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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Sep 15. 2020

初秋斷想

박정자 이것은 정치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가을은 갑자기 왔다. 

태풍이 가을의 덜미를 잡아다 부렸다.

그이의 발걸음이 심상찮다. 

아침 창문을 열 때 다가오는 서늘함은 벌써 수십 번을 넘게 경험해온 것인데도 새롭다. 

밤이 되어 산책하러 나갔더니 서늘함이 싸늘함으로 변해 있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낮의 기운처럼 구름은 어둡게 하늘 위에 떠 있고 구름 사이 별들은 더욱 아득해졌다. 

가을이다. 

하긴 백로가 지났다. 

흰이슬 내리는 계절이다. 이슬은 바람이 약하거나 불지 않는 맑은 날 밤에 생성된다고 한다. 

그만큼 고요하고 가만히 생긴다는 거겠지. 

천하가 태평하면 단 감로....가 내리기도 했다는데 

어쩐지 옛날의 이런 이야기들은 내게 슬픈 정한을 일으킨다. 

자연의 신비에 기대어사는 선하면서도 가느다란 임간의 심성이 보여서다. 

<담, 달다>의 결도 무수하겠지. 


박정자의 책<이것은 정치가 아니다>을 샀다. 

그이의 에세이....워낙 그이의 책이 어려워서 좀 쉬우려나 쉬운 글로 그이에게 다가서 볼까 해서다. 

그리고 예측대로 그가 쓴 어떤 글보다 쉬웠다. 

더불어 그이의 정치적 성향일지 사회적 인식 같은 것도 눈에 보였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언제나 우파에 투표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회의 정의가 어디에 있느냐? 묻자 

‘우리가 수백 년 전 과거의 사회를 기억하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창조해 낸 작품들 때문이지 

그 사회가 얼마나 평등했냐의 여부로 기억하는 것은 아니잖소’ 

그리고 말미에 그의 삼면화가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썼다. 

박정자는 이글 뒤에 이렇게 적고 있다. 

좌파여야만 고상하고 지적인 고정관념 속에 사는 지금 

베이컨의 예술가 정신과 인생의 통찰이 우리의 마음을 자유롭게 한다고, 

베이컨의 문장에서도 한계는 있다. 

기억은 매우 중요하지만 모든 것일 수는 없다는, 

멀리 갈 것 없이 뇌에서 행해지는 일만 해도 그렇다.

뇌가 하는 그 수많은 일 중 기억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기억들로 인해 선택하고 결정되는 부분도 많겠지. 

지금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도 기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또 하나의 오류?는 베이컨의 ‘최고가’를 살짝 얹으며 그의 이론에 논리의 근원을 삼았다는 것. 

돈은 필요한 것이지 논리를 부여해주는 가치는 아니잖는가, 

특히 예술과 정신의 영역에서는, 

그러니 결국 그이도 자유로운 삶과 최적의 작업(삶의 환경 및 양태 등등)을 

좋아하고 즐기고 있다는 빙증일 것이다.

즐기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적어도 예술 철학을 하는 사람의 근거치고는 빈약하질 않는가, 

그의 쉬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도 들었다. 

모든 친근한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쉬운 것 역시 그렇다. 

미술과 철학에 대한 혹은 미술사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나이 들어서는 더욱 계속 그 방향으로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글을 써야하지 않을까, .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까지 쌓아온 지력으로 

정치에 관한 이야기나 사회에 관해 이야기 해야 한다고? 

머리를 써가며 혹은 자료를 뒤적이며 새로운 이론이나 학설을 만들어 내거나 

삼천 페이지가 넘는 사르트르의 책을 읽는 일보다

(나는 이런 부분에 그이를 무한 존경할 수밖에 없다) 짧은 글은 쉽고 명료해서 쓰는 즐거움도 줄 것이다.

거기다가 책이나 이론 보다는 훨씬 더 반응이 뜨겁고 즉시적일테니.... 

아, 선생님 글 신문에서 읽었어요. 너무 좋았어요. 

이런 찬사가 사람을 기쁘게 하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라면 흠도 치도 되지 않을 일들이 

유명인에게로 가면 엄청난 일이 된다. 

학자들도 그렇다. 

학자는 무엇보다 미래를 내다봐야 하고 정확해야 하고 그가 가리키는 곳이 어딘지

매일 새롭게 응시하며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취향의 글은 사석에서나 혹은 간직하고 있는 것이 맞다고 여겨지는데

그이보다 훨씬 더 우매한 사람의 생각이니...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으랴?


돌과 모래로 만들어진 정원을 나오시마 섬에서 봤다. 

석정이라고 하는데 일본 말로 카레산스 枯山水(마를고는 나무가 오래되어 마른)라고 한단다. 

이 석정이 일본의 와비사비ㅡ 단순하고 소박하고 오래된 것들이 가치 있다는 생각이다. 멋지다!

가끔 일본에 대한 이런 글을 읽을 때면

그들의 문화 속에 어찌 저리 흉내내기 어려운 고요하고 고급한 문화적 사고가 가득할까 부럽기조차 하다.  

사막에서는 이슬이 강우가 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사막지대인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이슬로 표현하기도 했다. 

생명의 근원으로 여긴 것이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서늘한 바람이 들이차는데 

그게 왜 그리 슬픈지 모르겠다. 

가을이 저렇게 큰데 온 세상에 가득차 있는데 

내게 다가오는 가을은 얼마나 작은 부분인가,

내가 느끼는 아주 작은 부분을, 정말 가을이라 할 수 있는가, 

가을에는 책을 읽어도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바라봐도 밤하늘의 별을 찾아도 

그 무엇을 해도 충만치 않다.

나의 어떤 행위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 가을이 지닌 <빔>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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