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노스웨스트준주의 오로라 마을 옐로 나이프
9월의 가을밤, 물결 하나 없는 고요한 호수 위에 비친 오로라는 어떤 모습일까? 캐나다 서부를 여행하는 중이었던 나는 자연의 신비를 만끽하기 위해 오로라 헌팅을 계획했고, 밴쿠버에서 비행기를 타고 3시간 반 가량을 이동해 북위 62도의 먼 땅에 위치한 옐로 나이프로 향했다.
영국이 이 땅을 식민지 삼기 전, 원주민이었던 이누이트 족은 날 고기를 먹고살았다. 그들이 들고 다닌 구리로 만든 노란색 칼에서 이름을 딴 옐로 나이프(Yellow Knife)가 바로 이곳이다. 그들의 후손은 여전히 옐로 나이프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다.
옐로 나이프의 올드타운을 걷다 보면 'Ragged Ass'라 이름 붙여진 길이 있다. 직역하자면 '다 해진 멍청이'라는 뜻인데, 거리명으로 붙여지기에는 다소 난잡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이 이름은 탄광 노동자였던 루 로셰(Lou Racher)에 의해 지어졌다.
1970년 말의 어느 밤, 로셰는 가족들과 둘러앉아 술을 마시다가 열심히 일한 것에 비해 얻는 것이 없다는 것을 한탄하며 "우리는 모두 'Ragged Ass Broke'이기 때문에 이 길의 이름을 'Ragged Ass Road'라고 지어야 한다"는 농담을 던졌다. 로셰는 이 길 위에 지어진 9채의 집 중 6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에 힘이 있었고, 그의 아들에 의해 실제 거리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옐로 나이프의 볼거리는 오로라뿐만이 아니다. 매년 2미터 두께의 아이스 로드가 형성되는 그레이트 슬레이브 레이크(Great Slave Lake)는 약 3만 제곱미터로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수심의 깊이는 614미터로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깊다.
Great Slave는 위대한 노예라는 뜻인데 이곳에 흩어져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낮춰 부르는데서 따온 명칭이다. 이곳 캐나다 땅이 원주민들의 설움 위로 건설된 나라임을 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부시 파일럿 기념 바위 위에 올랐다. 이곳은 옐로 나이프 건설 초기에 목숨을 걸고 이 땅에 건너온 부시 파일럿들의 공헌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곳에 오르면 옐로 나이프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높이 약 50미터의 낮은 바위 언덕이지만 신시가지와 그레이트 슬레이브 레이크까지 내다보기에 부족하지 않다.
옐로 나이프는 10월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기 때문에 내가 방문한 9월은 아직 가을의 정취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이곳은 겨울이 되면 최고 영하 10도에서 최저 영하 4~50도까지 내려간다. 덕분에 호숫가의 얼음이 두껍게 얼면 스노모빌, 독 슬래딩, 얼음낚시 등 다양한 레저 활동을 즐길 수 있다.
2미터가량의 두께로 어는 아이스 로드는 최고 45톤까지 무게를 견딜 수 있기 때문에 매년 겨울 짐을 실은 많은 트럭들이 이 길을 건넌다.
올해 초 인기리에 방영된 <꽃보다 청춘 - 아이슬란드> 덕분에 오로라 헌팅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많은 여행자들이 유럽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지만, 나사가 선정한 최고의 오로라 관측지는 캐나다의 옐로 나이프가 차지했다. 2일간 체류시 70%, 3일간 체류시 95%의 확률로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옐로 나이프의 낮은 기대보다 아름다웠지만 내가 진짜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두 눈으로 자연의 신비를 직접 목격하는 것. 그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하며 설레는 맘으로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로라 헌팅의 첫날밤이 깊었다. 차를 타고 굽이진 도로를 45분가량 달려 도착한 한적한 호수 앞에는 이미 몇몇 여행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로라 지수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구름이 많이 끼인 바람에 하늘이 막혀 제대로 된 관측이 어려웠다. 9월의 가을 날씨였지만 벌써부터 싸늘해진 공기 때문에 몸을 움츠리고 서서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렸다. 빼곡하게 수 놓인 별자리들은 곧 쏟아질 것처럼 까만 밤하늘을 채웠고 가끔씩은 별똥별이 지평선 너머로 떨어졌다. 덕분에 기다림이 따분하지만은 않았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구름이 걷히자 오로라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나는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듯 작은 움직임에도 감탄을 연발했다. 저 멀리서 한 곳에 모인 오로라가 조금씩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서서히 오로라의 향연을 구경할 준비가 되었다.
