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별이 되길 원한다면,

나만의 마음매력을 통통하게

by 통통샤인머스캣

진정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별이 되기를 원한다면, 나만의 마음매력을 찾으라

마음매력은 아름다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적 태도를 통해 일상에서 즐거움을 누리며, 삶의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이 남의 눈에도 설렘과 호감을 일으키는 매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정의했다. 그래서 마음매력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름답게 기억되려는 삶을 살려는 마음가짐에서 투영되는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이다.


마음매력은 아름다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이뤄내는 미적 자아의 역량을 키워 내면에 집중하는 태도이지만, 동시에 대인관계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전략과 가깝다. 결국 이런 관계지향적인 철학을 토대로 미적 자아의 실현을 방해하는 요인을 찾아 개선시켜주고, 자신의 숨겨진 마음매력이 지금 현재의 대인관계에서 발휘되도록 신경회로망에 새겨진 오래된 신경회로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을 마음 매력 강화로 볼 수 있다.


마음매력을 통통하게 만드는 마음 매력 강화는 사랑스런 아름다움을 향한 긍정적인 방향성을 갖고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한 전략이다. 나와 의미 있는 타인, 절대자를 향하는 미적 자아를 아름답게 더 사랑스럽게 만들려는 의도는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동기를 갖게 한다. 동기센터가 있는 전두엽의 기획기능과 집행기능을 최적화시켜서 일상에서 최적의 선택과 결정을 하며 일상에서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며, 삶을 긍정적으로, 건설적이며,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한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이뤄가는 즐거움을 느끼며 정신적 유산을 남기는 행동을 반복한다면,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남들에게도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마음매력을 찾아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이뤄가는 삶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자신의 삶을 살려는 변화의 시작은 마음속 맨얼굴인 자아이미지를 진실하게 볼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내어 현재의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지 자신의 욕구를 진실하게 파악해야 한다. 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절대자인 신에게 나는 어떻게 보일까?를 성찰하는 것이다.


나의 미적 역량이 확대되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픈 미적 자아의 욕구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다. 이 숨겨진 미적 자아의 실현 욕구가 발휘되는 동기를 높여주고, 계획하고, 독창적으로 실행하고 마무리 짓는 것이 마음 매력 강화의 전 과정일 것이다. 결국은 이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대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다.


내가 남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고마운 존재로 기억되려면 미적 감화력을 줄 수 있는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아,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고 가치 있게 채우는 진실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대로 죽는다면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절대자인 신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나에게 부족한 것을 알고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과 같다. 그것은 나의 미적 역량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메타인지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란 자신을 성찰하는 물음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성장과정이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고 거기에 맞는 존재가 되는 것보다 정신없이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어떤 조건을 갖춰야 된다는 규칙에 따르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의 내면에 마음매력이란 잠재력을 보지 못하는 것도 조건에 따른 평가에 익숙해져 자신의 성품에서 나오는 힘을 가치 있게 여기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예쁘거나 뭔가를 잘하거나, 똑똑하거나 착하거나 돈이 많거나 등의 그럴듯한 외적 조건이 있어야 우리 자신을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왔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면, 이런 것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조건에 따른 기준으로 우리를 정의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학업 성적으로 남들과 비교를 당하다 보니 우리 스스로도 그런 비교의 틀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다. 학업성적 말고 다른 것으로 인정받기에는 너무 제한된 그런 사회이다 보니, 공부를 못해도 자신만의 학업 진도를 채우며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배우는 것을 경험하기가 어려웠다.


아인슈타인은 ‘나무에 오르는 능력으로 물고기를 판단한다면, 그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 살 것이다’라고 했다. 학창 시절에 우리의 존재 가치가 성적으로 매겨지다 보니, 우리 자신은 어느새 그런 가치와 조건에 순응되어 남들보다 못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을 매력 없는 존재로 여겨왔는지 모른다.


내가 갖지 못한 어떤 조건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정당하게 받아들이면, 나의 개성과 다양한 장점도 무가치해져 버리기 쉽다. 학교를 졸업해서도 외모, 학벌, 직장, 연봉, 아파트, 자동차, 보유재산 등에서 누가 더 나은 조건을 갖췄는지를 비교하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이런 학교를 나온 사람이고 이런 데서 사는 사람이고, 이런 직장을 다니는 사람, 이번에 투자를 해서 이 정도를 벌었다는 정의보다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런 것들과 상관없이 나는 과연 누구일까?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이 없어진다 해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이뤄가며 살아도 될 만큼 충분히 괜찮은 존재들이다. 진부한 비유이지만, 당장 파퓨아뉴기니의 원주민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적어도 부족 내에서 주어진 각자의 역할을 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행복한 표정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내일의 걱정도 별로 없다. 무엇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조건적 가치를 내려놓고, 진정으로 나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랑받을 조건이 충분히 있어서 사랑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부모가 우리를 노후에 대한 보험용으로 계산적으로 키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기의 사랑스러운 미소처럼 우리는 존재만으로 충분히 사랑스러웠던 존재였다. 부모가 아기였던 나를 대하듯 자신에 대한 그런 따뜻하고 포용적인 시선으로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며 나는 누구였는가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아봐야 한다. 자신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변하고자 하는 의도와 방향성을 갖고 나 자신이 되는 길을 찾고, 그 여정의 한걸음을 귀하게 여겨야 하겠다. 우리가 원하는 변화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런 나를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 시점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