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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Sep 22. 2016

탐욕을 줄여주는 광선

가을 햇살

산길은 딱딱하고 가팔랐으며 다리는 무거웠다.

그럼에도 오랜만이라선지 설렘... 조금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약간의 울컥함..

그러니까 오랜만에 만난 情人과의 해후 같더라는 것,..

몸이야 여전히 무겁고 힘들지만 이런 느낌들이 몸을 아주 가뿐히 이기더라는 것,

다리의 투덜거림 정도야 아주 가볍게 무시할 수 있더라는 것, 

소소하지만 내가 나를 이기는 일도 된다는 것,  


북한산 숨은 벽은 평일에는 별로 사람이 없는 산길이다.

더군다나 산을 오르기에는 어중간한 시간... 열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니

종일 스쳐 지나가는 몇 사람 만난 게 전부다.

사람 없는 산은 묵묵하지만 유별스레 다정하다.

길도 그렇다 자드락길 지나 된비알이 많은 얼핏 보면 아주 사나운 길들인데 사람 없으면 부드럽다.  

더불어 한줄기 바람이 다가온다.

그 서늘함. 그 청랑함 그 청신함..... 바람아 네 정체는 무엇인가... 

가을 산에 부는 바람은 봄바람과 궤를 달리한다. 

봄바람이야... 그 속에 품고 있는 게 너무 많다. 보아야 할 것 만져야 할 것도 하다못해 갓 돋아난 새싹들에게 줄 영양제도 담고 있어야 한다. 마치 한가할 겨를 없는 반반한 계집의 가슴속 같기도 하다. 도무지 안온치가 않아. 점잖은 사람 쉬 끼어들기 어렵다.  

그러나 초가을 바람은 비어있다. 다 태우고 다 내보내버린 서늘한 빈 가슴이다.

남은 일이라고는 겨우 이별해야 할 나뭇잎들.... 가볍게 져내리라고... 그저 남은 유일한 기운으로 

길 잃은 나그네처럼 혹은 길 찾는 나그네처럼 여기저기 산을 헤매는 중이다.

키워 왔던 나뭇잎 말려주려고 나뭇잎 가볍게 하기 위해 훠이 훠이 다니다는 중이다. 

그러다가 나뭇잎인가.... 나뭇잎으로 날 여겨 내게 다가오는 바람이다.

(열대 지방에 사는 꽃사마귀는 탈피를 하며 점점 아름다워진다. 살이 점점 투명한 분홍빛 도는 흰빛으로 바뀌며 오무리고 있으면 영낙없이 꽃이다. 몸이 꽃이 되어가더니 기이하게도 향기까지 내뿜는다. 꽃인줄 알고 벌과 나비가 다가오고 맛있게 냠냠먹는 꽃사마귀!. 가 생각나더라.)

소나무 그늘아래 앉아 숨은 벽과 인수봉을 한참 바라보았다. 

건너편 백운대 줄기 아래 그리고 소나무 아래 바위 아래 까지... 보이던 날이었다.  

상장능선은 손에 닿을 것처럼 지척인 듯 선명했고 그 산길 너머 오봉은 언제나 아스라하게 보였는데

오늘 잘생긴 남자의 굵은 눈썹처럼 짙고 싱그럽게도 또렷했다.  

그리고 그 뒤... 셀 수 없이 이어지는 섞이는 혹은 홀로 흐르는  산그리메들.... 

저 멀리 아스라하게 한강물은  은빛으로 한줄기 가느다란 길이 되어 빛나고 있었다.  

햇살은 마치 하늘 속이라도 보여주려는 양. 푸르게 부시 고투 명하다. 

산속이 그렇게 환히 눈부시게 속살을 드러내는 것 처음이었을까... 

숨은 벽을 다 걷고 밤골로 내려갈까 망설이다 다시 뒤돌아서 오던 길 걸었다.

어두운 골보다는  하늘 아래 길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아까 그 소나무 자리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사람 아무도 없는  산 능선 바위 위....

갑자기 요란한 소리르 내며 헬기가 다가왔다. 밤골 골짜기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이 났나...

순간적으로 든 생각.... 나중에 생각해보니 연막탄이었다. 주황색  옷을 입은 대원이 줄을 타고 헬기에서 내리고

다시 저 어리 한 바퀴 돌고 온 헬기에서 침대 비슷한 것이 내려졌다.

아마도 헬기는 한 군데에 떠있기는 어려운 건지 다시 먼데를  돌다가 다가와서 침대와 사람을 싣고 떠났다. 

산자락 아래 동네길에는 이름도 괴상한 며느리... 운운의 고마리 꽃과 거의 흡사한..... 꽃이 한가득 피어나 있었고 잉크 귀하던 시절 짓이겨져 청마의 글이 되었던 짙은 청색의 달개비 꽃도 한창이다.  

초가을의 서기가 충만하던 날. 





가을 매미 한선의 소리는 여름의  그것과는 달리 애달프다.

이제 어느 매미 살아있어 짝을 해줄 거라고 저리 일찍도 일어나 애잔하게 우는지,  

어쩌면 매미처럼 아침을 빨리 알아채는 생물도 없지 싶다. 

사실 새벽과 아침의 사이를 어느 누가 나눌 수 있을까, 언제나 아침은 새벽 속에 숨어 있다가 

마치 꽃피는 순간처럼 어느 순간 나타나는 것을,

그런데 올해 새벽과 아침을 구별하는 법 하나를 알았다. 

매미가 울면  아침이고 그전이라면 새벽.

신기하게도 매미들은 탈피를 시작하고 마치는 시간은 모두 비슷하다고 한다.  

땅을 뚫고 올라와 일찍 자리를 잡은 애벌레나 한참을 헤매다 늦게 자리를 잡은 애벌레는 나무에 매달리자마자 허둥지둥 탈피를 한다고 하니, 마치 같은 시간에 탈피를 하기로 약속이나 한 듯 

어느 동화작가는 이런 매미가 같은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긴 잡초도 매미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른 봄에 솟아나는 잡초는 아주 느긋하게 열매를 맺지만 봄 가고 여름 온 뒤에야 솟아나기 시작하는 풀들은 솟아나자마자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매미도  잡초들처럼 지금 급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애달프게 우는 것이고 ,

처서 지나 백로시 그리고 추분 완연해진 가을이 품으로 다가든다.   

말라가는 풀냄새는 비릿하면서도 향기롭다. 

나뭇잎들도 바삭거리며 몸안의 습기... 향기를 내보낸다.  

더불어 나무의 그늘이 짙어진다. 사시장철 나무의 그늘이야 존재하지만 가을 그늘은 확연히 다르다. 

형언키 어려운 투명한 광선 아래 짙어지는 그늘은   뇌의 피질을 스치며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들추어내는 햇살이라고나 할까,.. 

저기 강화 들판 어디에는

기러기가 날아들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닌 그 무서울 정도의 공평함은 얼마나 사무사인지

그러면서도 또 얼마나 냉정한지,

창조주의 속성을 가장 많이 들여다보게 하는 창조물이 바로 시간이 아닐까,

더불어 가을 햇살은 탐욕을 줄여주는 광선이 아닐까,

그래서 어느 때보다 사람의 이면,

자신의 이면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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