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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극장

우리는 모두 '세계'의 '주인'이다

2025년 11월, <세계의 주인> GV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로 손꼽히며 언론과 평단,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평과 함께 누적 관객 10만 명 돌파를 목전에 둔 영화 <세계의 주인>.


개봉 4주 차에 접어들어 상영관이 축소된 상황에서 오히려 좌석 판매율은 상승 추세로 전체 박스오피스 순위 10위 내를 안정적으로 유지 중이다. 이러한 장기 흥행 추세는 극장가의 침체로 1만 관객만 들어도 흥행으로 여기는 독립영화계 상황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 한국 영화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관객을 극장으로 이끄는 '좋은 영화의 힘'을 증명 중이다.


그리고 지난 7일, <세계의 주인>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과 배우들이 KT&G 상상마당 시네마로 총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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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주인> 개봉 후 관객과의 만남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윤가은 감독이지만, 이렇게 주조연 배우가 총출동해 직접 관객들을 만난 경우는 전무했다. 흔치 않은 기회에, GV 회차 예매 오픈 10분여만에 전석이 매진되며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젊음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배우들과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이 울고 웃었던, 따뜻한 GV 현장을 공개한다!





11월 7일 오후 9시, 영화 상영이 종료된 후 관객들의 환호 속 윤가은 감독과 6명의 배우들이 등장했다.


이번 GV의 특별한 점은 별도 모더레이터 없이, 윤가은 감독이 직접 진행을 맡았다는 것이다. "GV를 많이 해왔지만 제가 직접 GV를 진행해야 되는 입장이 되니 너무 떨린다.""앞으로 한국 영화계를 이끌 젊은 배우분들을 한 자리에 모은 오늘의 GV가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라고 감히 예측해본다"고 윤가은 감독의 소감과 함께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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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 참석한 배우들은 전부 <세계의 주인> 속 '주인'의 학교인 가람고에 다니는 고등학생 배역이다. 그리고 윤가은 감독은 이번 행사의 주제를 가람고 친구들로 명명하며, 쉽게 관객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배우들을 한 명 한 명 조명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행사에 참석한 거의 모든 배우들이 GV 행사 자체가 처음이었고, 긴장한 모습의 배우들을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윤가은 감독은 가람고등학교의 선생님 같기도 했다.


6.png 보미 역 오정원 배우

Q.

윤가은 감독 <밀양>을 보면 송강호 선배가 포커스 아웃된 채로 전도연 선배를 끝없이 맴돌며 존재하시잖아요. 이 영화에서는 주인이의 친구 캐릭터인 보미, 소미, 다미 이 친구들이 모든 장면에서 포커스가 간당간당한데도 끝없이 뭔가를 하고 있어요. 이 세 배우들은 셋이 앙상블로 만들어야 되는 장면들이 주였다 보니까, 셋이 있을 때는 어떤 이야기를 제일 많이 했을까, 어떤 고민이 있었으까 이런 것들이 궁금했어요.


A.

오정원 배우 수위가 높은 대화가 많다 보니, 실제로는 쉽게 하기 힘든 그런 말들을 대놓고 뱉었을 때의 기분 같은 걸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그걸 진짜로 한 번 해봐야겠다 싶어서 저희 셋이 찜질방에 가서 불가마 안에서 급식실 씬의 수위 높은 대사들을 해봤어요. (윤가은 감독 폭소) 그리고 또 언제는 인사동의 루프탑 카페에 갔는데, 야외에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었어요. 거기서 문득 '나 여기서 해봐야겠다'. '나 여기서 이거 뱉고 사람들 반응이 어떤지 느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상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영화 대사를 치면 다 같이 그 씬을 훅 빨려들어가고... 그런 식으로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7.png 유라 역 강채윤 배우

Q.

윤가은 감독 민감한 이야기를 영화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다뤄야 할까 고민들을 많이 했었는데, 이런 차원에서 주인이와 가장 친한 친구인 유라 캐릭터의 분량이 늘었다 줄었다 했어요. 내가 유라를 어려워했던 만큼 유라 역의 강채윤 배우도 많이 혼란스러웠을 거야.


A.

강채윤 배우 저는 그게 그렇게 혼란스럽진 않았어요. 유라라는 캐릭터가 더 진실해진다면 그런 것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거죠. '감독님이 유라에 대해서 더 고민하고 계시는구나', '유라가 정말 주인이 곁의 진짜 유라이길 바라시는구나', '정말 유라만의 시간이 흐르는 걸 고민하고 계시구나'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 감독님의 고민과 노력이 저한테는 오히려 되게 힘이 됐었어요. 그래서 '나도 그럼 더 고민해야지', '나도 캐릭터의 밀도를 더 채워보자' 이렇게 생각하고 노력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2.png 주인 역 서수빈 배우

Q.

관객 윤가은 감독님의 <우리집>을 보고 배우가 될 결심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첫 데뷔작의 첫 장면이 지금까지 윤가은 감독님의 작품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진한 키스신으로 시작을 하잖아요. 그걸 각본으로 처음 봤을 때 느낌과 실제로 연기하셨을 때 힘드신 점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A.

서수빈 배우 네, 19살 때 <우리집>이라는 영화를 보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진짜 한 번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내가 지금 윤가은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손에 쥐고 있다니' 이 생각이 자꾸 들어서 심장이 엄청 두근거렸는데, 첫 장을 넘기자마자 키스신이 나와서 너무 당황했어요. 윤가은 감독님 작품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파격적인 장면장면들이 그냥 너무 좋았어요. 왜냐면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당시에는 제가 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이후에 제가 주인 역할을 맡게 되고, 그것들을 제가 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나서도 키스신은 제 일이 아닌 것 같았어요. 촬영 당일에도 저는 남의 일인 것 같았어요.(웃음)


A.

