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영 May 05. 2023

배우와 문화평론가

박은빈과 감갑수

(텔레비전ㅡ그를 편의상 T로 칭하자)




얼마 전 T를 켜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박은빈이 반짝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백상 예술 대상 시상 중이었고 우영우, 박은빈은 T 부분 대상을 받는 중이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사람들의 줄기찬 입소문 때문에 방영이 다 끝난 뒤 정주행한 드라마였다. 

사실 우리네 삶 속에 해피엔드는 그다지 많지 않다. 

동화스런 결말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동화를 읽고 드라마를 보는 게 아닌가, 

자폐를 지녔지만 미모에다 천재성, 고래 덕후까지 우영우는 환상 속 인물이었다. 

                                                                        주변인들도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착하고 지혜롭고 어여쁜지, 



그래서 현실과 상이하니 세상을 표현하지 못한 드라마라고? 

그러면 좀 어떤가, 

리얼 팩트가 아니라도 좋다. 

이 폭폭한 세상에 잠시라도 좋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쉴 수 있다면 훌륭한 일이다. 


우영우 박은빈이 무대 위로 올라가 수상 소감을 말하는데

우영우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표현을 했다. 

그게 아주 신선했는데 색다른 존재,

즉 연기를 끝냄으로 사라져 버린 우영우가 아니라 

여전히 그녀 속에 존재하는 우영우를 바라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우영우에게 문화 평론가 김갑수가 유투브에 나와서 말했다. 

울고불고 코 흘리면서… 시상식이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 타인 앞에서 감정을 그렇게 격발해서 안 된다.” 

“테이블에서 무대에 나오기까지 세 봤더니 30번 이상을 절하고 나왔다. 주위 모든 사람에게

 “자기의 생각 작품 활동할 때 어려움 또는 앞으로의 생각 등 여러 가지 얘기할 거리가 많을텐데 

스피치가 잘 안되는 건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와서 그렇다".

 "거의 전 수상자들이 나와서 멘트에 80~90%가 '감사합니다만 한다. 진심은 개인적으로 좀 표하면 안 될까.”

그리고 방점을 찍었다. 

“송혜교씨한테 배워라”


문화평론가가 아니어서 그런지 나는 박은빈이 무대로 걸어 나오기 전 

눈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절하는 것이 참 보기 좋았다. 

그게 서른 번이나 되는 줄은 몰랐지만, 

세상에 서른 번을 절하다니, 

얼마나 겸손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인가, 

진심으로 인사하는 여배우, 

사람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원래도 배우는 눈물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슬픈 영화에서 그렇게 잘 우는 거겠지. 

그런 배우가 생애 처음으로 큰 상을 받았다. 

울컥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그런 대상을 받고도  아주 당연한 듯 우아하고 새침하게 눈초리를 내리깔면서 

무대만을 향하는 모습을 그 문화 평론가는 원했던 것일까,

어느 기자는 ‘타인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면 안된다’는 것은 

김갑수가 곧 70대를 향하는 그의 세대에서나 통하는 일이라고 했다. 

나도 그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지만 단언컨대 그의 모습을 나의 시대에 넣고 싶지는 않다. 


더욱 기이한 것은 스피치의 내용이 없었다고 하는 그의 말이다.

우영우 박은빈은 눈물(콧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을 섞어가며 그래도 정확하게 말했다.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들을 다름으로 인식하지 않고 다채로움으로 인식할 수 있기를”

다름과 다채로움을 한 쾌에 엮는 말에서 

그녀가 일기를 줄기차게 쓰고 있다는 기사가 오버랩 됐다.


 “우영우를 연기한 후 이전보다는 친절한 마음을 품을 수 있기를” 

오메! 그렇다.

나는 그 대목에서 그녀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래, 친절함은 정말 아름다운 미덕이지, 

배우란  타인의 삶을 사는것이라, 

자폐아 우영우를 연기하며 아직 어린 그대가 놀라운 것을 깨달았구나, 


아니 이정도면 거의 철학 아닌가?

그 문화평론가보다 내가 수준이 낮아서 박은빈의 말에 커다란 울림을 느꼈던 것일까?

나는 솔직히 박은빈의 말을 혹시 작가가 미리 조합해서 암기시켰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백보 양보해서 수준 높은 문화평론가의 마음에 박은빈의 말이 안 들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스피치가 잘 안되는 것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와서’ 라니, 

이것은 배우의 삶 전체를 난도질하는 말이 아닌가, 

문화평론가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당신의 스피치는 무엇을 말하는가, 


또 개인적인 감사에 대한 소회도 거슬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멋진 자리에서 

이름 한번 부르는 것, 

불리워지는 것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사건이다. 

개인적인 감사와는  그 감사의 폭이 무척 다를것이다. 

가령 엄마 아빠에게 하는 감사도 집에서 무시로 하겠지만, 

대중 앞에서, 무대 위에서, 호명된 엄마 아빠, 더욱 기쁘지 않을까, 

특별한 상을 받았으니 좀 이해를 해줄 수도 있지 않은가,


“송혜교씨한테 배워라”

이건 또 뭔가

아마 박은빈은 대선배인 송혜교라 기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절을 서른 번이나 하는 착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내가 기분이 나쁘다. .

송혜교의 소감은 유머러스 하며 간결했다. 

그대로 좋았다.

굳이 문화평론가 시니까 덧붙여본다면

송혜교가 시적이라면 박은빈은 산문적이었다.

그니까 문화평론가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시적인 것만이 최상이다. 

확인을 함과 동시에 

산문은 감정 격발을 동반한 질낮은 문학의  종류다. 

라는 선언을 한 것으로 들린다. 


나는 시도 좋지만 산문도 좋아한다. 

박은빈의 스피치와문화평론가에  대한 이야기도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늘어놓을 수 있는 글 역시 산문이기에 가능하다. 


독서를 엄청나게 하시는 문화평론가께서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라는 책도 읽지 않으신 건가. 

젊은 여류화가의 전시회를 본 한 평론가가 

‘그녀의 그림에는 깊이가 없다’라는 비평을 했다.

화가는 고통스럽게 깊이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자살에 이른다. 

화가가 자살하자, 

평론가는 

‘그녀의 그림에는 깊이가 있었다’라는 비평을 내놓았다.



(*사족인데 나는 깁갑수선생을 부러워한다. 

엄청난 판을 소지하고 그 음악을 다 들으며 

좋은 스피커를 소지한것도 엄청 부럽다)


  









작가의 이전글 사그라다 파밀리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