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과수폭포
아름다움이 형상에만 있지 않고 상상 속에서 무한 확장한다는 전제를 둔다면
산해경은 참으로 아름다운 글이다.
글의 어투는 간결하지만 품은 뜻은 크다.
그 커다란 폭 속에서 마음대로 노닐 수가 있으니
새로운 장난감을 앞에 둔 아이처럼 즐겁기도 하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나타나면 삼년이 기근이 들거나
瑞獸가 보이면 풍년이 든다는데
유심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지극히 괴이한 이야기ㅡ 실재하지 않는 상상속의 동물들ㅡ를 거침없이 있다! 로
선언해선지 독자에게 밀고 들어오는 힘이 강하다.
산해경은 중국의 신화서이자 역사서로 구분하기도 한다.
황과수폭포를 가면서 가이드에게 황과수나무에 관해서 들었다,
그곳에만 있는 귤나무 종류인데 그 잎들이 만유인력에서 벗어난....위로 솟구치는 잎이란다.
누우런 과일이란 뜻의 황과... 수...가 많아서 황과수 폭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저절로 산해경 생각이 나더라는 것이다.
아기이파리가 나무에서 솟아날 때는 당연히 만유인력과는 상관없다는 듯
위로 솟아난다. 그러나 다 자라면 옆으로 평평하게 눕거나 아래로 쳐지게 된다.
그러고보니 황과수 나무...정말 그 잎싹들이 다아 위로 솟아나 있다.
신기하도다! 왤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황과수 폭포를 향해 걷는다.
멀리 폭포자락이 보인다.
아 혹시 그런가....폭포가 빚어낸 그 습한 기운들이 오히려 잎싹들을 솟구치게 하는 건가.
저 우람한 물줄기의 정기를 받아 거침없어 지는가,
물은 놀라울 정도로 상반된 면모를 지닌다.
아무데나 담기는 유함과 한없이 밑으로 흐르는 겸손함 외에도
고여 있으면 더 이상 고요할 이 없이 정적인 존재이지만 함께 모여 흐르기 시작하면 무섭다.
무서움을 지나쳐 루비콘 강에 이르듯 아주 강렬한 매혹에 빠지게 한다.
몇 년 전 브라질에서 이구아수 폭포...
그리고 악마의 목구멍이라 이름 붙여진 장소 앞에 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자살을 했고 혹은 그 충동을 느낀다고 했다.
형언키 어려운 자연 앞에 서면
그 절대성은 지극한 아름다움이나 숭고함 자체다.
사람의 속에 잠자고 있던 절체절명의 존재점을 깨어나게 한다.
악마의 목구멍은 내겐 어떤 홀릭~ 마치 그 무한한 물의 웅덩이가 나만을 끌어당기는 자석이라도 되듯이
오직 나를, 나만을 향한 사이렌처럼 여겨졌다.
그 깊고 장대한 형상이 나를 향해 다정하게 손짓하는 느낌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아주 강렬한 쾌락이기도 했다.
소리는 어떤가.
그 거대한 소리는 조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소리인데도 절묘한 하모니다.
어떤 음악보다 더 파고들며 나를 정화시켜주는....음악이다.
황과수 폭포는 신기하게도 상하 좌우 앞과 뒤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아주 특이한 폭포였다.
당연히 앞에서 걸어가며 이모저모를 내내내 살펴보다가 폭포의 옆을 바라보며 걷게 되다가
이내 폭포의 뒷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니까 폭포 안에서 폭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폭포 저 아래로 이어진다.
물론 가장 신비로운 곳은 폭포의 안에서 폭포 밖을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폭포가 하나의 물방울로 되어졌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실제 물방울들은 모두 다 그 형상이 다르다.
아마도 사람의 얼굴처럼 각각 다를 것이다.
내가 모래 알갱이 먼지 하나라는 것을
폭포 안에서 부서져 내리는 폭포,
그 무수한 물의 알갱이가 부서져 내리는 것을 보며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며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존재이기도 한 그것들을 보며
기이한 동질감에 마음이 젖어 왔다.
아름다움은 그저 기쁨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오히려 적막한 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