윤가은 감독 잠깐 말씀드리면, 저희는 키스 스터디를 했어요. 주인이랑 찬우랑 같이 수많은 영화의 키스신들을 레퍼런스로 보면서 다방면으로 연구하고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 이야기하면서 스터디를 했던 기억이 있네요.



5.png 찬우 역 김예창 배우

Q.

윤가은 감독 누군가는 영화를 보고 나서 찬우는 주인이랑 키스만 하다가 들어간다고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사실 찬우는 멀리서 보이는 모습이 다르고, 가까이에서 보는 모습이 다른 다양한 면을 가진 캐릭터거든요. 찬우라는 역할이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부분과 다르게 어려운 점들이 있었는데, 연기하실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A.

김예창 배우 키스신을 준비하면서 감독님하고 수빈 배우랑 '이건 액션신이다.'라는 이야기를 계속 했었어요. 그래서 키스신에 대한 부담은 내려놓을 수 있었고 연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보시다시피 찬우가 나올 때마다 주인이랑 진한 스킨십을 하고 있으니까 관객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느꼈고, 그럼 이거를 내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었어요. 그리고 그 결론은 '열심히 주인이를 품어보자, 사랑하자'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찬우가 주인이한테 이별을 고할 때도 주인이가 나를 힘들게 해서라기보단 내 그릇이 작기 때문에 주인이를 놓아주는 거라고 생각했고, 찬우는 그 순간이 너무 마음 아프고 자책감에 사로잡히고 그랬을 것 같아요.



1.png 수호 역 김정식 배우

Q.

윤가은 감독 저는 수호라는 캐릭터를 움직이게 하는 것도 결국은 상처라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영화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더라도 그것을 엄마의 부재에서도 찾을 수 있고, 아주 어린 여동생을 돌봐야하는 부담감일 수도 있고, 여러가지로 수호 어깨에 짐이 얹어져 있는 게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촬영 후에 편집실에서 영화를 보는데 미묘하게 그런 모습들이 보이더라고요. 이런 부분들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수호를 연기하면서 어려운 장면이 있었을까요?


A.

김정식 배우 저도 그렇게까지 수호를 움직이게 하는 모든 동력은 여동생인 누리라고 생각했어요. 수호에게 누리는 지켜야 하는 세상이었던 거죠. 누리를 지켜야 하는 마음이 너무나 강하다 보니까 몸이나 행동이 생각보다 앞서고, 부담감을 느끼고 예민해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주인이한테 서명을 받아내려는 것도 서명운동은 한 명 안 받아도 어떻게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그 서명이 누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보니 어느 순간에 집착이 되어 오기도 느꼈을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은 전혀 어렵지 않았는데, 오히려 저는 서명 운동으로 주인이와 실랑이를 하는 장면들이 가장 연기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는 시나리오를 읽었으니까 주인이가 가진 상처를 알고 있고, 주인이가 문제 삼는 문구가 고쳐야 마땅한 것도 알고 있는데, 연기할 때는 그런 것들을 내려두는 게 어려웠어요. 이미 모든 것을 알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주인이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답답해하고, 어이없어하고, 하는 연기를 하는 것이 힘들더라구요.



4.png 소미 역 김민지 배우

Q.

관객 영화가 개봉한지도 2주가 넘었고 주변의 반응이나 온라인상의 코멘트들을 둘러보셨을 것 같은데, 혹시 그중에 인상깊었던 것들이 있나요?


A.

김민지 배우 지금 당장 딱 하나의 문장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는 않는데, 제가 어느 날 거의 밤을 새서 몇 시간씩 엑스와 왓챠피디아에 올라온 모든 글들을 다 읽었던 적이 있어요. 그중에는 물론 내 취향이 아니었다, 이런 게 아쉬웠다 같이 부정적인 감상들도 있었지만 멈출 수가 없이 그런 것까지 모든 걸 다 읽었어요. 몇 시간동안 그 글들을 다 읽고 나니까, 제가 이번에 너무 감사한 경험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영화를 통해 세상에 있는 관객분들과 제가 간접적으로 만나고, 그 개인적인 한 줄 한 줄이 감사하게 느껴질 수 있구나 것들을 데뷔하면서 처음 느꼈어요.


A.

윤가은 감독 저는 사실 리뷰를 안 찾아본 지 며칠 된 것 같아요. 이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 영화가 상처가 되시는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종류의 폭력에 대해서 말하는 것 자체가 말하면서 반쯤 실패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말하면서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무모한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래서 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양한 감상을 남겨주시는 게 너무 좋아요. 나중에 이 바쁜 소용돌이가 지나가면 한꺼번에 찬찬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3.png 윤가은 감독






GV 초반 윤가은 감독은 "요즘 신인배우분들은 정말 기회가 없거든요. 영화가 진짜 만들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어요."라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리고 그 드문 기회를 붙잡아 <세계의 주인>에 함께한 배우들에게서는 배역의 분량을 떠나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200%로 구현해내기 위해 전력을 다해 고민하고, 몰두하고, 노력한 흔적들이 답변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여실히 느껴졌다. 무대 위 배우들은 각자의 언어로 영화와 인물, 그리고 자신이 겪은 시간을 이야기했다.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담담하게 꺼낸 그들의 고백은 무수한 가능성과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모인 모든 마음과 노력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작품을 완성시켰고, 그 진심은 스크린 너머로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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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역할도, 첫 도전도, 조용한 노력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세상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는 모두, 세계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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