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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Nov 10. 2016

서릿가을

가을에 대한 예우

국화분 하나를 샀다. 가을에 대한 일종의 예우였다. 그렇지 않은가. 빨갛게 열매 익어가는 남천나무도 없고 시들어가는 맨드라미도 없으며 찬 서리에 색깔 미워져가는 과꽃 한그루도 없다면, 그러니 가을 뜨락 없는 사람이라면 필히 국화분 하나는 사서 거실에 두고 ‘국향호흡’이라도 드문드문 해야 하질 않겠는가. 제주도에 가면 자생으로 크는 선인장 단지가 있다. 그곳엘 가면 선인장 국수 선인장 수제비 선인장 차 선인장 닭볶음...등등...온통 선인장 음식이다. 해 저물 무렵 그 동네에 들어섰는데 그 때쯤 초록 선인장은 옅은 회색빛으로 변해가더라. 어둠은 엿기름이 쌀알 삭혀내듯 빛을 삭혀낸다. 당연히 어둠이 삭혀낸 빛은 달콤한 감주처럼 몽환적인 색이 된다. 선인장두 그렇더라니까...그 밝은 회빛이 낮의 초록보다....더 마음속에 새겨지더라는 것, 호흡이라 하여 뭬 다를 게 있겠나. 국향이 깃든 공기를 호흡하면 국향호흡이 되는 게지. 정치하는 사람들의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쉬운 말 바꾸기나 어조 바꾸기 혹은 위치 바꾸기 비슷한 가벼운 어조가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그네들에게는 없는 쓸쓸한 로맨스가 거기 자리하질 않는가. 서글픈 대체요법이라 치더라도 그도 안하면 너무 가없는 일 아니겠냐며 가을이 나무랄 것 같기도 했다. 화분을 하나 고르고 난 뒤 핸드백을 여니 카드가 든 지갑이 없다. 기이한 일이다. 분명 이 핸드백을 들고 나오면서 보라색 작은 지갑..평소에는 카드와 운전면허증만 달랑 들어있기가 십상인 그 지갑에 돈도 구 만원 들어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큰 노랑 지갑을 보면서 아 지갑이 두 개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백에 작은 지갑을 넣었는데 사라진 것이다. 차에 이미 화분은 실어놓아서 어떡하죠 화분 다시 내리시겠어요. 아니면 제가 나중에 송금해드릴까요. 했더니 떼먹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던지 보내달라며 명함을 준다. 그리고 그 때부터 조금 전의 행적을 뒤집고 또 뒤집어 보았고 도무지 잃어버릴 곳이 없는 시간과 곳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그대로 음악회를 갔다. 정경화의 연주보다 지갑 생각이 심각하게 더많이 났다. 생각해보니 돈도 지갑도 없으니 주차료는 어쩐다. 다시 집으로 갈까 하다가 생각해보니 지인이 음악회를 온다고 했었다. 카톡을 했다. 주차료 좀 주세요.. 주차료뿐 아니라 음악회 팜플렛까지 사주신다. 그나저나 이 지갑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아무리 여기저기 가령 집이나 차안을 잘 찾으면 나올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나오지 않아서 결국 오늘 카드 분실신고를 했고 주민등록증보다 더 부담 없이 지니고 다니던 운전면허증도 재발급받아야 한다. 이게 무슨 문젠가...분명 지갑이 두 개네...하고 넣었는데 사라지고...그러고 보니 기억 속 한 자락에 그 지갑을 만지작거린 기억이 나기도 했다. 그 때가 언제인지....한참 전 것인지 바로 조금 전 것인지... 이 문제를 어떡하면 좋은가 멀티테스킹은 고사하고 바로 앞 손에 들고 지갑에 넣으며 생각까지 한 이 상황 속에서 어디에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돈 구만원도 그렇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사람 주는 건데...사실 며칠 전 지하철을 탓을 때 나이 많이 들어 보이는 뇌성마비이신 분이 전단지를 내 무릎 위에 놓았다. 다가오는 사람에게 작은 거라도...가 지론이기도 하지만 그분에게는 왠지 마음이 더 갔다. 지갑을 보니 딱 오만원짜리 두 장....결국 인색한 마음에 못주고 말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사람에게 한 장이라도 주었으면....그런데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인생 자체가 통째로 이럴 줄 알았으면.....으로 풀이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의 갈라진 혀처럼 보이더라. 결국 생은 무수한 선택으로 이루어진, 생이 촘촘이 스웨터 하나 만들어가는 뜨개질이라면 잃어버린 코와 빠트린 코로 인해 그 스웨터는 과연.... .종일 집에서 책 읽다 신문 읽다 인터넷에서 글 읽다를 반복했다. 가끔 엄마랑 감 먹고 포도 먹고 보성에서 부쳐온 양식 토하젖에 밥 비벼먹고 전화 몇 번...카톡 몇 번....오늘 하루 무엇인가를 전혀 잊어버리지 않는 하루라면 오늘 내 코는 빠지지 않는 것일까, 엄마는 오늘도 내게 그러셨다. 아야 니가 인자 앞으로 안늙고 딱 그대로만 있으믄 조거신디 말이다...엄마 지금도 이미 늙었고 앞으로도 계속 늙어갈 거예요. 그러고 보니 울 엄마 이 서릿가을에 꿈을 꾸고 계신 것 아닌가, 그것도 환한 봄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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