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균

그때는 몰랐습니다.

by 상상이상

시골 촌놈.

어려서부터 삽질, 괭이질, 낫질, 망치질..

도구와 연장을 사용하는 일이 친숙합니다.

출생신고와 더불어 웬만한 일에는 초보 딱지를 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칼, 활, 총, 낚싯대, 썰매, 연, 아지트..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걸 자급자족했으니까.


맛있는 짜장면과 성룡 영화, 딱지와 온갖 장난감들..

시내는 사막이었고 정글이었고 보물섬이었고 파라다이스였어요.

장난감을 사려면 시내를 나가야 하는데..

당시 나에겐 혼자 시내를 나갈 용기도 차비도 없었습니다.

어쩌다 한번 타는 버스엔 늘 멀미라는 두려운 악령이 동승했어요.


군 입대 전, 학창 시절..

건설 현장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벌써 30여 년 전 이야기네요.

당시 하루 임금은 2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릴 때 부터 일로 단련된 몸뚱이만큼은 어딜 가도 빠지질 않았으니

처음 접한 건설 현장 일용직일도 금방 손에 익었습니다.

운좋게도 인솔자들의 눈에 띄어 금새 경력자들만큼의 일당을 받게되었지요.


쉬지 않고 일만 했습니다..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일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죽고 싶어서 일에 파묻혔던 것도 같습니다.

육신을 괴롭혀야 정신이 쉴 수 있었거든요.

낮엔 미친놈처럼 일에 몰두해 에너지를 탈탈 털었습니다.

그래야 잡생각 없이 잠들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거의 매일, 혼절에 가까운 밤을 맞았습니다.


무언가에 몰두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점심시간도 잊은 채 주어진 작업에 빠져있기 일쑤였어요.

말그대로 일에 미친놈처럼 밥도 잊고 쉬지도 않고 일만 하니 부리는 사람이 부담스러워할 지경,

같이 일하는 이들로부터 관리자에게 잘 보이려고 안달 난 놈이라는 뒷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쇼하는 놈이 아니라고

살려고,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거라고

사람들을 향해, 세상을 향해 목놓아 울었습니다.

좁은 단칸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엾은 울음소리였지요.


빗자루질 하나에도 영혼까지 쓸어 담는 일꾼,

시키지 않아도 혼자 두세사람 몫을 하는 일꾼을

마부들은 휴일도 없이 불러 달리게 했습니다..

사약을 마시듯 주는대로 일을 받아 마시며

타들어가라 녹아내려라 부서져라 일했습니다.


그건 노동이 아니라 나를 담금질하는 시간이었어요.

두드리고 두드리고 달구고 두드리고..

녹아 없어지던가, 닳아 없어지던가

견뎌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면 어차피 비루해질 여생이니까!

살아야 한다면 제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연명이 아닌

고작 손바닥에 난 줄 몇 개 따위에 휘둘리는 숙명이 아닌

나의 땀과 열정과 낭만으로 다시 소생하는 부활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대로 다시 살지 못할 바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지난날에 대한 예우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존엄을 놓을 수 없었던 지성인의 최후가 나태나 무능이 아니길 원했습니다.

염세나 절망이 아니길 바랐어요.


1년,

몇 곳, 스카우트 제의를 거쳐 내로라는 건설회사의 정식 기능공으로 일하게 됐어요.

팀을 이끄는 리더가 되고 나니 남들은 눈치 보며 겨우겨우 말을 꺼내던 임금협상도

회사 측에서 먼저 알아서 넉넉히 챙겨주더군요.

일용직을 시작하고 1년도 채 안 되어 2~30년 베테랑 대우를 받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랍니다.

당근을 주지 않아도 채찍으로 내려치지 않아도

쉬지도 않고 달리며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쓸모있는 말이 된거지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그만하면 자책하지 않아도 될만한 밤들이 이어졌습니다.

그저 내려놓고 흘려보냄으로써 이해할 수 없었던 일련의 과정들을 보다 덤덤하게 응시할 수 있게 되었지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답답해하던 순간들도 차츰 한숨이 아닌 심호흡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아직 쓸모 있는 존재라는 자존감 회복과 미흡하나마 성취감도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시 꿈을 꾸고 싶었습니다.



머리를 잘랐습니다.

10여 년을 방치한 유기견 같은 몰골을 지워내고

주인 보살핌 받는 강아지 정도는 되었을겁니다.


새 옷을 샀어요.

