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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Jan 25. 2017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마르가리타 마리아 왕녀. 그녀는 22살에 요절한 합스부르카의 왕녀다. 

벨라스케스 디에고는 마르가리타 마리아의 초상화를

아주 어린 왕녀 때부터 성숙한 여인 이 되기까지 여러장을 그렸다. 

평생 프랑스의 우아한 문화를 사랑한 모리스 라벨은

벨라스케스 디에고가 그린 왕녀 마르가리타 마리아의 그림을 보면서 영감을 얻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작곡했다. 

파반느는 프랑스의 위엄 있는 궁정무곡이다. 


그러나 빈방에서 듣는 라벨의 파반느는 

어두운 조명이 주는 우아함은 있으나 너무 사려 깊거나 무겁다. 

라벨은 62세까지 독신으로 살다 죽었다.

그는 평생을 이렇다 할 애인도 없이 살았는데

그래선지 혹자는 벨라스케스가 그린 마르가리타 마리아 왕녀를 짝사랑하며 살았을 거라고 추론하기도 한다.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에도 마르가리타 공주가 나온다. 

공주 앞에는 아주 못생긴 난장이가 

공주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박민규가 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란 책표지는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에서 못생긴 난장이 여인만 밝게 부각시키고 있다.  

표지가 말해주듯 박민규의‘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아주 못생긴 여인과 그런대로 괜찮게 생긴,

그래서 누가 보아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와의 연애 이야기이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남자의 표현은 이랬다. 

“나는 그때 까지 못생긴 여자를 많이 봐왔지만 그녀처럼 못생긴 여자를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관심이 갔고, 사랑이라는, 아니 그 사랑의 다른 존재이기도 한 상처의 

두려움에 떠는 그녀와 차츰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된다. 

그에게는 무명의 배우였다가 나중에 잘 풀리게 되자 엄마와 자신을 버린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라는 인물이 그에게 생성해준 감정의 기저가

그녀에게 향하는 도화선에 불을 댕겼다는 것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엄마에 대한 연민이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치환되었다 하더라도

이제 갓 이십이 넘은 남자가 그대도록 사려깊은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다니 참 대단하다......

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읽어간다. 

그녀와 처음 짐을 들고 걸음을 함께 걸으면서 그는 그녀에게서 이성을 떠올리기 보다는 

라일락이 피고지던 지나간 봄 같은것,... 

피고 지는 인생의 환 같은것,.... 

젊은 아버지와 길을 걷는 처녀시절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한 시절을 풍미하는 음악과 시류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묘사는 책의 재미를 더하게 한다. 

그렇지,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영리한 작가는 독자의 시선을 돌리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사랑스러운 그녀에 대한 무묘사를 엘피 판과 핑크 플로이드 비틀즈등 과거의 소재들, 

그러나 심각한 중독 증세를 보이는 흘러간 문화로 자리를 채워 놓으니

제법 격이 있을 뿐 아니라 짜임새조차 훌륭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당당하려면 그녀의 못생긴 모습도 묘사가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그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다시 어떻게 변환되는가도 설명을 해주었어야 했다. 

적어도 나처럼 사람의 생김새에 민감한 속물들을 가르키기 위해서는, 

그녀만 보면 그저 사랑이 솟아나왔다가 보통의 사람들이 지닌 사랑의 생성물이라면,

그녀와의 것은 작가가 그렇게 긴 시간을 망설이다가 필을 든 것처럼 더 섬세하게 표현되었으면.

그런 바램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 

무엇보다 그는 아주 긴 시간 뒤에도 그녀에 대한 식지 않는 사랑에 대한 증명을 해내고 있었다. 

아주 젊은 나이에 시l작한 사랑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같은 농도의 그리움으로 기억한다는 것, 

이미 그녀는 한국이란 인물위주의 사회에서 벗어나 먼 외국에서 하나의 존재로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었으나..... 

누군가가 이 책의 미덕이 뭐냐고 묻는다면 너무 즉물적인 답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대답하겠다.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는 책이지요. 특히 사람의 생김새에 대한 총평이랄지 

첫인상 감상등 그 몹쓸 것들을 사정없이 버리고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더군요.’

내가 믿는 믿음의 세상에서도 모든 사람을 바라볼 때 사람을 외모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바라보며

하여 그 영혼 하나하나가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는 것을 아주 자세히 그리고 누누이 가르쳐 줌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는 되는데 어디서는 되지 않는, 

알면서도 여전히 사람에 대한 총평을 하거나 인상기를 쓰거나 판단하는 이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했는데.... 

시점을 달리해 그녀가 쓴 사랑의 편지는 훨씬 더 곡진하다. 

서정의 미학이 가득 차 있다. 

소설의 말미에 정말 여러 가지로 해석하게 만드는 소설적 변형장치도 박민규 다웠다.  

작가의 입담은 참으로 대단하다. 

글을 입담으로 표현한 것은 작가에 대한 폄훼가 아니라 대단한 칭찬이다.

어떻게 그리 다양하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아, 참 정말 잘쓰네. 칭찬이 저절로 나오는 책, 

작가는 책 뒤 작가의 말에서 아주 소리 높이 외치고 있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 

당신 <자신>의 얼굴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그의 글에서 나는 핏대를 느꼈으며 

그 핏대는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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