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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Dec 28. 2021

YOU!



내 머릿속에 있으니 내 것이긴 하지만 

사실 뇌는 뇌 하고 싶은 대로 한다더군요. 

가령 세상을 인지할 때 현실을 패턴으로 인식,

즉 뇌만의 방법으로 분류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 많은 정보로 과부하 돼서 살 수 없어서라는 거죠. 

정보를 내보낼 때도 그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니, 

뇌는 내 안에 있어 내 것이면서도 또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령 YOU와 내가 똑같은 경험을 한다고 해도 

다른 분류 속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어 

그만의 사실로 출력된다면 이것은 과연 같은 경험일까요? 

뇌에 대한 이런 논리는 매우 신선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한테서 무수히 일어나는 일들이기도 해요. 

사람은 잘 알지 못하는 모호한 것들에서 익숙한 패턴을 찾아내는 심리가 있다고 하죠. 

이런 현상을 파레이돌리아라고 하는데 

우리가 달을 보며 토끼를 찾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죠. 

물론 그림을 보면서도 연상을 하는데 비록 그게 추상일지라도,

 존재를 찾거나 사물로 인식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어쩌면 우리네 삶에 다가오는 애환일지 사건, 고난, 질병, 고독, 사랑ㅡ에 의미와 가치를 찾는 일도 흡사한 일 같기도 합니다.

줄리아쿡의 그림 동화 ‘나는 갈색이야’는 필통 속의 연필에 사람의 모습을 그렸어요.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한없이 생각하게 하는 글이죠.

 갈색은 자신을 싫어해요

. 아무도 자신을 좋아해 주지 않아 키가 크다고 생각하죠. 

빨강은 사람들이 좋아해서 작고 뭉툭하게 닳았는데 갈색은 빨강을 부러워해요. 

가장 눈에 띄는 검정, 명랑한 노랑, 기발한 생각을 잘하는 보라, 

정직한 연두와 재미난 주황, 

색의 느낌을 단정 짓는 무리수는 살짝 엿보이지만 그야 작가의 마음이니, 

갈색이는 친구들을 찾아가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해요. 

친구들은 자신의 시선으로 본 갈색이를 이야기하죠. 

노랑은 명랑하게 생각하고 보라는 기발한 이야기를 하죠.

 정직한 연두는 넌 좀 그래…하고 

빨강이는 말해요 

"저기, 나는 너처럼 키가 크면 좋겠어."

 동화의 맹점이자 방점은 해피엔드죠. 

검정이 말한

 ‘너에게는 우리가 모두 다 들어있어.’ 

갈색이는 자존감을 찾게 되고 행복해져요. 

저절로 색색의 눈이 지닌 시선을 생각하게 되는 글입니다.

 그리고 이내 수십억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게 되죠. 

어쩌면 그 수많은 다름에 창조성이 있지 않을까, 

거기 그 다름에 주님의 뜻이 깊게 숨어있지 않을까, 

두 사람의 기도가 제 뇌 속에 입력되어 있어요.

 바리새인은 사람의 시선으로 본다면 잘 살아가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바리새인은 저 형편없는 세리와 같지 않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감사하기도 했었죠. 

세리에게는 그저 보잘것없는 자신과 그분뿐 그 사이에 아무도 없었어요. 

비교 때문에 일어나는 숱한 교만을 아시는 주님께서 

세리의 손을 들어주신 것은 당연한 일 아니었을까,

 출력이 되기도 합니다. 

새해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보다 적게 하거나 혹은 안 하겠다는 것도 생각해봐요. 

판단하지 않기,

 정죄하지 않기,

 화내지 않기, 

그리고 “헤아림”도 적게 하려고 애쓸 거예요.

 매력 있는 날카로움이나 시원한 직설, 

순간적으로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는 지적, 

사람을 홀리는 논리보다 

<완곡>을 생각하려구요. 

느리고 늙어 보이며 변명처럼 보이는, 회색을 품고 있는 완곡.

 대신 배려가 살짝 배어있고 사람들 관계에서 순함이 흐르게 하죠. 

YOU와 내가 같거나 별로 다름이 없다는 등가 가치도 있어요. 

완곡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 둘을 바라보기에 적절한 자리이기도 하죠. 

표현되기도 하고 표현되지 않기도 하니까요. 

살짝 은유를 껴안고 있어서 상대방이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더불어 곰곰 생각하게 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죠. 완

곡婉曲의 婉은 순함이란 뜻도 있지만 아름다움이란 뜻도 있어요. 

카르페 디엠도 기억하며 살겠지만, 

메멘토 모리 쪽으로 다가서려고 합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기도 하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죠. 

누군가는 죽음이 우리를 협박한다고 생각하던데, 

그에게 부드럽게 말해주고 싶어요. 

죽음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지극한 공평함이라고요. 

YOU! 

새해 기쁜 첫걸음이 주욱 이어지시길요. (교계신문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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