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영 Feb 12. 2021

김택화 미술관

제주 첫날




이월의 시작을 제주에서 했다. 

첫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세차게 약하게 마치 이게 제주의 리듬이야 알려주기라도 하듯 오락가락했다. 

한라산은 못 가더라도 주변 숲이라도 걷자며 관음사를 내비에 찍었다. 

삼십 년도 훌쩍 넘은 시절의 관음사를 생각했다.

친구와 함께 비가 엄청나게 오던 날 어리목에서 줄넘기를 하던 기억,

비가 개어서 닫혔던 문이 열리고 백록담을 오르던 기억, 

관음사 쪽으로 내려올 때는 달이 떠오르고 있었고... 달빛에 의지하여 내려오던 길이 선연하다, 

어찌 그리 용감했을까, 겁 없는 아름다움은 이제 내게는 없다. 

생각해보니 기억은 삶의 곡창지대다. 숙성이며 발효이며 그래서 삶의 독특한 음식이다. 

기억이 없다면 그저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하다면 얼마나 삶은 드라이할 것인가, 

새로운 풍경이 여행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언제나 그 새로움 속에서 과거의 나를 찾는다. 

과거의 나는 흘러가 버렸다는 이유만으로도 아름답다. 

어쩌면 여행은 과거의 시간을 불러다가 현재에 더해서 시간의 부피를 크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올라갈수록 안개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관음사를 가도 아무것도 보일 것 같지 않았다.

운전할 때 안개는 눈 이상으로 두렵다. 

여행길에서 굳이 검질길 필요는 없다. 

여기 아니면 저기.... 깜빡이 등을 켜고 과감히 돌아선다.. 

숙소가 동쪽이기 때문에 가는 길에 아무 곳이나... 가 우리의 스케줄이지만 

김택화 미술관은 점찍어놓은 곳이었다.


생각보다 건물은 큰 편이었지만 뭔가 어설픈 느낌도 있었다. 

나중에서야 작년에 개관을 한 미술관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층의 샵과 이층의 카페 그리고 그곳에서 표를 사고 좁은 곳을 통해 미술관에 들어섰다. 

요즈음 이렇게 여백 없이 학예회처럼 작품을 전시하다니.... 생각은 잠시 

그림이 참 좋았다. 

유화가 주는 느낌이 풍부했고 어두운 듯한 색채가 제주도의 풍경과 기막히게 어울렸다. 

제주도의 현무암들은 바다의 색에도 그 자신의 색을 나눠줘서 푸른 어둠을 만들어낸다. 

검은 돌담 안의 식물들 역시 그 검은빛을 살짝 덧입고 있다.

특히 이즈음의 동백나무들은 진초록의 윤기 속에 현무암의 검음을 걸치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이라 더욱. 

김택화 작가는 

그런 현무암의 검음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간결해서 담박한 그만의 질감이 제주도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런 표현력으로 제주도 아닌 어떤 곳을 그릴 것인가, 

제주도가 제주도를 사랑하는 화가에게 하사한 표현이 아닐까,

나는 많이도 걸린 그의 작품을 바느질이라도 하듯이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림은 나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풍경을 보는 일이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제주도의 작가가 제주도를 바라볼 때 그가 느낀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그에 기대어 바라보는 일이다. 

더군다나 비 오는 날 제주도 이질 않는가, 

그가 그린 제주도의 초가집은 정말 동그랗다. 

어느 집은 하도 둥글고 작아서 스머프의 집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래서 더욱 따숩고 포근해 보였다. 

초가집 위의 나무조차 초가를 닮아 둥그런 형상으로 집 앞에 서있었다. 

바람도 막아주고 햇빛도 막아주는 나무였다. 

마치 나무는 초가집의 어미처럼 보이기도 했다. 

얘야 내 안에 숨으렴, 여기는 따뜻하단다. 

약간 과장된 표현이라 해도 순수한 눈이 빚어낸 순수였다. 

둥금 사랑스러움 소박함, 그래서 고졸한 미에 다다르는 표현이었다.

작품 앞에 서있을 때 마음이 아주 순하고 부드러워졌다. 

이런 순간이라면 무엇인든 하다못해 더럽고 역겨운 것이라 해도 용납될 만큼.....

바닷가 포구의 그림도 좋았지만 한라산 그림은 어느 각도에서도 다 아름다웠다. 

첫날 그의 그림에 혹해선지 제주 닷새 동안 한라산이 보일 때마다

김택화의 그림이 그려졌다. 

선물로 받은 엽서를 나의 갤러리(화장실)에 여러 장 따닥따닥 붙여놓았다. 


제주 여행 첫날을  장식해주던 김택화 미술관


    미술관 이 사진은 빌려옴

작가의 이전글 벚꽃이 보이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