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지구를 지켜라!> GV
엠마 스톤의 삭발 변신으로 최근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제작,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부고니아>.
“지구에 위기가 닥쳤다!”, “이 자는 외계인이야!” 처절한 한 남자의 외침은 영화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어딘가 익숙하다. <부고니아>는 2003년 개봉 당시 '비운의 걸작'이라 불렸던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품이다.
원작의 독창적인 상상력과 블랙 코미디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지구를 지켜라!>가 만들어졌던 2000년대 초반보다 더욱 심화된 기후 위기, 음모론, 계층 갈등 등 현재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날카롭고 세련된 연출로 재탄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엠마 스톤 배우가 연기한 냉소적인 바이오 기업 CEO '미셸' 캐릭터의 강렬한 변주는, 원작의 백윤식 배우가 맡았던 '강만식' 사장과는 또 다른 섬뜩한 매력을 보여준다.
이처럼 리메이크작 <부고니아>를 통해 원작의 가치가 국내외로 재조명되고 있는 지금,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는 두 작품을 함께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크로스 상영을 단독으로 진행했다. 스크린에서 원작을 처음 만나는 젊은 세대의 관객들과 오래 전 충격적인 걸작을 다시금 경험하고 싶은 기존 팬들이 극장을 가득 메우며 그야말로 뜨거운 재회와 새로운 만남의 장이 펼쳐졌다. 매 회차마다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열기는 <지구를 지켜라!>가 여전히 시대를 초월하는 힘을 가진 작품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지난 23일, <지구를 지켜라!>의 감독 장준환이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 직접 등판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진행됐던 <부고니아> 스페셜 토크를 제외하면, <지구를 지켜라!>와 <부고니아>를 주제로 한 장준환 감독의 GV는 <부고니아>의 개봉 이후 처음이었다. 원작 감독의 입장에서 두 작품의 이야기를 한 번에 들을 수 있는 진귀한 기회에, 이번 행사는 예매 오픈 후 3분 만에 전석이 매진되는 기염을 토할만큼 많은 관심을 얻었다.
개봉한지 20년이 지난 <지구를 지켜라!>의 제작 비하인드와 <부고니아>에 대한 감상, 오랜 시간 지나 더욱 선명해진 작품의 의미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던 유쾌한 GV 현장을 공개한다!
2025년 11월 23일 오후 9시, <지구를 지켜라!> 상영이 종료된 후 영화의 메인 스코어 'Over the rainbow'를 배경음악으로 장준환 감독이 등장했다.
장준환 감독은 <부고니아>의 리메이크 소식을 접하고 "란티모스 감독이 개성이 강한 감독이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다른 맛의 <지구를 지켜라!>가 나오겠구나' 라는 기대를 할 수 있었다"고 밝히며 "원작에서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이나 개기월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부고니아>에서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걸 믿는 사람들의 입장을 넣는 것으로 변형해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냈다"고 술회했다. 두 작품의 비교에 대해 "<지구를 지켜라!>가 다섯 가지 맛이 있는 오미자 막걸리 같은 느낌이라면 <부고니아>는 단맛이 거의 없는 진짜 드라이한 막걸리 같은 느낌"이라는 한줄평을 남겼다.
Q.
이상용 평론가 <부고니아>를 연출한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을 리메이크 해야 한다면 어떤 작품을 선택하시겠어요?
A.
장준환 감독 <킬링 디어>가 <지구를 지켜라!>와 유사한 지점이 많아 교환하기 좋은 작품이라 생각해요. 계속 조여오는 긴장감과 불안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Q.
이상용 평론가 <지구를 지켜라!>의 '강사장'(백윤식 역) 캐릭터를 <부고니아>에서는 CEO '미셸'(엠마 스톤 역)로 성별을 바꾸었는데, 이 지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A.
장준환 감독 강사장 캐릭터를 여성으로 바꾼다는 건 굉장히 큰 도박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성을 납치하고 감금하고 고문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비춰질지 걱정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만약 이러한 설정이 성공적으로 완수되면 영화사에 있어 가장 강렬한 여성 캐릭터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는 욕심이 엿보였습니다.
Q.
관객 감독님의 작품들을 보면서 특정한 소재에 대한 욕망을 통해서 거시적인 메세지로 풀어낸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정말 이러한 주제로 영화를 찍어오신 걸까요?
A.
장준환 감독 제 작품 중 <2001 이매진>과 <지구를 지켜라!>는 형제 같은 느낌이 있어요. 누군가를 공격하기도 하고, 또 공격 받기도 하는, 미쳐가는 사람들을 통해 이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들, 폭력성, 비극을 거울처럼 활용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했어요. 이러한 경향이 제가 가장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계속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관객 질문 시간, 장준환 감독과 <지구를 지켜라!>에 애정이 담긴 질문들이 마구 쏟아졌고, 20여년 전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장준환 감독의 눈동자도 반짝반짝 빛났다. 시간의 제약만 없었다면 밤새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상영관 내의 열기는 뜨거웠고, 공식 GV 행사가 마무리된 후에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장준환 감독은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준 76명의 관객들에게 한 명 한 명 사인을 해주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긴 시간 동안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정성스레 싸인하던 장준환 감독과 영화를 향한 애정, 감독을 향한 존경을 마구 보여준던 관객들. 함께 이 공간에 있었다는 특별한 추억까지. 장준환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와 특별한 추억은 영화의 강렬함과는 또 다른 포근한 감동이었다.
2003년 개봉 당시, 강렬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뜨거운 지지를 받았던 <지구를 지켜라!>. 긴 시간을 넘어 리메이크작의 화제성 속에 원작이 가진 진정한 가치를 스크린에서 재발견한 이번 GV는, 영화와 관객 사이의 감동적인 교감이었다. 당시 영화를 열렬히 사랑했던 이들의 변치 않는 애정,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이 걸작의 깊이를 알아본 새로운 팬들의 공감이 한데 모여 극장 안에 특별한 온기를 만들어냈다.
오래도록 간직했던 기억처럼 소중한 이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 극장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넘어설 걸작을 계속해서 조명할 예정이다.
지난 2005년 온라인 커뮤니티를 시작으로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KT&G 상상마당은 홍대·논산·춘천·대치·부산 등 총 5곳의 오프라인 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신진 아티스트 지원과 지역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는 등 대중 문화향유 기회 확대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