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영 Mar 16. 2021

알제리를 여행하다

김화영의 알제리 기행


도서관에 가면 여기저기 집적거리는 참새가 된다.  

새 책 코너는 방앗간이고,   

오래된 글들도 새 포장이 되어 있으면 만져보게 된다.

가령 어제도 새로운 포장과 글씨가 큰 돈키호테를 망설이다가 빌려왔다. 

다시 읽으려고,

‘그때 프랑스는 그랬다’라는 32000원짜리 프랑스 만화책도 한 권 빌려왔다.

사기는커녕 빌려보지도 않을 책인데 새 책이니까 호기심이 생겼다.

만화를 뗀 지가 중학교 들어가서다. 

그렇게 좋아하던 만화가 어느 순간 싫어졌다. 

그러고 나서 거의 만화는 보지 않았는데  

초등학생 때는 어떻게 읽었는지 글씨 대신 읽어야 할 표정과 공간을 함께 읽는데 쉽지 않았다.     

살짝 치고 빠지고 가볍게 건너뛰고 만화의 문법 외에도 자세한 설명 없어 세련된 만화였다. 

글자도 모르는, 그러나 머리가 좋아서 사업수완은 끝내주는, 

가족을 사랑하는, 그래서 나치에 붙었다가 다시 또 레지스탕스에 붙는, 

배짱은 두둑하고 그러나 이념은 없는 사람의 일생을 그린 만화였다.(이념은 있어야만 하는가) 

그러니 결국 그는 자신의 가족에 붙은 사람이라고나 할까, 

양장본으로 되어있는 만화책을 32000원이나 주고 살 사람이 있을까?

있으니까 출판했겠지.

이런 소소한 생각에서도 걸음을 멈추면 

세상을 안다고 할 이유가 없다. 

나는 만화를 끊었지만,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내가 하는 생각들은 편협하며 아예 틀릴 수도 있다.  



                                                                 <티 파사>   





코로나 때문에 여행길이 막혔다. 막히면 돌아가라 했던가,  

그 대신 훌륭하고 색다른 여행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알제리 여행도 그렇다. 아프리카의 북단, 그리고 유럽과 맞닿아 있는 땅,

로마와 아랍 터키와 프랑스에 지배받았던 나라, 사하라 사막이 국토의 태반인 나라,  

그 나라로 봄기운이 완연하던 어제 훌쩍 여행을 떠났다. 

원래 이 여행의 시작은 알베르트 까뮈 때문이다. 

까뮈의 여정- 나눔의 세계라는 책은 까뮈의 딸이 편집했다.  

뭐야, 이런 것도 책이 되나? 연보 같은 책이네.... 시작은 그랬는데 

이방인 페스트를 읽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까뮈가 보였다.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1957년(잊을 수 없는 연도로 내가 태어난 해다) 노벨상을 받은 그가 

알제리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살아서 알제리에 관한 사진과 글이 많았다.

알제리가 어디쯤인가, 구글 어스를 펼쳤다.    

책 안에서 호명된 책을 찾아 읽는 것은 나의 중요한 독서법이다. 책이 책을 부르는 독서다.  

이즈음은 거기에 붙여 낯선 나라나 지명이 나오면 지도를 보는 것이다. 

이게 뭐랄까, 참 괜찮다. 훨씬 더 손에 잡힌다.  

책은 여행이다, 라는 나의 지론에 쫀득한 맛을 더해주는 감자전분 같은 것,    

 

까뮈의 여정 역시 김화영의 번역이었는데 그가 직접 까뮈를 찾아 알제리 여행을 했다. 

알제리 기행을 읽으며 구글 어스에서 알제리를 펼치고 새로운 지명이 나올 때마다 가본다. 

마우스를 굴리며 하는 여행이다. 

‘티파사 폐허에 핀 꽃’이란 챕터를 들어가기 전 티파사를 찾는다.

알제리의 수도 알제와 가까운 바닷가의 로마 유적지다. 

바닷가 쪽으로 주욱 가본다. 

파도가 선명하고 황토색 길과 궁전의 터가 선명하게 보인다.  

설마 눈으로 본 것 같으랴만 낯선 풍광이 주는 느낌이 상당하다.

책에도 티파사의 바실리카 사진이 있지만 

구글 이미지에서 알제리 티파사를 치니 책 보다 훨씬 더 선명한 사진들이 많다.

푸른 하늘과 초록 나무들 그 넘치는 생명력 속에서 마치 삶 속에 다가오는 죽음처럼 

자연으로 스며들어 가는 폐허 속 건물-돌로 된 기둥과 받침-의 잔재를 만난다.. 

“나는 전라의 몸이 되어..... 대지의 정수로 향기가 배어있는.....

땅과 바다가 입술과 입술을 마주하고..... 물속에 들어오면 돌연한 전율....

내 두 다리는 물결을 수선스럽게 소유한다. 그리고 문득 아득해진다......

물이 미끄러지면서 드러나는 물기 걷힌 살갗 위에 금빛이 솜털과 소금가루.<결혼 여름>”.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리낌 없이 사랑할 권리다.” 

티파사에 있는 까뮈의 문학비에 적혀 있는 글이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점심을 먹으러 가듯이 천천히 걸어 식당으로 들어가고 그가 바라보았을 항구를 바라본다. 식당의 주인 살라 씨는  셀레스트를 연상시킨다. 

까뮈가 살았던 집 계단을 사진 찍으며 

이방인 1부 2악장이 부조리 감정의 극치로 절창인 이유를 설명한다. 

까뮈의 산문집 ‘제밀라의 바람’을 만나기 위하여  수백 킬로를 달려 제밀라로 간다. 

제밀라 역시 폐허다. 


“그곳에는 무겁고 틈새 하나 없는 거대한 침묵이ㅡ어떤 저울의 균형과도 같은 그 무엇이 지배하고 있다”는

제밀라, 세찬 서향 빛을 받는 주피터의 토르소가 있는 곳, 

밀밭과 엉겅퀴 물감을 쏟아 놓은 듯한 황홀한 야생 양귀비를 바라보며 찾아간 팀가드는 

고원의 경이로운 도시로 1세기에 만들어졌다. 여전히 지도에서 팀가드의 고대 유적지는 현대 도시만큼 크고 당당한 자태로 자리하고 있다. 김화영의 글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구글 어스에서 도서관 터와 포럼을 발견했다.  

석류꽃이 아름답고 협죽도는 더 붉은 순결한 풍경의 마을,

세트마와 드로에서 담의 문이 열리고 닫히며 느리게 걷다

다시 어느 문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터번 쓴 노인을 보며 환영인가.... 를 생각하는 작가의 마음처럼

나도 사막의 오아시스 동네에 있는 듯 아련해진다.  


비스크라는 사막의 입구이다. 김화영은 그곳에서 지드의 아프리카 찬가를 읽는다..

의외로 책을 읽으며 지도를 보는 여행ㅡ 거대한 땅을 모니터 안에 잡아 놓고 키웠다 줄였다 하는 ㅡ의

미덕은 알제리를 느끼게 한다. 

까뮈가 태어나고 앙드레 지드가 사랑했던 나라를 김화영의 안내로 함께 했으니

정신이 무척 아름다운  세 명의 남자와 함께 한 알제리 여행이다.


       

                                                       <제밀라>


팀가드


                                <비스크라>


                                                                                                <까뮈의 문학비> 



***

사진은 허락도 없이 빌려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제가 되면 즉시 내리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겸손하십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