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피 묻은 옷을 받는 야곱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1599-1660)

by 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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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최고의 바로크 화가이다. 그가 그린 유명한 그림 <시녀들>의 주인공은 펠리페 4세와 마가리타인데 실제의 인물은 잊히고 사라졌지만 작품 속 왕과 공주는 지금까지도 싱싱하게 살아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초상화로 인정되는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도 해가 갈수록 그 위용이 높아만 가니 중국 진시황과 달리 서구의 권력자들은 예술이 ‘불로초’라는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이 아닐까,

그가 1630년에 그린 <요셉의 피 묻은 옷을 받는 야곱>은 창세기 37장이 그 배경이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을 애굽 상인에게 판 뒤 요셉이 입었던 화려한 채색 옷에 숫염소의 피를 적셔 야곱에게 가져가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묻고 있다. 요셉을 지칭하는 ‘당신의 아들’이란 호칭은 그들의 차가운 내면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그림답게 명암의 대비가 선명하다. 환한 빛은 요셉의 옷을 비추이고 있는데 야곱의 눈은 오직 요셉의 옷으로만! 향해 있다. 야곱은 요셉의 형들이 원한 대로 요셉이 들짐승에게 잡아먹혔다고 믿는다. 두 팔은 활짝 벌려져 놀라움과 슬픔을 극명하게 내보이고 있으며 금방이라도 털썩 주저앉을 것 같다. 어쩌면 벌떡 일어나 요셉의 옷으로 돌진할 것 같기도 하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참척으로 인해 넋이 나가버린 찰라다. 야곱 곁에서 슬픈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는 형제는 거짓말의 파장과 그 일이 자신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오직 자기만을 생각하는 극도의 이기심. 그 뒤의 형제는 아버지와 거짓말하는 형제를 번갈아 보면서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고 있다.

마치 벽이라도 쳐댈 것처럼 탄식의 눈물을 지어내고 있는 형제의 뒷모습, 요셉의 옷을 쥐고 있는 옆모습과 앞모습은 거짓말을 극대화 시키고 있는 작가의 장치이다. 슬픔으로 위장한 채 거짓을 더욱 강화시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 우리 몸의 신경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체신경과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자율 신경으로 나뉘는데 거짓말을 할 때면 저절로 자율 신경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요셉 형들의 팽팽하게 살아 움직이는 몸의 근육은 입에서 발해지는 거짓말에 대한 몸의 정직한 반응일 것이다.

가장 앞서서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고하고 있는 검은 옷을 입은 형제의 표정은 양면적으로 읽힌다. 야곱의 얼굴을 치밀하게 살피고 있는가 하면 아버지의 슬픔에 자신도 같이 놀라며 슬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짓말과 양심이 한 표정 안에 풍부하게 교차하는 미묘한 지점을 절묘하게 포착 표현해 냈다. 외면 속에 그려지는 내면에 대한 표현은 철학적 이기조차 하다. 회화의 최종목적지는 詩라고 하던가.

개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요셉의 옷에 묻은 피가 다른 동물의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온순하던 개는 꼬리까지 바짝 세우면서 짓고 있지만 거짓말속에 몰입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개짓는 소리ㅡ진실의 소리는 무시되거나 아예 들리지 조차 않는다.

내용에 걸맞게 전체적으로 어둡고 답답한 그림이다. 겨우 숨통을 틔어주는 곳은 푸른 하늘과 나무가 보이는 창문이다. 창밖 풍경은 방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객관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창은 거울이 되어 거짓말 하는 사람들을 비추지만 아무도 그 거울에게는 관심이 없다. 어쩌면 요셉의 팔림은 그의 채색옷 때문인지도 모른다. 야곱이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다 하더라도 그에게 채색옷을 입히지 않앗더라면 다른 형제들과 공평한 옷을 입혔더라면 요셉의 형들은 그렇게까지 모진 행동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옷은 사람보다 먼저 눈에 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빼앗거나 혹은 증오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요셉에게 채색옷을 지어줄 때 야곱은 자신의 과거가 기억나지 않았을까, 축복을 빼앗기 위하여 형의 좋은 옷을 가져다가 입고 아버지 이삭을 속인 것을 기억했다면 어쨌을까, 결국 에서의 옷을 입고 아버지 이삭을 속인 야곱은 다시 또 자신이 만들어준 요셉의 채색옷으로 아들들에게 속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사랑의 증거였던 채색 옷이 죽음의 증거물이 되어 야곱에게 돌아왔다. 에머슨은 의복에만 마음이 쏠리는 것은 마음과 인격이 잠든 탓이라고 했지만 개들도 옷 잘 입은 것을 존경하여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은 공격하려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요셉의 형들이 입은 짧은 튜닉과 가짓수도 많고 색깔도 다양한 요셉의 채색옷을 바라보며 그 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자는 성함을 입었다. 감히 예수님께 어떤 것을 바라지 못하고 그저 옷자락이라도 한번~ 하는 간절한 마음에 대한 응답이다. (나사렛 신문 2016 7월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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