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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May 09. 2016

  느티나무

           공세리 성당에 사는 내 연인

오월은 고해하기에 좋은 시간이네. 

사방에서 용서가 몽글거리고 솟아나고 있지 않은가,

너그러운 기운이 무리지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네.    

저 수많은 봄꽃들과 새순은 나무의 몸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용서에서 피어난 것이네.    

잎들의 서슴없는 별리를

차가운 겨울바람에 맞서며 

추위도 잊을 만큼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결국 나무가 마음먹었기 때문이라네.

용서하기로!.

그래서 봄이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었네. .    

꽃들의 부활은,

새순의 부활은,

나무의 잊음에

나무의 용서에

무엇보다 나무의 사랑에 기인되어 있다네.    


추도예배를 드리러 아산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시간이 빠듯했다. 

여기저기 가느다란 눈으로 살피는  바람난  여인네 되어 

공세리 가는길로 들어섰다. 

공세리 성당에 사는 내 연인을 만나기 위해서     


소유가 필요 없는 사이라네,

시기도 없고 질투하지도 않는 다네,

같이 안고 있어야만 하는 사이도 아니라네,

그저 가끔가다 생각하다가

먼발치에서 바라보다가

오랜만이우,...하다가

다가서서 슬쩍 스치기만 해도 충분한 사이라네

그렇게 고상한 내 연인....이..

눈부신 연두옷을 갈아 입고 

공세리 성당길을 굽어보고 있었다네.

 나를 기다리며     


거의 대부분

기억은 아름다움과 공존한다.

더불어 기억은

아무데서나 여장을 풀지 않는다.

기억은 그의 태생이 귀족임을

기억을 지닌 이에게 충분히 알게 한 뒤에

적어도 최소한

정갈스럽게 빨아서 정갈스럽게 다린 손수건 정도는

깔아주어야 살며시 앉는다.    

기억은 시간의 광풍이나 심각한 고통이나 절명의 위기 앞에서는

절대 자신을 들어내지 않는다.

지나치게 세상적인 쾌락에 빠져있는 사람과도 조우하길 원치 않는다.

기억은 오히려 그런 이들을 멸시한다.

기억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이고

아무리 바빠도 드문드문 하늘을 바라보는 눈길을 지닌 사람이며

삶이 지닌 우수와 쓸쓸함을 인지하는,

더불어 점차 그 쓸쓸함을 견지해가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사람이다.

세월의 더께가 사물에만 쌓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래된 묵은 기와지붕 처마가 어느 해 눈부시지 않았겠는가 만은


올해 오월은 자별하네.

오월만이 지닌 그 비밀한 색채

비밀한 향기가

그 어느 때보다 진하게 감지되니

지극히 좋으면서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네.

기억은 절대 젊은이들에게는 곁을 주지 않는 노회한 친구이니.

각별하게 오월이 다가온것은  기억이 날 벗으로 인정했다는 증표라네.    


나의 연인

나의 나무

그대는 나의 기억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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