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이 그동안 겪었던 주요 경제 위기들을 돌아보고, 그 경험을 통해 현재의 경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예고 없이 반복되는 경제 위기의 역사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이를 우리는 '불경기' 혹은 '경기 침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상황이 심해지면 '불황'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게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 즉 '경제 위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제 위기는 예고 없이 우리의 삶에 찾아오며, 그 충격은 때때로 우리를 절망으로 빠뜨리기도 합니다. 1997년에 발생한 외환위기, 2008년에 일어난 금융위기 등은 우리나라 최근 역사의 대표적인 경제 위기입니다. 이때의 상황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사회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되었습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겨울의 추위보다도 더 혹독한 시기로 기억될 만큼, 사회 전체에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국가부도' 사태 IMF 외환위기
IMF 발생 당시 중앙일보 기사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에 엄청난 충격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 규모와 영향력 때문에 언론은 이를 '국가부도 사태',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고 묘사했습니다.
외환위기의 발생 원인은 복잡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금융회사들이 외국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대신 빚을 갚을 수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외환보유액이 부족해 이를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은 1997년 말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외화를 빌려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이 아기 돌 반지, 결혼반지 등을 기부하며 외채 갚기에 힘썼던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빚을 갚지 못한 은행들이 연달아 파산하였고, 이로 인해 기업들도 자금 조달에 실패해 망가졌습니다.
1998년에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5.1%로 크게 하락하였고, 실업자 수는 149만 명으로 급증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사오정'(45세 정년),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등의 새로운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그 시기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이를 통해 한국은 금융 시스템의 취약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은 후속 경제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나갔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리먼 브라더스' 사태
외환위기로부터 10년 후 또 한 번의 경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2007년부터 2008년에 걸쳐 벌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저소득층 대출) 문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미국의 부동산 시장 하락과 연계되어 금융기관의 도산을 초래하였고, 이는 세계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특히, 2008년 9월에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의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였고, 금융시장이 얼어붙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한국 또한 이 위기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2009년 경제 성장률은 외환위기 이후로 가장 낮은 수준인 0.8%를 기록하였고,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까지 급등하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수출을 늘려낸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였고, 미국 중앙은행(Fed) 등 주요 국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였으며, 한-미 통화 스와프 등의 정책을 통해 금융시장의 안정을 이뤄냈습니다.
이런 노력들을 통해 한국은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경제 성장의 길로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적 재앙 '코로나19 팬데믹'
IMF 외환위기는 한국만의 문제였고, 리먼브라더스 사태는 미국에서 시작된 문제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온 흑사병과 같은 여러 가지 질병 등과 완전히 다른 인류의 전체의 위기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위기가 어느 한 국가 만의 문제였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적 동시다발적인 큰 재앙으로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특수한 사항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의 경제 위기와는 다르게, 특정한 경제적 대책이나 정책 변화만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웠습니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를 초래하였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와 이동 제한 등이 이루어지면서, 국가 간 교역이 급감하였고, 전반적인 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주요 국가들은 이에 대응하여 금리 인하와 함께 양적 완화 등의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을 펼쳐 경제를 부양하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은 과도한 유동성 증가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촉발하였고, 이는 다시 물가 상승률의 급격한 증가를 초래하였습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이에 대응하여 금리를 인상하였으나, 이로 인해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경제의 불안정성이 높아졌습니다.
이는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3고' 상황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현재의 경제 상황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은 상태입니다. 경제 성장은 둔화되고 있지만, 물가 상승률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에 대한 위기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경제 위기는 대개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 과거의 경험으로 봤을 때 사실입니다.
따라서, 제2의 외환위기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주의 깊게 대응해야 합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한국이 겪었던 주요 경제 위기를 살펴봤습니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이들은 모두 그 시기의 한국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지만, 한국은 매번 위기를 극복하고 더욱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경제 상황도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잘 이겨내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지식 한잔의 생각?
최근 많은 전문가들이 지금의 경제 상황이 IMF 외환위기 당시와 매우 비슷하다고 합니다.
저 또한 IMF 외환위기 세대이기에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유독 정부만 위기설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사실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구제신청 하루 전까지 정부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정부가 다음 날 방송을 통해 IMF 구제신청을 인정하고, 그렇게 국가는 부도가 났습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이미 한 번의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그런지 솔직히 맹목적으로 정부의 말만을 믿기도 힘들지만 모든 경제지표가 빨간불이란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외환위기 당시와 똑같다, 그렇지 않다를 떠나
진짜 심각한 문제는 경제 위기는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26년 전 변변한 금광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무려 225톤, 21억 7,000만 달러에 달하는 금이 쏟아진 것입니다.
연초라 훈훈한 내용을 기대하셨다면, 그 건 아닙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국민들이 아기 돌 반지, 결혼반지 등을 모은 금 모으기 운동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IMF 외환위기 때는 국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하루빨리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금 모으기 등
국가의 시책에 적극 동참을 하였고 그 결과 빠른 기간에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당시와는 너무 상반된 분위기 같아 당혹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국민들은 이미 극도로 양극화되어 있고 정부는 과연 위기의식은 있기나 한 건지?
지금은 모든 문제가 정쟁화되고, 정치에 매몰되어 경제는 없고 오로지 정쟁만 난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안타깝게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진정 위기인걸 알기에 국민의 시선을 돌리려는 건지.
차라리 예전의 IMF 시절이 그리울 정도입니다.
당시에는 국민들이 경제적으로는 힘은 들었지만, 함께 극복해 보자 '으쌰 으쌰'가 있어 아마도 그렇게 힘든지 모르고 넘어간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 신혼시절을 보내고 있었고, 저의 부부 또한 아이 돌 반지, 결혼반지 다 같다 내놓으며 적극 동참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