캐나다 옐로 나이프에서의 오로라 관측이 쉬운 이유는 위도에 있다. 오로라가 가장 잘 형성된다는 오로라 오벌(Aurora Oval) 바로 아래인 62도에 위치해 있어 아이슬란드처럼 먼발치에서 지켜볼 필요가 없다. 반짝이는 빛의 커튼이 바로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기 때문이다.
오로라가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가끔씩 다시 구름이 끼었다 걷혔다를 반복했지만 어렵지 않게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었다. 물결 하나 없는 고요한 호수 위로 오로라의 빛이 함께 비춘다.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는 유일한 빛줄기였다.
오로라가 머리 위로 둥글게 모여들었다. 녹색과 노란색의 빛이 하늘거린다. 오로라 지수가 높을수록 붉은색과 보라색을 띠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내 눈 앞에 소리 없이 펼쳐지는 오로라는 색깔을 입힌 얇은 천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처럼 아름답게 밤하늘을 장식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강한 오로라 빛이 바람에 치맛자락 날리듯 천천히 흔들렸다. 그들은 마치 생명력이 있는 것처럼 한데 모였다가 흩어지기도 했다. 우주와 자연, 그리고 살아있는 것들의 위대한 신비였다.
다음날 나는 더 남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고요한 호수 앞이었는데, 새벽 두 시가 넘어 인적이 드물었다.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고 두 다리를 동동거리며 오로라가 춤추기를 기다렸다. 가끔씩 챙겨 온 초콜릿이나 쿠키를 먹으며 무료함을 달랬다. 보온병에 담아 온 뜨거운 커피를 마시다 보면 극지방의 추운 날씨를 약간이나마 견딜 수 있다.
시간이 지나자 그들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들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하늘 위로 오로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먼지같이 빽빽한 별들 사이로 뿌연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트남 소녀의 긴 치맛자락처럼 살랑살랑 움직이는 모습에 나는 다문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희뿌옇던 오로라가 바람결에 펄럭이듯 움직였다. 그 모습은 시내를 흐르는 물줄기 같기도 했고 춤을 추는 여인의 몸짓 같기도 했다. 그때쯤 나는 찬 바닥에 누워 하늘을 조용히 감상하기로 했다. 다시는 못 올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두 귀에 이어폰을 꽂고 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를 틀었다. 그리고 차가운 호수 바람에도 따듯해질 수 있는 낭만을 느꼈다. 나는 함께 온 사람들과 손을 잡고 사진으로도 남길 수 없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것들에 대한 기억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기입했다. 지금 이 순간, 찰나에 남겨질 설레는 마음과 이 노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을 말이다. 오로라가 감싸 안은 우리의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Words are flowing out like endless rain into a paper cup.
종이컵 안으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처럼 이야기들은 흘러나와요
They slither while they pass,
지나쳐 가면서 미끄러져 들어가고
they slip away across the universe.
온 세상을 가로질러 사라져 버리죠.
Pools of sorrow, waves of joy are drifting through my open mind,
슬픔의 웅덩이, 기쁨의 파도는 내 열린 마음을 가로질러가고,
Possessing and caressing me.
날 사로잡고, 어루만지네요.
Jai guru deva om.
신이시여, 진리를 깨닫게 해주세요.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어떤 것도 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요.
<The Beatles - Across the Univer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