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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an 12. 2021

공기놀이

돌작지


자그마한 아이의 꽃무늬 원피스는 엄마가 천을 떠서 재봉틀로 만들어준 옷이다. 옷에는 흙이 가득 묻어 있다. 돌작지 탓이다. 그때 아이와 아이들의 친구들은 공기놀이라는 이름 대신 "돌작지"로 불렀다. 돌을 가지고 장난하는 손가락 놀이라는 이름이었을까? 자그마한 아이는 돌작지에 혹해서 자주 꿈을 꾸곤 했다. 꿈은 현실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고 감정적이어서 꿈속에서 아이는 잘 운다. 물론 돌작지 하던 돌을 다 잃어버리고 난 후다. 울면서 돌을 찾으러 다니지만 돌은 없다. 모두 다 빗질한 땅이거나 돌작지 하고 난 후 맑게 씻겨진 땅들뿐, 


 

돌작지를 하기에 좋은 땅도 있다. 우선 나무 그늘이 있어야 하고 돌이나 자갈이 박혀있지 않는 아주 고운 흙으로 된 땅이어야 한다. 거기다가 조금 지대가 높아서 밭이랑이나 푸르른 쪽빛 하늘이 잘 보이는 곳이라면 더 좋겠지. 돌을 잃고 나서 눈물 나면 눈물 흘리는 대신 입 다물고 꿋꿋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 말이다. 너무 추워서 밖에서 놀 수 없을 때 양지바른 교실이나 햇볕 따사로운 곳에서 하는 다섯 개로만 하는 돌작지도 있었다. 그러나 그 작은 아이가 혹한 게임은 아주 많은 돌을 가지고 하는 돌작지였다.

우선 팀이 이루어지면 아이들은 돌을 주우러 다닌다. 30개든 50개든 함께 정한 개수다. 참 공평하기도 하지,

돌은 대여섯 개까지 한 손으로 잡아먹어(?)도 될만한 크기여야 하고 날카롭지 않아야 한다. 

돌끼리 부딪혀도 바스러지거나 결이 무너지지 않게 단단하고 매끄러워야 좋다.

(사람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며 홀로일 때는 단단해서 쉬 상처 입지 않는)

그런 돌을 발견해 내기 위해서는 제법 눈이 밝아야 하며 센스티브에 통찰력 까지 겸비해야 한다.

돌을 치마폭에 싸안은 아이들이 나무 그늘로 모여든다.

같은 개수의 돌을 내어놓고 아주 잘 섞는다.

지금 생각하면 섞을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아이들은 아주 정성을 다해 섞곤 했다.

(우리도 그리 섞일 수 있다면, 네것 내것 가리지 않고 화합할 수 있다면)

그렇게 게임은 시작된다. 세 개 정도 먹는 게임은 좀 어리거나 못하는 아이들,

대여섯 개 정도는 잘하는 아이들이다.

룰을 정해 놓고 돌을 따먹기 시작한다.

돌이 없어지면 엉덩이 아래 깔고 있던 돌을 다시 공평하게 내놓는다.

돌을 못 딴 아이들은 둘 중의 하나다. 다시 돌을 주우러 가거나 아니면 구경하거나, 


 어느 날인가 많은 돌을 땄다. 돌은 아이의 주변으로 그득하게 쌓였다.

아이는 기쁨을 넘어서 흥분상태에 돌입해 있었다. 가슴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였다.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 사위가 빨갛게 변해가며 태양이 커지기 시작했다.

선옥아, 밥먹자. 선옥 엄마 소리가 들려오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다들 일어섰다. 

아이는 홀로 남았다. 지는 해는 더욱 빨개지다가 결국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져 갔다.

그토록 가슴 뛰게 하던 수많은 돌은 순식간에 하찮은 돌이 되었다.

아이는 빈손으로 그곳을 떠났다.

그 아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어둠만이 고요히 내려앉았다. 

이제 공기는 우리 아이들 손에서도 사라졌다.

아들이 어릴 때 마지막으로 가지고 놀던 공기는 금빛이 나서 마치 얼른 보면 금구슬처럼 보이던 공기였다. 

크기는 작았지만, 무게는 좀 있어서 그런대로 색깔 고운 플라스틱 공기보다는 덜 경망스러웠다.

몇 번 그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아이를 기억하면서 아들의 공기를 주물럭거려 보았지만 '낯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원피스 입은 그 작은 아이가 만졌던 돌들은 따스한 온기가 있는 생명체였을까?


 돌작지 게임 속에는 우리네 삶이 은유 된 것 같기도 하다.

돌을 가득 따서 흥분한 작은 아이의 모습은 지금 나의 모습이 아닌가,

고요한 어둠 속을 걸어 집으로 가는 아이의 발걸음은

마치 축소된 그림처럼, 인생길의 끝을 예표해 주는 것 같다.

어쩌면 그 작은 아이, 그때 인생의 허망함을 처음으로 느꼈을까,  


                구글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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