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을 기억에 새긴다.
나는 싸움을 좋아한다.
싸워 이기는 건 더 좋다.
그래서 책방이었나보다.
책이 좋다거나 글을 쓰고 싶다거나 하는
공간에 어울리는 이유 따윈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퇴사 후 나를 정의할 무엇으로
문득 떠오른게 책방지기의 삶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응원하는 이 하나가 없었다.
한명이라도 지지하는 이가 있었다면
되려 '내가 무슨..'하며 사그라들었을 문득.
책방? 서점? 왜? 니가?
책방을 운영하고 계신 분들 조차
조금 더 고민하고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직장에서 월급 받는 것만큼 좋은게 없다고..
그렇다면
세상의 반응이 이렇다면,
한번 싸워봐야하지 않겠나!
나는 싸움을 좋아하니까.
싸워 이기는 건 더 좋으니까.
2024.03.16
책 팔아선 먹고 살 수 없으니 퇴사는 꿈도 꾸지 말라는 만류에
적당히 타협해 커피머신을 들여놓고 투잡 뛸 각오로
커피도 파는 책방을 오픈했다.
동네 평균 연령 5~60대 이상
6시만 넘어도 한산한 골목길에...
처음엔 처음이니까 그런거다 했다.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아직 얼마 안됐으니까 그런거다 했다.
반년을 버티며 책들로 빼곡해진 공간,
이쯤되면 콩나물 시루까진 아니어도
새치머리칼 정도는 채워질 줄 알았다.
딸랑,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에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날들이 쌓여
오늘 '12월 31일' 이다.
아침부터 문닫을 때까지 혼자 공간을 지킬 때면
정말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멍청이 같이 하필 책방을 한다고 고집을 부러서
꼴 좋게 부서지는구나 싶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기대 같은 건 내려놓아야 했다.
그냥 버티는 거다.
할줄 아는게, 할 수 있는게, 그것뿐이라...
버틸만해서 버티는게 아니라,
희망이 있어서 버티는게 아니라,
포기할 수 없어서 버티는거다.
쪽팔려서 버티는거다.
미련해서 미련이 남아서...
역 근처 여행객들이 알고도 찾고 모르고도 찾는 책방의 사장님도
5년 이상 자리를 지켜내 단골도 많은 책방의 사장님도
경기가 없다고, 겨울은 원래 힘든 계절이라고, 내년은 더 힘들거라고..
그래도 2년은 버티라고 버티면 슬슬 책방 이름 정도 외우는 사람이 생긴다고...
희망을 가지라고 하는 말일까..
그만 포기하라는 말일까..
촘촘히 맺힌 말들로 볶인 속에 싸구려 고량주를 들이분 느낌이다.
길 가다 외딴 섬처럼 불켜진 공간을 보고
'여기가 뭐하는 곳이에요?' 물으며 빼곰 머리만 들이민 분들도 반갑다.
이쯤 되면 그냥 사람이 그립다.
2년만 버티라고 했다.
그러면 책방 이름을 알고 찾는 고객이 속속 등장한다고...
그 2년이 꽉 채운 2년이면 과연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직장에서 받은 월급으로 신간을 구입하고 월세를 내고 재료를 구입하며
쉬는 날 없이 9개월을 꼬빡 달려왔는데 더?
몇시간 후면 2025년이야.
그냥 2년이라 쳐주면 안될까?
나 좀 봐주면 안될까?
가는 해야..
오는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