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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Sep 24. 2016

작품

에밀 졸라와 세잔 그리고 마네


폴 세잔이 그린 에밀졸라...미완성작품




치열함도 사실 생뚱맞게 보일 때가 있다. 

왜 그리 극성이니..

꼭 그래야만 하니.. 

좀 더 세련되게 침착하게 할 수 없니.


가을바람 불어오기 시작한 구월부터 내게도 바람이 들어왔다.

가을의 서늘한 기운은 여름의 더위를 몰아냄과 동시에

나의 간과 쓸개 비장 같은 것들을 시니컬하게 만들어 갔다. 

문득 시간이 글에도 나름 세월의 무게를 덧입히는가. 

헤아려보니 무게라기보다는.... 졸라의 글이 주는 우직함이 현대의 글 

가령 알랭 드 보통이나 말린 쿤데라처럼 

날카로운 가벼움에 젖어 사는 내게 그 자체가 심히 버거웠던 것이다. 

옷 잘 차려 입고 시골 마당에 서있는데 평생을 근검절약 소박 묵묵히 살아온 사람의 눈빛에 

내 옷차림이 아주 누추하게~드러난 형국이라고나 할까. 난감함... 부끄러움.... 

그의 글은 뭉툭하고 촌스럽다. 무엇보다 더할 수 없이 진중하고 진실하다. 기교 없는 진실함은...

생을 환하게 보여주는 맑은 거울이다.

독서도 길이라니까. 마치 아주 오지의 가파른 산길을 걸어가는 것 같은 이 폭폭 한 심정. 

꼭 글이 깊고 심오해서가 아니었다. 에밀 졸라가 그리는 그 젊음들..

그것도 치열한 예술혼에 젖어 사는 젊은이들 그들의 광기와 허기 그리고 생래적인 욕망들이   

고지식하고 지극히 평범한  내 늙음에 아주 강렬한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이다. 

뒤돌아보건대  밍밍한 내 젊음의 시절, 정열과 광기, 욕망 같은 것들에 휘둘린 적이 없다.

어쩌면 그 명징한 인식이 

그들 예술가들의 젊음을 그린 정확한 서사 앞에서

그 서사가 마치 투명한 거울이라도 되듯 이전의 나를 선명하게 투영해냈던 것이다. 

글을 읽는 동안 마치 퇴근을 하고 온 내 딸아이가 내 방문을 열어젖히듯 그렇게 무시로 출몰하던 쓸쓸한 대비  

 이제 내게 젊음은 이미 떠나온 길이며 다시 회항할 수 없는 편도에 서있는데

이제 확연히 살아온 날보다 아갈 날이 적은데 

무엇보다  한 번도 타오른 적이 없는데 저들의 타오름이라니....

에밀 졸라의 ‘작품’은 진도가 팍팍 나가지 않았다.

그의 작품이 마치 음식 맛을 내는 약간의 조미료라도 되듯

(적절하지 않은 말을 적절한 듯 내던지는 것도 시니컬 리즘의 증상이다. )

읽다가 내려놓고서는 다른 책부터 읽곤 했다.

그의 글에 비하면 다른 글들은 다아 쉽고 가벼워서 부담이 없었다. 

가벼운...이라는 단어를 글 앞에 써도 되나? 그런 글도 쓰지 못하는 주제에...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에 관해서만 주절거린다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겠나.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한 훈수가 재미있는 법이다.

게임을 하는 축구선수에게 소리 질러가며 훈수하는 것, 볼 한번 안차 본 사람이 아마도 대다수일 것이다.

그 대목에서 생의 주요한 태제가 보이지 않는가.

어불성설.

그렇다 생은 그러하다. 

수십억 사람의 얼굴이 각기 다름처럼

이치나 논리에 혹은 소원과는 전혀 다르게 펼쳐지는 생. 


한해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 초가을.. 그리고 가을... 그리고 급하게 시간은 만추....로 향해갈 것이다. 

흰 이슬이 내린다는 백 로시에 도시에서는 도무지 바라볼 수 없는 흰이슬을 증도에서 보았다. 

이른 아침 일찍 잠이 깨서 밖으로 나갔다. 비가 내린 듯했다. 펜션의 마당에 와상이 놓여있는데 

더 어두운 빛깔로 흠씬 젖어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렇다 밤새네 흰 이슬이 와상을 젖게 한 것이다. ㅏ

풀잎에도 늙은 호박순에도 영롱하게 맺혀 있는 것들.....

그 작은 것들을 생각하며 여기저기 낯선 길을 조금 걸었다.

홀로 조우한 흰 이슬이 주는 그 상쾌함이라니...

나를 지극히 풍요롭게 해주는 그런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만의 길을 가고 있는데 

에밀 졸라는 질그릇 같은 목소리로 묻는 것이다, 잘 사는 거야? 잘 살아온 거야? 


