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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Oct 18. 2016

귀주성 여행

서강천호묘채





하늘에는 삼일 이상  맑은 날이 없고 땅에는 세 평 평지가 없으며 

백성들에게는 서푼의 돈이 없다는 곳이 귀주성 귀양에 대한 말이다.   

습하고 곤고하며 구슬픈 이야기로 여겨지는 것은 

천박한 자본주의의 속습에 젖은 탓일 게다. 

모든 삶의 아름다움은 누림이 아니라 극복이나 저항에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여전한 사유의 가벼움은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으면 비집고 들어서서 나를 그렇게 몰아간다.

집을 떠나  다문 며칠이라도 나그네가 된다는 것은

몸의 떠남만이 아니라 정신의 구태의연함도 버리는 시간이기도 할진대,....

머릿속을 구획으로 나누며 정리해본다. 

뺄 것은 빼고 아담하여 보존할 것은 조금 더 강하게 지지대를 놓아주고  

        

깊은 밤 귀양 공항에 내렸다.

새로 지은 듯한 공항 건물은 넓고 조용했으며 우아해 보였다. 

돌아오는 날 시간이 느긋해서 공항 여기저기를  살펴보니 

완성한 지 얼마 안 되는 귀양 공항은 사용하는 곳이  사용하지 않는 곳보다 더 적었다.

아마도 귀양 공항의 그 <빔>이 우아함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얼마 안 있어 <빔>은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고 우아함 역시 사라지겠지,        

공항을 나서니 습기 같은 비가... 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드러운 습기.... 

는개가 닿는 듯 닿지 않는 듯 얼굴을 스쳤다.

그리고 는개는 오 박 육일 동안의 귀주 여정 중 내내 그렇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하늘에는 삼일 이상 맑은 날이 없고..... 

라는 귀주에 대한 옛말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여행 오일 째 되던 날. 이른 아침 호텔에서 조식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서강천호묘채ㅡ묘족마을을 찾아가려면 귀양에서 네 시간 버스를 타야 한다고 했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도착한 서강천호묘채는 저 아래 골짜기에서 살짝 첫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 나서도 얼마나 산을 굽이굽이 내려오는지, 

귀주는 산이 90%가 되는 지형이라 어디를 얼마나 오르고 내리는지 

어쩔 때는  산 중턱을 돌고 돌아서 어지러울 때도 많았다. 

워낙 공간 지각력이 없는 사람이라 더욱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고즈넉하고 아득한... 오래된 나무의 결이 보이는 옛 마을을 기대했는데

동네를 시작하는 입구가 꽤 넓은데도 사람이 가득했다.

거기다가 전통복장을 하고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나이 든 노인네들과 

길게 줄을 서서 그 음악에 맞추어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춤을 추는 할머니들.... 은

그들 특유의 환영의식이라기보다는 자신을 파는 것처럼 여겨져 씁쓸했다.

그래도 그들에게 격을 잃지 않게 한 것은 

낯선 대나무 악기들이 빚어내는 음악이었다. 

아주 단순한 곡조가 한도 없이 반복되고 있었는데 

그 간결함이 마음에 스미는 건지..... 

깊은 산속에서 홀로 있다가 누군가가 그리워져서

눈물 한 방울 살짝 담은,  

그래도 견뎌야 한다는 인내의 고를 양념처럼 넣은, 

그래서 슬프고 아득하면서도 결기가 느껴지는 곡이었다. 

곡에 맞춰 천천히 흔드는 몸의 흔들림은 춤이라기보다는 

배냇짓처럼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산을 첩첩 히 집으로 싸안아가는 

혹은 산을 다랭이 논으로 그려가는 

오랜 세월과 삶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싶었는데

삶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가장된 묘족 민속촌처럼 보였다.

화려한 묘족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거의가 중국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관관객은 거의가 다 중국인이었다. 

가이드 말로는 이제 중국도 발전을 해서 특히 젊은이들을 위주로 

전통이 보존된 소수민족의 삶을 찾아 떠나는 여행객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돈이나 권력만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심은 근원을 향하는 생래적인 회귀 정신이 아닐까,

당연히 골목길로 들어선다.

가파른 길, 돌로 만들어진 길,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로만 다져진 낯선 길을 걷는 기분은

나그네 객수의 정수이기도 하다.   

늙은 할머니가 집 앞에서 세수를 하고 있었다.

피부는 까맣고 몸은 아주 자그마하다. 얼굴도 마치 사과 한 알만 하다.            

그 작은 얼굴에 가득 패인 밭고랑 같은 주름을 헤치며 낯선 나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낸다. 

수줍으면서도 그러나 호기심이 반짝거리는 젊은 시선. 

중국의 여러 소수민족 중에서도 특별히 신비롭게 여겨지는 묘족..... 의 미소였다. 

묘족의 묘는 풀초 변과 밭전의 모양으로 되어있다. 

그래선지  풀과 나무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한다.

묘족의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는데 나무는 아이와 함께 자라나고

생명을 다하면 그 나무 밑에 묻어준다고 한다. 

그래서 묘족에게 나무는 자신의 조상이기도 하다는 것, 

그렇게 골목길을 걷다가 아주 오래된 은 세공사 집을 만났다. 

한국어로 된 설명까지 팻말에 적혀있었다.

나무로 된 집안에서 정말 뽀얀 분가루 같은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집이었다.

그럼에도 유리 케이스 안의 은세공품들은 어느 화려한 거리의 명품보다 더 품위 있어 보였다.

귀걸이를 내주던 젊은 청년의 순박한 미소도 아름다웠다.     

귀걸이를 하나 사고 싶었으나

도무지 소통이 되질 않아서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입구 쪽에는 여전히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제야 보니 나이 든 사람들 가운데 젊은이들이 술을 권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들은 아무에게나 술을 따라주고 직접 입에 대서 마시게 했다. 

일행 중의 한분이 호기롭게 그녀들이 먹여주는 술을 마시더니

차를 타고부터 내내 거북해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술잔에 대고 술을 마셨겠냐는 것.

        

사는 것 시들해 

배낭 메고 나섰구나. 

노숙은 고달프다! 

알고는 못 나서리라. 

그 아득한 길들!// 달팽이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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