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피와 증오'로 얼룩진 땅이 된 이유?
지중해 남동쪽 연안에 위치한 이스라엘과 그 옆의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이 작은 땅을 두고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지난 75년 동안 끊임없는 분쟁을 벌여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영토 분쟁이라는 범주를 넘어 다양한 국제 정치적 이슈와도 깊게 얽혀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국제관계와 이들의 대립 관계가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러한 이슬람 무장 정파인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분쟁과 이에 대한 주요 국가들의 역학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노예의 삶을 살던 유대인들을 이끌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갔습니다. 이 땅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현재는 대립과 충돌, 갈등과 분노가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였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양쪽 모두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지난 70여 년 동안 끊임없는 무력 충돌로 인해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며, 이 갈등의 주요 당사자는 아랍계 팔레스타인인과 1948년에 건국된 유대인의 나라인 이스라엘입니다.
민족 갈등, 종교 갈등, 영토 갈등 등 다양한 갈등이 이 지역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원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평화로운 이미지를 가졌던 이 땅이 어떻게 피와 증오로 얼룩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지중해 남동쪽 연안에 위치해 있고 그 옆에는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가 있습니다.
이 땅은 경상남북도를 합친 땅보다작지만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지난 75년 동안 서로 자신들의 땅이라며 분쟁을 벌여왔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불리는 팔레스타인은 오랜 역사와 함께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흔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원전 1000년경 이스라엘 왕국이 이 땅에 세워졌지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지며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했습니다.
이후 유대인은 로마제국의 지배와 반란, 진압으로 인해 이 땅을 떠나 유럽과 북아프리카 등지로 흩어져 살았습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자신들만의 나라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이 땅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2000년 동안 이 땅을 지켜온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갑자기 나타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땅을 조상의 땅이라며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영토 분쟁은 복잡하고 얽혀있는 역사적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이 지역을 지배하던 오스만투르크제국과의 싸움에서 아랍인들의 협력을 얻기 위해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아랍의 독립을 지원하겠다는 '맥마흔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유대인 금융가들로부터 전쟁 자금을 얻기 위해 '밸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에게도 독립을 약속하였습니다.
이렇게 영국이 두 국가에게 동시에 약속을 한 것이 이후의 복잡한 상황을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영국은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유엔에 책임을 넘겼고, 유엔은 1947년 이 지역을 유대인 구역과 팔레스타인 구역으로 분할하여 각각의 나라를 세우는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1948년 5월에 이스라엘은 건국을 선포하였지만, 팔레스타인인들과 주변 아랍 국가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선포 다음날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등 5개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였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 발생하였습니다.
독립된 국가를 갖지 못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였고, 이로 인해 테러와 보복 공격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복잡한 상황이 현재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평화를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3년에는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어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인정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협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부의 강경파들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협정을 이끈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1995년에 강경파에 의해 암살되었고, 팔레스타인인들 중 29명이 이스라엘의 극우 성향 사람에 의해 총기로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팔레스타인의 강경파인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향한 테러를 계속하였습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뿌리가 같은 사람들로, 유대인의 선조 이삭과 팔레스타인인의 선조 이스마엘은 모두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뿌리가 같은 이들이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현실은 더욱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19세기 독일의 군사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전쟁을 일으키는 데에는 그것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운동'이라는 뜻의 아랍어 단어로, 이집트에서 창설된 이슬람 운동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에서 파생된 조직입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에 반발하여 일어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운동, 즉 인티파다(아랍어 '봉기' '반란') 기간 동안 설립 된 단체입니다.
이후로는 이스라엘에 대한 암살, 자살폭탄 테러, 로켓포 공습 등의 활동을 통해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테러 단체로 지정받았습니다.
하마스는 그들의 강령에서 "어떤 당파도 팔레스타인 땅을 포기할 권리가 없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지하드(성전)는 대이스라엘 투쟁의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강경한 투쟁 노선은 팔레스타인 내의 또 다른 주요 세력인 파타당의 온건한 노선과 대조적입니다.
이로 인해 하마스와 파타당은 팔레스타인 내에서 주도권을 두고 대립하고 있습니다.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 중에서는 서안지구는 파타당이,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통제하고 있습니다.
하마스와 파타당 간의 주도권 다툼은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충돌의 배경 중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의 일부 정치인들이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인 서안지구를 이스라엘 영토로 병합하자는 주장을 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해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지도 세력인 파타당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스라엘에 강경하게 대응했다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배경으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수교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손을 잡게 되면 팔레스타인은 고립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공격을 통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불리한 판을흔들고자 공격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반격에 나서면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형제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하기 어렵게 되므로, 이는 팔레스타인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분쟁의 흐름은 주요 국가들의 반응을 통해 파악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하마스의 공격 직후 항공모함 전단과 미사일을 이스라엘 부근으로 지원했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에 국력을 과도하게 소모하는 것은 피하려고 합니다.
이는 미국의 주요 관심사가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이어 중동에서도 전쟁이 발생한다면, 미국의 이런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점령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 분쟁을 멈추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언하였는데, 이는 아랍 우방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마스 편'이 아닌 '팔레스타인 편'이라고 명시함으로써 하마스와의 선을 그었습니다.
반면 이란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가 지연되는 것에 반가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수천 명의 인명이 희생되는 상황 속에서도 각 국가들이 자신들의 국익을 위한 계산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입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갈등은 그저 두 집단 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국제 정치의 복잡한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이슈로, 주요 국가들의 국익과 전략이 얽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의 인명이 희생되는 냉엄한 현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복잡한 국제 정치의 판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은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