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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Feb 13. 2021

제주 서쪽

추사관



제주 둘째 날은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동쪽의 숙소에서 서쪽으로 가니까 

대정 추사관은 제주도 치고는  좀 먼 거리다. 

남편보다 훨씬 더 제주도를 많이 온 나는 추사관이 세 번째였으나 남편은 처음이라 

뭐든 자세히 보기를 좋아하는 남편 성향에 맞을 것 같아 선심을 쓴 것이다. 

가는 길에 농업 생태원이 보여서 휙 들어갔더니 별별 귤 종류의 농원이 있어서 구경을 했다. 

생김새도 특이한 귤나무들을 구경하다가  

면형의 집에서 오래 살다가 죽은 온주귤나무가 생각났다.

식물학자이기도 했던 선교사 신부님이 제주도 왕벚나무를 

일본 신부에게 보내서 그 답례로 받은 온주귤나무가 

제주도를 먹여 살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참 감동적이다..

오래 살다가 죽은 진짜 온주귤나무는 땅에서 해체되어 작가의 손을 거쳐

작품으로 예배당에 설치되었다. 

오히려 살아 있을 때 보다 더 많은 추상을 품고 있어 기이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잘살고 잘 죽은 나무이다.   

]

  

감자 창고라고 제주도 사람들이 생각한 추사관은 담박한 건물이다.

군더더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퓨어한 건물.

세한도 속의 집을 그대로 표방한 작품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온 것처럼 

시골 대정리의 논과 밭 그리고 자그마한 집들 사이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갈 때마다 건물의 목재가 바래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격은 스러져 가는 것들에 존재한다. 

시들어가는 자태가 고급한 것이다. 

주변은 나지막한 현무암 돌로 둘러 있다.   

화려하고 세련된 건축물은 아닐지라도 그 건물이 품고 있는 인문학적 서사와 함께 바라본다면

더 할 수 없이 주변과 어울리는 우아한 건물이다.    

추사관의 백미인 빈 공간 속의 녹슨 추사의 흉상을 볼 수는 없었다.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위리안치의 주역인 탱자나무가 담처럼 심겨 있고 

마당에는 유자나무가 있는 추사의 집에서 좀 서성거렸다. 

그리고 그 곁에 빈 텃밭이 있었는데 그곳에 수선화와 홍매 청매가 피어나 있었다. 

“섬 곳곳에 수선화가 피어 있어서 기쁘나 섬사람들의 소와 말의 먹이로 삼는 것이 단지 애석하다”라고

추사는 육지의 지인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제주 수선화는 금잔옥대라고도 불린다. 

생김새 그대로의 이름이다. 옥대 같은 흰 꽃잎이 노란 잔을 품고 있으니까,

바람 많고 차가운 제주도 땅에서 한겨울을 쓸쓸하게 지내다가 

언 땅에서 수선화 잎이 솟아 나오고  금잔옥대가 환하게 피어날 때 

추사의 마음속에도 꽃 같은 희망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올해는 그리운 사람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겨울이 슬슬 지겨워질 무렵 눈이 사라지니 더욱 그러하다. 

그 시간에 피어나는 수선화라나....    

수선화 편지 팻말이 있는 곳에서 

진짜 수선화를 바라보다니.... 추사처럼 나도 기뻤다.

수선화를 봐서 기쁘고 수선화를 보며 기뻐하던 추사를 생각하니 더욱,     

그날은 바람이 세차서 자꾸 모자를 잡아야 했다. 

바람이 세차기는 했지만 차갑거나 모질지 않았다. snjsrk rm 바람 속에는 봄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렇다고 

차 안에 들어오면 아늑해서 드라이브 하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 들렸던 대정 향교를 갔더니

너른 들판에는 아직 꽃 피지 않는 유채밭이 초록초록 펼쳐져 있었고 

한눈에 반했던 나무 세 그루는 여전히 럭셔리한 자태로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산방산 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면서 

용머리 해안을 위에서 바라보았다. 

그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평이한 몸짓으로 

바닷가를 향해 누워있는 땅 위를 조금 걸었다. 

상방산의 지질과 용머리 해안의 지질을 구별해 놓은 표지판을 읽으면서 

이거 예전에도 읽었는데 다 잊었네......     

아 그날 점심은 길가에서 보이던 예식장과 함께 있는 식당이었는데

정원의 먼나무가 기가 막히게 열매를 맺고 있었다.                                              

이런 소소한 것을 보고 매우 즐거워하니 언제나 내 여행은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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