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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Aug 21. 2021

아직은 여름 중

마스크와 할머니

매미 소리에 점차 매가리가 없어지더니, 

오늘 아무리 들으려 해도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지난밤 남은 매미들이

모두 다 교미를 하게 된 걸까요. 

사람을 벗어나면 

곤충이나 동물의 성은

생명과 직결되어서  참 애달프죠.

혹시 쓰르라미를 귀뚜라미와 비슷한 가을 곤충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그랬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매미의 종류더군요. 

쓰르람 쓰르람 하고 우는 매미.

벙어리매미도 있어요. 

울지 못하는 매미를 말하는데

그러니까 암컷은 다 벙어리매미죠.

거의 6.7년을 굼벵이로 살다가

날개 달린 매미로 사는 게 길어야 한 달,

다들 그 짧음에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하며

안타까워하는데.

사람처럼 각양각색의 삶을 살 듯이

매미라고 안 그러겠어요. 

번식하기 위해 세상에 나오는 거고

어쩌면 실제 매미의 삶은

굼벵이일지도 모르죠. 

어제까지 분명 들었었는데

매미소리

비가 조금씩 흩날려서 침묵하는 거겠지요. 


밤하늘이 아니라도

계절이 지나가는 길목을 이제는 알겠어요. 

다시는 내 생애 돌아오지 않을 여름이 가고 있는 거죠. 

계절이, 시절이, 시간이,

한도 없이 계속될 거라는 무지함 속에서 살았어요. 

무지를 벗어나니 끝이 보인다는 것, 

난데없는 시 구절도 생각이 나구요. 

‘아아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아아, 라는 감탄사를 촌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데

왠지 나도 아아를 넣어서

글을 써보고 싶기도 하네요.

아아, 여름이 갔습니다.

나의 여름은 가고야 말았습니다. 

아아 여름은 갔지만

나는 나의 여름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아재개그ㅎ)


몇 년 전인가...팔십 대 후반이시던 이모가 그러셨어요.

“아야 늙으면 편한 게 많다.

아이들 키우느라 그리 애쓰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이 나를 안보니까 무엇을 해도 괜찮다. 

하다못해 길을 걷다가 한적한 곳에서 찬송가를 흥얼거려도

사람들이 나를 보지 않는다. 

자유로운 게 많아져 늙으면,” 

그런 말씀을 들을 때는 흠~ 하며 들었는데 

이제 늙음의 초입에 서니 선명해지는 게 있어요.

길을 가면서 나는 젊은이들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젊은이들은 나를 길가 가로수처럼 여긴다는 것을요.

물론 올여름을 지나며

나도 내게서 다른 점을 보았어요.

외출할 때 멋보다는 편하고 시원한 것을 찾게 되었다는 거죠.

작년까지는 분명 멋을 먼저 생각했는데 

올해는

귀찮아, 이게 더 편해,를 선택했죠. 

그래서 미국 어느 배우가 말한 것에 더 열광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젖이 배꼽까지 늘어지더라도 나는 브래지어를 차지 않겠다’

페미니즘에서 발현된 발언이지만 

나는 그녀의 말이 아주 시원했어요. 

우리나라도 백 년 전만 해도

아들 낳은 엄마들은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놓고 다녔죠. 

가슴이 부끄러워진 이유는

남성들이 유방에 성적인 의미를 부여해서예요. 



어제 우연히 잠깐 만났다 헤어진 할머니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매미에서 여름 그리고 페미 브래지어까지 나갔네요.

어젠 친구네를 가기로 했어요.

그 친구 집엘 가면 

아기자기 예쁜 그릇에 특별히 맛난 음식을 해주곤 하죠.

오늘도 명란젓과 들기름

김가루와  아보카도 조합의 비빔밥을 해준다고 해요.   


일산 맛집 빵집,

만쥬를 아주 맛있게 하는 집엘 들어섰어요. 

차를 조금 먼 곳에 주차를 하고 내리면서 핸드폰, 차 키면 되지. 

점검했는데도 뭔가 좀 허전한 거예요.

할머니 한 분이 내 앞에서 빵을 사시고 계시더군요. 

키는 자그마하고 몸피도 가녀린, 

머릿속으로 생각을 했어요. 

나도 빵은 소화가 잘 안돼서

집에서는 안 먹는데 할머니가 빵을 좋아하시는구나. 

아니면 나처럼 어딜 가시면서 선물로 사시는 걸까?

빵집 아가씨가 저에게 말하는 거예요. 

마스크 써주세요. 

아, 그래서 허전했던 거예요.

순간 되돌아가기 싫었죠. 귀찮아서요. 그래도 어떡해요. 돌아서는 순간,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마스크 내가 하나 드릴게요. 

아, 또 머리가 굴려지죠.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도 친절인데 받아야지, 

네 하나 주시겠어요? 얼른 말했죠.

나도 그런 적이 많아서 핸드백에 몇 개씩 넣어가지고 다녀요. 

아 저두요, 근데 핸드백을 차에 놓구 왔어요. 

할머니가 내어주신 마스크를 끼는데 친절하시게도 봉투까지 찢어서 주시더군요. 

감사합니다.

한 껏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죠. 

빵을 사는 동안 할머니는 어느새 가버리셨어요. 

아, 인사 한번 더 해야 하는데......

아쉬웠어요. 

흔한 마스크 한 장이 빚어낸 마음 치고는

제 마음이 너무 좋은 거예요. 

감사하구요.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나라면 그런 경우에 그런 친절을 베풀었을까, 

답은 노였습니다.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차에서 가져오겠지. 어쩌면 아무런 생각도 없었을 것 같은데 

할머니는 어떻게 그 순간, 제게 마스크를 권할 수 있었을까요.

마스크 하나가 

차갑고 이기적인 내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저보다 이십여 년쯤 위로 보였어요.

그래도 반듯하셨고 고우셨지요.

할머니의 섬세한 친절이 할머니를 그렇게 곱게 늙어가게 했겠지요.  

모르는 사람에게 그리 반응하시는데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오죽 친절하실까요. 

그러니 할머니 주위 사람들은 할머니를 오죽 사랑하실까요.

앞으로 저두 그런 경우에는 마스크를 내줄 거예요.

정말 커다란 일은 못하더라도 

주변의 사소한 일에서라도 친절하게, 

할머니처럼 반응하면서 살아갈게요.


빗줄기가 굵어졌어요.

비가 그치면 매미소리가 들려오리라 생각해봅니다. 

아직은 여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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