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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Nov 05. 2016

쓰촨성 여행

구채구에서


이해할 수 없어서 기억된 글들도 있다. 

흐릿하긴 하지만

체홉의 단편소설 <미인>에서 

작가는 아름다운 소녀를 바라볼 때 

욕망이나 쾌감이 아닌 슬픔이 다가온다고 했다. 

아름다운 것이 왜 슬픈 것일까,

알 수 없어서 머릿속에 남은 경우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무엇이든 이해하는 나이가 되어선지 

아름다운 소녀뿐 아니라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는

저마다 슬픔의 빛이 어려 있다는 것을 안다.

장족마을로 꾸며진 전시용 쇼핑센터를 지나 어디선가 점심을 먹은 후였을 것이다. 

구채구의 어디나 다 그렇지만 구채구는 물만이마니 아니었다.

바라보이는 모든 산들은 정말 빼어난 풍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식당 문을 나서는데 

바로 지척의 높다란 산에서

노오란 나뭇잎들이 바람을 타고 날고 있었다. 

아니 노란 잎새들은 바람의 날개가 되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던 바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산의 수많은 나무들은 한 방향으로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고

그 위를 조그맣고 가느다란 나뭇잎들이 

바람을 시중삼아 나무의 사열을 받는 듯...... 

무엇이든 꿰뚫어보겠다는 듯 눈부신 가을 햇살은 

그런 그들은 찬연히 빛내주고 있었다.

내겐 부족한 것이 많은 대신

자연에 대한 센서만 유별나게 발달해 있는 것일까, 

그 광경을 바라보는데 왠지 가슴이 먹먹해 왔다.

바람이 그치고 나무들은 고개를 들었고 

노오란 이파리들은 꿈처럼 사라져버렸다. 

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거울을 만들었다. 

악마가 나타나서 심술을 부리며 거울을 깨트린다. 

거울이 114개 조각으로 깨졌다. 

신의 나라에서 내려온 거울의 파편은 구채구라는 땅에서

아름다운 호수가 되었다, 

그러니 구체구는 신의 거울이다.

거울처럼 보이는 물,

자연이나 사람이 아닌 신의 신비로움을 지닌 물,

전설에서 연상되어진 것들은 

정말 구체구의 물 안에 다 있는 듯 햇다.  

구체구안의 물빛은 이제까지 내가 보아온 물빛과는 전혀 다른 

마치 그 안에 손을 담그면

마치 그 안에 실크손수건을 담그면 

마치 그대로 물이 들것 같은 빛깔이었다.

곳에 따라 시간에 딸 햇살에 따라 구체구의 물빛은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같은 물빛도 없었고 우리가 흔하게 보아온 투명하게 맑은 물도 없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고 가지 못했던 <물의 세상>을

물을 다스리는 어진 왕 자비를 베풀어 

구경이라도 하라며 

혹 그 속살 보여주는 것 아닌가,

고여 있을 만한 곳에서는 고여서 고요하게 

흐를만한 곳에서 유려하게 흐르고

만나는 곳에서는 만나고 작은 곳이라도 니것내것 나누기도 하는, 

아기자기한가 하면 거대하고 거대한가 하면 무심하고 

무심한가 하면 미소 짓는 그 수많은 물들 물들 물들

뿐이랴,

형언키 어려운 빛깔을 지닌 물들은 오히려 더 맑아서

주위의 산들을 그대로 품에 담고 있었다.

한량없는 그 너그러움 까지 구체구의 물은 

천의무봉 그 자체였다. 

나무로 된 길들을 걷다보면 선경이 따로 없다. 

선경이니 나는 신선 아닌가......

택도 없다. 

신선은 커녕 가이더 뒤따라 다니기도 사진 한 컷 찍기도 바쁜 시간이다. 

언제나 그렇다 

인생은 아쉬움 속에서 흘러가는 것이다.

이곳을 보면 저곳이 눈부셔 보이고 

저곳을 향해 가면 이곳이 그리운 법이다.

떠나가 있으면 집이 그립고

돌아오면 눈빛은 다시 아득해진다. 

그러니 모든 흐르는 것들은 그리움의 배면일 것이다.  

쌤 아무래도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들 자작나무 가터요.

글쎄, 

나뭇잎은 틀림없는데 근데 왜 수피가 빨갛냐구요. 하얘야지, 

그러니까, 

그러다가 아주 굵은 나무 밑에 쓰인 

홍자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자작나무 자다. 

붉은 자작나무......

그 노오란 이파리의 주인공, 

바람을 벗 삼아 오히려 비상하던..... 

구채구를 떠난지 언제인데

여전히 이 깊은 밤에도

노오란 자작나무이파리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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