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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Oct 26. 2016

귀주성 여행

가장 아름다운 상처 마령하 대협곡






道라는 문자는 목을 빼 머리(首)를 늘어드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상형하고 있다.

즉 누군가 희생자의 머리를 가지에 매달아 이것을 앞세워 나아갈 때  

그 진행에 의해 만들어지는 루트가 바로 길 ‘도道’라는 것, 

이런 길들이 만나는 곳이 ‘X’자의 기원이며( 십자가의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

‘文’의 기원이기도 하다는 것,

(그러니 이 文은 또 얼마나 깊음인가)

이 道가 종교화 되어 도교가 되었고

다도 서도 유도등을 만들어 냈으니,(페이퍼로드의 서문에서)

그러고 보니 도는 참으로 상반된 의미의 단어이기도 하다.

길이라는 유형의 가리킴 보다 더 많은 무형의 수많은 길이 있으니.

적절치 않은 비유일지 몰라도 

여행은 길 위에 서는 것이니  

道를 행하는 일이라고 이어본다면 지나친 걸까,    


여행 사흘 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로 불리우는 마령하 대협곡으로 들어섰다. 

버스에서 내리고 다시 꽤난 긴 길을 걸었다. 

여전히 는개 같은 비는 나를 다정하게 감싸 안고...  

협곡은 74KM라고 한다. 높이는 200M 그러니 수많은 폭포도 200미터이다. 

일억 팔천만년전에 땅이 갈라져 생긴 골짜기 맨 아래를 내려갔다.

숲의 기운이 골짜기에 사무치고 있었다. 

고대의 기운이랄까, 

폭포의 물줄기들은 마치 물보라처럼 

아니 은빛으로 찬연히 빛나는 우아한 베일처럼 하강하고 있었다. 

폭포가 지닌 우레같은 소리와 몸짓이 전혀 없는우아한 나빌레라...였다. 

우기 시에는그 모든 협곡이 전부 다 폭포를 이루어 거대한 장관을 이룬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바라본 폭포는 그렇게 거대하거나 장관이 아닌  

참으로 섬세하기 그지없는 사랑하는 여인의 손길 같은 폭포였다.

폭포 아래에서는 아주 작은 풀들이 자라나고 있었는데

풀들을 품은 폭포수 아래의 땅....

틀림없이 폭포수의 영양아래ㅡ

마치 석회동굴이 자라나듯 조금 씩 조금씩 자라났을ㅡ 땅은

프랜시스베이컨의 페인팅 속의 검은 우산처럼 보였다.  

거칠고 탐욕스런 세상 속에서 나를  가려주거나 유일하게 품어줄 곳, 

그러나 우산 아래 나 역시 오직 나만을 향한 기이한 존재~~

맨 처음 그의 페인팅이란 그림을 보며 든 짧은 생각이 

마령하 협곡속에서 생각나더라는 것,

한번 연상이 되니 자꾸만 각인되더라는 것, 

나와 함께 한 지인은...

아 박쥐동굴 같아...저 안에 무수한 박쥐들이 웅크리고 있을 것 같아.

나는 그녀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박쥐는 원시적 느낌을 풍기는 태고의 조류 같기도 하니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의 나이가 되어선지

여행지에서 낯선 풍광과 낯선 습속과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적어도 겸손해지기는 한다.     

아무에게나 같은 잔을 수없이 들이대는 것을 

불결함보다는 불결함을 뛰어넘는 정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자그마하고 까맣고 주름진 얼굴 속에 피어나는 삶이라는 꽃을 바라본다. 

귀주성에서는 꽃을 엮어 만든 화관을 파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곤 했다. 

가을이라 그다지 많은 꽃들이 피어나 있지는 않았어도

진한 부겐베리아를 위시해서 빨갛게 익은 열매나 구절초 쑥부쟁이를  엮어 

아름다운 화관을 만들어 길가에 서서 팔곤 했다.

꽃을 꺾어서 엮으며 이리저리 조화로움을 봐가며 틀을 잡았을 시선이 보이더라는 것,    

그 화관을 사서 거침없이 머리에 쓰는 사람은 또 어떤가. 

그 단순함 소박함 그리고 거침없음이 또한 나의 소심함에 대비 좋아보였다. 

나는 하지 못했지만   

이런 시선이 나는 자유이고 민주라고 생각한다.

화려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기도 하다는 것, 

예술은 저항이며 규범과 상식을 뒤흔드는 것,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라며

수많은 성형 퍼포먼스를 했던 오를랑의 예술은 

현대예술을 적어도 열린 마음으로 보는 내게도 여전히 멀지만

삶이 지닌 지난한 예술성. 그 누구라도 예술가라는 

즉 예술의 보편성랄지 모두가 다 예술가랄지 

그 누구도 똑 같은 삶은 없다는...단 하나의 고유한 예술성. 

예술에 대한 나만의 이해력이 생기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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