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엄마가 퇴원을 하고 조리원으로 옮기는 그 사이 너를 한 시간 정도 안아 보았다.
이상한 세상이지.
네가 세상에 태어났는데도 너를 도무지 볼 수도 안아볼 수도 없었으니,
여전히 지금도 조리원에 있는 너를
영화처럼 볼 수 밖에 없구나.
실체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자각은 너의 영할이 살아온 세상이 순전히 아날로그이기 때문이지.
영할은 할머니의 이름 영에 할머니의 할 준말로
서로 너를 위한 단어다.
아 니동생들이 생겨 난다면 그들도 사용하겠지만,
네가 살아갈 이 시대는 문장 줄이기가 유행이란다. .
그러니까 할머니의 이름 위영에 할머니 할의 <영할>은
중의가 멋지지.
젊은 할머니라!! ㅋㅋ
너무나 작고 연약한 너.
보살핌이 없다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생명체.
세상에,
가슴이 뭉클했다.
네가 세상에 오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섭리가 이어진 것일까.
너의 영할은 작은 나뭇잎 하나에도 창조를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우연이라고? 셀 수도 없는 우연을 우연이라 할 수 있겠니.
그래서 운명이라고?
아 그 시선은 너무 작구나,
운명은 삶을 축약시켜버리는 단어이지.
운명은 피할 장소가 되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넓고 광활한,
우리가 알 수 없는 섭리가 작용하는 세상이 훨씬 더 정확하겠구나.
가치론으로 살펴봐도 우월하지,
네가 우연한 생명이 아니라는 것,
그저 단순하게 사람의 운명 속으로 빠저버리는 희미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네가 태어났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너는 기댈 수 있는 커다란 언덕이 생긴 거야.
그 섭리 가운데서
우리가 너를 위해 사랑하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너를 위해 몸을 빌려주고 너를 위해 살을 찢어서
니 엄마는 여전히 오늘도 아프단다.
어제 두시간 가량 네 엄마에게 네가 와 있엇는데
영할 역시 페이스 톡으로 한시간 반 가량 네 엄마와 함께 너를 바라보았다.
울고.,,,,오 울음이 진짜 세던데
하품하고 오므리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누워 있고
니엄마는 네가 우니 어찌할줄 모르는데
애기를 더 꼭 꼭 싸줘,
발이나 귀를 만져 주렴.
기저귀 봐봐,
젖을 물려보렴.
왜 엄마 젖을 안 빨려고 하는 거야,
물론 우유가 잘 나오는 수유 병이 네겐 더 쉽겠지만
그리고 현재 더 익숙하겠지만
진짜 좋은 것은 니 엄마 젖이야.
아 이 말을 네게도 벌써 해야 하는구나
네게 좋은 것이 언제나 편하고 즐겁지는 않단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지,
나의 서로瑞路
어제 몸무게가 5,65kg
사흘 짼가는 태어난 몸무게에서 오히려 조금 빠졌다고 하던데
금방 살이 오르네.
오늘도 즐겁고 건강하게 수욱숙 크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