새 신발도 샀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바꿉니다.

지긋지긋한 녀석을 깨끗히 지우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보살펴야 할 이들 곁에서,

아팠던 재하를 버리고 다른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습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서툴렀다고,

용서하고 용서받고 허락된다면 2 막을 다시 올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선균'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거에요.



일하지 않는 몇 안되는 날은 찻집을 찾았습니다.

꽃차를 좋아해 목련, 생강, 매화, 도라지, 국화, 칡..

자연을 벗 삼아 꽃을 만나는 일은 참 행복했습니다.

다시 행복이라는 달콤한 감정을 품어도 되나, 삼켜도 되나 싶습니다.

지옥이, 천국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꽃은 분명 지옥엔 어울리지 않는것입니다.

꽃이 있으니, 이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억측을 부려보기도 했습니다.


꽃차는 눈으로 먼저 마십니다.

꽃잎에서 우러나오는 천연색소는 참으로 곱지요.

물과 만나 고유의 색을 자아내는 꽃잎을 보노라면

천연염료에 옷감이 물들듯 꽃차가 영혼에 자연을 물들이는 느낌입니다.

손톱에 봉숭아 물이 들듯 영혼에도 꽃물이 드는 느낌입니다.


내게도 꽃물이 드는 것 같았어요.

내게도 꿀물이 흐르는 것 같았어요.

내게도 꽃가루가 날리는 것 같았어요.

내게도 꽃향기가 나는 것 같았지요.


찻잔에도 달빛이 물들고,

바람이 물들고,

눈송이가 물들고,

아지랑이가 물듭니다.

그리운 이름들로 물드는 시간.

보고픈 얼굴들이 피어나는 시간.


꽃 피던 날들.

꽃 따던 날들.

꽃 보던 날들.

물들고 깃들고 어리고 서리고 스미던 날들..


혼자 있을 땐 그 대상의 본질에 오롯이 집중하게 됩니다.

음식이든 차든, 누군가와 함께할 땐 그 사람의 기운이 맛에도 녹아들지요.

그이의 눈빛, 그녀의 표정, 그놈의 말투, 그녀의 손길 하나하나가 미각기관과 상호작용 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원재료의 맛을 바꾸기도 하고 능가하기도 합니다.

옹색한 사발면 한 그릇도 꿀처럼 달기도 하고 왕후장상의 진수성찬에도 입맛이 돌지 않기도 하잖아요.


무엇을 먹느냐 보다 누구와 먹느냐

어디를 가느냐 보다 누구와 가느냐

어떻게 하느냐 보다 누구와 하느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보다 파급력이 센 것은 '누구'인것 같아요.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있던, 시공을 공유한 이들의 기억도 각기 다르게 쓰기입니다.

그대의 꽃밭이 나의 분리수거장이 되기도 합니다.

개인의 역사는 사실, 사건이 아닌 사유, 상상의 산물입니다.

역사는 진실이 아닌 오해이고 신념이며 확증편향이지요.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다르게 전개되고 기록됩니다.

사람이 천국이고 사람이 지옥입니다.

너를 좋아하는 곳이 천국이고 너를 미워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지옥과 천국은 그렇게 공존합니다.


기세등등한 잎새들의 공세에 뒷걸음질 치던 몇 남지 않은 끝물의 벚꽃잎들이 흩날리던,

하나 남은 친구, 민철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전에도 몇 번은 지나쳤음직한 낯설지 않은 골목에 낯선 초록 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문종이 찰랑거리는 출입문을 당기고 들어서니 은은한 조명 아래 나무냄새가 향긋했어요.

갈색 앞치마를 두르고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반겨주는 여주인의 앳된 얼굴이 반짝였습니다.


봄날의 초원이 떠올랐어요.

기름새, 실새풀, 갈풀, 김의털, 개밀, 포아풀, 바랭이, 산조풀, 수크령이 일렁이는..

풀숲을 흔들던 봄바람이 그곳까지 불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풀이 흐드러진 한적한 시골길을 겄다가

듬성듬성 하얀 데이지 꽃 무더기가 하늘거리는 햇살 좋은 가을날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신선함을 한껏 머금은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커피잔에 송골송골 맺히는 물방울들처럼 몽글몽글한 솜구름들이 초원 위로 피어오르는 듯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초원을 흔들던 바람이 어디로 불어갈지..

피어오르던 구름들이 어디로 흘러갈지..





화,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