있었다는 상으로 달콤한 엿을 먹었을 것이다. 

보자, 

밤나무 물 사건 이후 하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가, 

그런데도 그 기억이 이렇게 선명한 것은 사실이 아닌, 거짓에 대한 예민한 각성이 아닐까,  

   

모기가 흰 피부를 좋아한다는 속설을 나는 믿는다. 

사람들끼리 모여 있을 때 모기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나다. 

여름녘에 나와 함께 야외에 있으면 그가 누구이던 모기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모기는 내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모기처럼 모두가 나를 좋아한다면, 세상이 조금 달라졌을까? ㅎ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세상이 조금 이상하게 보였다.

익숙한 방이 익숙하지 않았고 엄마 아버지 언니 오빠도 기괴해 보였다. 

눈 주위를 모기가 물어 퉁퉁 부어올라 한쪽 눈이 떠지지 않았다.

거을을 보니 허연 얼굴에 분홍 혹이 왼쪽 눈 위에 달걀만큼한 크기로 불어 있으니 

실제 괴물은 바로 나였다. 

학교는 죽지 않으면 꼭 가야할 곳이라던 엄마가 학교를 가지마라 할 정도였으니,

무엇보다 벌겋게 부풀어 오른 자리가 얼마나 가렵던지, 

가려워서 긁기라도 하는 양이면 또 얼마나 쓰리고 아프던지, 

붓기가 가라앉은 후에도 틈만 나면 가렵고 긁으면 쓰라린 기운은 여름 내내 계속되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와서야 자취를 감추는 여름의 고질병이라고나 할까,    


모기는 젖은 물바닥 정도의 깊이만 되면 알을 낳아 번식하고 

한 개체의 순환 주기가 매우 빠르다고 한다. 

모기의 한 종류인 사막모기는 낳은 알이 성충이 되어 다시 알을 낳기까지 

고작 일주일밖에 안 걸린다고 하니, 원. 세상에,    

그런 모기도 나름 취향(?)이 있어 에스트로겐 분비가 많은 고운 피부를 선호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모기왈 

<내 비록 고운 피부를 좋아하고 향수나 땀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에게 피를 빨기 위해 침을 꽂지만,

나의 타액이 그대들 몸에 들어와 화학 반응을 일으키고 염증을 일으켜 괴롭고 성가시게 할지도 모르지만,

혹 무서운 우리네 친척에게 잘못 걸리면 황열이나 댕기열 말라리아에 걸려 돌아갈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그대들 몸에 침을 꽂는 이유는 단 하나다.

동물성 단백질을 얻기 위한, 내 새끼들을 위한, 즉 우리의 역사를 위한 것.>  


창문을 열고 베란다 식물들과 눈 맞춤 하는 것이 아침 상례다. 

이삼 년 동안 소식도 없더니 세 그루의 덴드롱이 꽃을 피워서 

그것도 아주 많이 여기저기 피어나서 두 달 이상 피어나 있다. 

처음에는 연두색으로 조그맣게, 그러다가 흰색이 되며 꽃송이가 커지고 꽃잎이 벌어지며 빨간 꽃술이  나온다.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 빨간 꽃술이 떨어지고 다시 입을 다문 형태로 오래오래 피어나 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선지 하얀 꽃잎이 마치 단풍처럼 살짝 보라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근데 오늘 아침 그 덴드롱 꽃잎에 다시 또 빨간 꽃술이 생겨난 것이다. 

꽃인가...다시 또 피나? 하며 바라보는데 잘 보이지 않아서 사진을 찍어서 확대해보니 

허걱, 분명 이상한 벌레다. 벌레 위에 빨간 알을 슬은 것 같은....

아이고 귀신이라도 만난 듯 소리를 지르며 남편을 불러서 이것 잘라 없애라고... 

너무 소름이 돋아 사진도 순식간에 삭제해버렸다. 

추론컨대 무슨 벌렌가가 덴드롱 꽃 속으로 들어갔고 

그 벌레를 빌미 삼아 무엇인가 알을 슬은 게 아닐까,

베란다 바닥을 락스를 물에 타서 청소하고 화장실 두 곳도 94 마스크를 쓰고 락스로 소독을 했다.      


'모기가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이유'라는 동화책은 그림도 재미있고 글도 재미있다. 

농부가 고구마를 캐는데 그게 모기만 했다는 거짓말을 이구아나에게 모기가 말한다. 

그 일로 파생한 이야기들이 대추나무 연 걸리듯 걸리더니

결국 슬픔에 빠진 올빼미가 해를 불러오지 못하자 밤만 계속된다. 

처음 거짓말을 시작한 모기는 맨날 귓가에서 앵앵거리며

"아직도 다들 나에게 화가 나 있어?" 묻는다는것..... 

그러면 아주 솔직한 대답이 돌아오는데 그 대답은 "찰싹" ^^*    

 세계 모기의 날도 있다. 8월 20일. 1897년 영국 출신의 의사 로널드 로스가 암컷 모기들만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것을 발견한 날이다. 숫모기는 비건이다.      

      

시골 텃밭에 대한 로망은 여름 이렇게 습할 때 벌레들을 보면  

 그믐밤 달처럼 슬며시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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