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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an 13. 2021

겨울이 사라지기 전

사람없는 겨울 숲

겨울숲        

겨울이 사라지기 전 사람 없는 겨울 숲에 들어가 볼 일이다. 

텅 빈 주차장에 차 하나 동그랗게 서 있는 드문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차가 외로워 보일 때도 있구나,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자박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발걸음 소리를 벗 삼아 걷는다는 것은 아주 오래전 동화 시대나 있을법한 일이다. 

숲마저 고요함을 잊은 시대, 

그러므로 사람이 없는 곳은 어디나 동화의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등식이 

겨울 숲 어귀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겨울 숲이 무수한 동화의 끝처럼 즐겁고 기쁨이 가득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말일이다.  

입춘대길처럼 길한 일이나 건양다경처럼  따스한 기운이 가득하여 경사스런 일이 많을 거라는 

입춘첩의 바램도 겨울 숲에서는 아서라, 아설일이다.  

겨울이 가려하는, 그래도 여전히 한겨울인, 겨울이고자 하는 겨울 숲에 들어가기 전  

그저 긴 숨을 한번 크게 토해낼 일이다. 

그 한(大)숨에 가능한 한 자신을 실을 수 있을 만큼 실어 내버리고 겨울 숲에 들어설 일이다. 


마음이 가벼워지면 몸도 가벼워지리니 겨울나무를 아득하고 너른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나무의 사체가 여기저기 보일 것이다. 헐벗고 깡마른 모습일 것이다. 

아마도 죽은 지 꽤나 되었을 이제는 그저 메마른 모습일 것이다. 

기실 겨울나무 가지는 희망이 빚어낸 환상 속에서 

초겨울 펑펑 내리는 함박눈조차 아름다이 여겼을 것이다. 

차가운 바람도 그저 든든하게 견뎌냈을 것이다. 

봄이 오리, 그 사랑스러운 아이가 다가와 부드러운 입술로 키스해오면 다시 잎 피워내리. 

무성하게 피워내리 다짐하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상했겠지. 목이 말랐겠지. 배가 고파오지 않았겠는가? 

고개를 주욱 빼서 자기 옆의 가지에게 물어보지 않았겠는가? 

너는 배고프지 않니? 너는 목마르지 않니? 

옆의 가지는 새초롬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아니, 나는 괜찮은데, 

이상하다. 참 이상하구나, 왜 이렇게 목이 마른 것일까? 

그러다가 어느  바람에 몸이 싹뚝 꺽일 것이다. 

나무가  바람에 힘입어 자신을 떨구어 낸다는 것을 가지는 그제야 생각했을것이다.    

나무의 사체가 죽음을 안 시간, 

그 때 땅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설련화의 뿌리는 거대한 굉음을 듣게 될 것이다. 

지구를 뚫어가는 송곳 같은 날카로움이지만 

그래도 품위를 잃지 않고 표표하게 자라나기를 계속할 것이다.

차가운 시간이다.  

거기 어디 만남도 있을 것이다. 

이미 수년 전 깊은 가을 이별하며 다시는 만나지 못할 줄 알았던 형제들을,  

이별할 때 왜 아프지 않았겠는가마는 그런 게 삶이려니 무심한 듯 담대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신세가 되어서야 보니 설움이구나 슬픔이구나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하나이듯 정겹게 껴안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땅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죽음의 가지가 땅을 향해갈 때 

묵은 눈을 이불 들치듯 살짝 들치며 땅 위로 설련화 피어오를 것이다.

죽고 사는게 지척이란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같은 자리에 거하지만 죽은 가지는 땅을 향하고 어름새 꽃은 하늘을 향한다. 

   

자세히 보면 늘 푸른 나무라고 늘 푸른 것은 아닐 것이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 늘푸름은 겨울의 푸름이 되어 겨울처럼 가라앉고 겨울처럼 순화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푸름은 푸름이 아니라 겨울의 빛깔일 것이다. 

겨울 숲은 마치 강이라도 되듯 애잔한 비애를 안고 흐르고 있을 것이다. 

숲을 걷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올 것이다.  

어느 순간 마음의 눈, 그 눈을 켜는 스위치가 가볍게 터치될 것이다. 

눈이 매우 밝아질 것이다. 보이지도 않던 것들이 소리를 낼 것이고 소리들이 눈에 보이게 될 것이다.  

그 때

멈추지 않는 시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겨울 숲의 매혹에 빠질 것이다. 

절로 하염없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시간들이 과거를 향해 흐르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 수 있을 것이다.     

짧은 겨울 해가 저물어올 것이다. 

나무들 사이사이, 죽음의 사이사이, 겨울 이끼가 봄 이끼로 변하려는 사이사이, 

수천 년을 같이 보냈을 바위틈 사이사이, 수 많은 사체 사이사이에서 

겨울 숲이 봄을 채집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제야 봄이 어디에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겨울 숲에서 만들어져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드러움과 혼곤함을, 따뜻한 향기, 에브노멀한 봄의 빛깔을 

차디찬 겨울 숲이 만들어 낸다는 것을............     


겨울이 사라지기 전 사람 없는 겨울 숲에 가볼 일이다.


            

눈 내리던 날 기차안에서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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