<작품>은 세잔과 마네를 합성해놓은 그러나 세잔이 더 많이 들어있는 클로드와 수많은 젊은이들..

그림이라는 극도로 신성하고 아름다운 제단 앞에서 예배하고 또 예배하는

어느 때는 환희에 찼다가 그때는 나락으로 떨어지며 절망하는,

그 체로 발광하다가 명멸하는 화가들.... 을 그려낸다.

마네이면서 세잔인 그러나 에밀 졸라만의 클로드는 재능이 있어서.... 그 재능은 시대를 앞서는 시각과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인데... 시대 때문에 사람과도 공존을 못하고

바라볼 수 있는 높은 시각 때문에 자신의 그림에 만족하지 못하는 비운의 천재.. 노력가....

예술이라는 장르에 목숨을 내건 젊은이...

그 고결한 젊음이 재능 없으면서도 기능만을 습득한 질 낮은 화가의 성공 앞에서

참혹하게 무너지는 모습조차 질박하게 그려낸다.


그렇다.

이미 삶은 돌아설 수 없는 길이므로 거기 무슨 기능이 들어가겠는가.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 살아갈 수 없으면 기어서라도....

클로드와 절친인 상드르...는 작가로 나오는데 당연히 에밀 졸라의 분신이다. 

그리고 그 역시 잘 되어가지 않는 작품 앞에서 절망하는 크로드를 바라보며 자신의 고뇌를 토해낸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작품이란 무엇인가.

에밀 졸라의 <작품>은 정말 작품으로 세상의 모든 예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읽혀도 

그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작품’이었다. 

작가가 이미 많은 친분을 쌓고 잇던 마네와 세잔 그리고 더 많은 세잔이라고 했지만 

그리고 어느 부분 세잔이나 마네의 그림이 그의 난분분한 필치로 화려하게 그려지기도 하며

그들의 생을 혹은 고뇌를 ‘작품’ 속에 차경해 내기도 하지만 실제 그들의 그림도 가끔 책에서 등장한다.

결국 에밀 졸라의 ‘작품’은 수많은 예술 작품과 그 작품을 창조해낸 작가들에 대한 헌사이기도 했다.


작품 이외의 이야기지만 이 글을 자신의 이야기로 여긴 세잔이 에밀 졸라와 멀어졌다는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그도 역시 수많은 사람들 풍경을 재현해내지만 결국 그만의 작품이듯이

소설가 역시 주변의 많은 사람을 을 자신의 소설에 삭혀내지만 결국 ‘작품’일진대....

모르긴 몰라도 글에서처럼 크로드가 상드 르와 절친이듯 에밀 졸라와 세잔이 절친이었다면...

세잔의 그 후의 삶이 더욱 외로웠을 거라는.... 아 그래서 더욱 그림에 정진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나긴 했다.

에밀 졸라의 성공이 불러온 안락한 삶에 대한 세잔의 반응으로 나는 고쳐 생각하고 싶다. 

사랑하지도 않는 아내를 줄곧 그려낸 세잔 클로드 역시 아내를 너무 사랑했지만 결국은 그 아내에게서는 세월의 흔적이나 발견해내고 여전히 시들지 않는 연인 ‘작품’으로 들어서는 클로드

클로드는 글의 말미에서  죽어버린 아들...... 을 다섯 시간여 그려낸다. 그

림을 다 그리고 난 후 슬며시 미소를 짓는 클로드.. 

모네가 아내 까미유의 임종을 그림 그림이 아주 자연스레 연상되었다

죽어있는 이미 시체로 화한 아들을 그려 내는 그 독특한 소재에 정신없이 빠져있는 화가.... 를

당신은 냉혹한 사람 말 같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치부할 것인가. 혹은 이해할 것인가

삶은 거기부터 이미 당신과 나의 사이를 가르고 있다. 

새로운 계절이 바람 깃에서 다가오고 

점점 그 힘이 왕성하여지며 

세상 모두 존재하는 것들을 흔들리게 한다. 

그리고 바야흐로 

그 모든 것들에 새로운 색을 입히기 시작한다. 신은 가장 위대한 작품을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작품을 매시마다 재현 창조해내는  혹은 그 과정조차 예술이 되게 하는....

과거와 현재를 거침없이 아우르는 현존 최고의 작가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이고!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을 단조롭고 입체감이 없다는 이유로 낙선시키자 에밀 졸라는 마네예찬을 기고했다. "우리 아버지들은 쿠르베를 비웃었으나 지금 우리들은 그의 작품 앞에서 황홀해진다. 우리는 지금 마네를 비웃는다. 그러나 우리 아들들은 그의 그림 앞에서 황홀해할 것이다. 나는 노스트라다무스와 경쟁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멀지 않은 시일에 이 기묘한 사태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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