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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ster Mar 12. 2024

전 세계를 울린 마법의 앵글, 김성영 픽사 촬영 감독

이상인의 테넷 / 2022년 11월 호 칼럼

포브스 기사 원문 링크 >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선사한다. 픽사는 감동과 웃음을 전달하기 위해 엄청난 자본을 투자해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를 육성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창의적인 작품들을 구현할 수 있게 최신 애니메이션 기술과 프로세스 등에 엄청난 공을 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밖에서 보면 마냥 유토피아 같은 픽사의 작업 환경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끊임없는 내부 경쟁과 창작의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픽사의 기업문화와 프로세스를 지난 10년간 온몸으로 겪고 성장해 지금은 픽사의 대표 레이아웃 아티스트(촬영감독)가 된 한국인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다. 한국 이름은 김성영인 Shaun Kim을 만나 픽사에서 일하는 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상인: 반갑다. 우선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줘 고맙다.


김성영: 아니다. 팀의 일원으로 열심히 할 뿐이다.


이: 픽사에 다닌 지 얼마나 되었나?


김: 얼마 전에 만으로 10년이 조금 넘었다. [몬스터 유니버시티]가 첫 작품이다.


이: 내가 속한 IT 업계는 근속연수가 길지 않아 대개 3~5년에 한 번씩 직장을 옮긴다. 필드가 다른 애니메이션 쪽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10년이면 한 회사에서 장수한 것 아닌가? 그 이유가 궁금하다.


김: 그렇다. 이쪽이 IT만큼 이직이 빈번하진 않지만 그래도 10년이면 오래 있긴 했다.(웃음) 사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나도 1년 반 정도 지나면 다른 회사로 옮겨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정통 애니메이션을 하는 회사에 있다가 다음에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고, 그 후에는 게임회사도 다녔다. 그렇게 일하다가 픽사라는 회사에 왔는데 한국과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시스템도 거대하고 이전에 작업했던 광고나 단편 작업들에 비해 훨씬 긴 호흡으로 임해야 하는 것이 많아서 한 프로젝트씩 하다 보니, 프로젝트마다 배우는 것이 매번 달랐다. 한 프로젝트씩 재미있게 배우고 작업하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지났다. 그래서 그 10년이 지루한 10년이라기보다 매년 성장하는 기간이었던 것 같다.


이: 무슨 말인지 잘 알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조직에서 다루는 프로젝트는 같은 회사라 해도 결이 다른 경우가 많아 매번 새로운 챌린지가 있다. 지난 10년간 어떠한 부분에서 배우며 성장했는가?


김: 처음 애니메이션을 작업할 때는 스킬적인 측면에서 많이 배웠다면, 픽사에 입사해 6, 7년 후부터는 리드 포지션으로서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부분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신입 애니메이터들이나 인턴들의 교육과 멘토링을 진행하면서 나 자신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이: 회사를 다니다 보면 개인이 성장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장려하는 픽사만의 문화 같은 것이 있나?


김: 그렇다. 픽사의 가장 대표적인 프로젝트 진행 방식이 프로젝트의 리더십 자리가 오픈 챌린지 형식이라는 거다. 픽사 직원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또 누가 지원했는지 비밀이 보장되는 만큼 떨어져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의지가 있고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큰 프로젝트의 리더 역할을 당당히 쟁취할 수 있는 구조다. 또 단편 애니메이션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 회사에 먼저 제안할 수 있도록 상시 창구가 열려 있다. 그런 만큼 의지가 있다면 픽사 직원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픽사 사무실 모습.



이: 엄청난 시스템이고 과연 픽사라 할 만하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적극적일 순 없고, 또 세계적으로 가장 출중한 애니메이터들이 모여 있는 회사인 만큼 그 기회를 쟁취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김: 그렇다. 실제로 입사 후 몇 년이 지났을 때 높은 벽을 실감했다. 심지어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모든 픽사 애니메이터의 랭킹을 매겼다. 영화업계가 워낙 변동성이 심한 곳이다 보니, 상황에 따라 인원을 감축해야 할 때면 그 랭킹에 따라 정리해고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픽사에 있다가 다른 회사의 더 좋은 포지션으로 옮기면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더 쉽게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경쟁을 장려하되 개인이 성장하고 또 이를 통해 성공할 수 있는 픽사의 문화 속에서 10년을 보내다 보니, 나 자신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외부인이 픽사를 생각할 때는 마냥 행복한 놀이동산 같은 분위기지만, 들어보니 적자생존의 정글 같은 느낌도 든다.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이런 문화가 없다면 어떻게 수준 높은 작품을 오랜 세월 만들어낼 수 있었겠는가?


김: 그렇다. 묘한 긴장감이 있어야 일이 진행되는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 10년간 픽사에 다니며 참여한 많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


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최근작 중 하나인 [소울(Soul)]을 들 수 있다. [소울]에서 담당한 여러 시퀀스 중 하나가 주인공 22와 조(Joe)가 메이플나무가 있는 뉴욕 거리에 앉아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곳에서 방황하던 영혼인 22가 삶의 의미를 처음으로 깨닫는다. 이 장면이 애니메이션 안에서도 큰 전환점이기도 하지만 영화 외적으로, 가수 이적 님이 이 장면에서 영감을 받은 음악을 만들어서 공개하기도 했다. 이를 본 내 친구들이 이적 님의 SNS에 내가 한 것이라고 글을 남겨 이적 님과 이 시퀀스를 매개로 연결되어 신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내가 연구하고 고민한 장면이 다른 아티스트에게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이 되어 새로운 아트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이: 개인적으로도 [소울]에서 받은 감동이 대단한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뉴욕 특유의 분위기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특히 언급한 시퀀스의 경우 뉴욕 길거리에 앉아 가을 하늘을 바라봤을 때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너무 좋았다.


김: 정확히 그 부분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예를 들어 그 시퀀스에서 중심이 되는 오브젝트는 메이플나무 씨앗이다. 그 씨앗이 처음에는 날개가 두 개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뉴욕의 메이플나무 씨앗은 날개가 몇 개지 하는 궁금증에 휩싸였다. 그래서 조사해보니 뉴욕의 메이플나무 씨앗은 날개가 하나짜리였다. 그래서 다시 날개가 하나 달린 씨앗으로 교체했다.


이: 역시 디테일의 차원이 다르다.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는 것이 잘된 경우도 있지만, 힘들어서 기억에 남을 수도 있을 텐데, 혹시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무엇이었나?


김: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픽사의 비운의 작품인 [굿 다이노(The Good Dinosaur)]다. 픽사에 들어오고 두 번째로 참여한 작품이었다. 원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1년 미만이 보통인데, 이 작품에는 무려 2년을 기여했다. 이 작품을 하는 동안 감독도 바뀌고 스토리도 바뀌며 홍역을 치렀고, 오랜 시간 한 작품에 묶여 있다 보니, 정말 참여하고 싶었던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같은 작품을 놓치게 되어 힘들었다. 다른 애니메이터들이 두세 작품을 하는 동안 뒤처진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해 많이 안타까웠다.


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원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회사 프로젝트긴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도 과정이 좋은 경우가 있는데, 과정도 힘들면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런 고역이 따로 없다.


김: 그렇다. 이게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김성영 애니메이터가 참여한 작품 [코코]의 한 장면.


이: 픽사에 다니며 가장 감동받았던 작품 혹은 경험이 있나?


김: [코코(Coco)]를 작업하며 작품 자체의 스토리에서도 감동을 받았는데, 내게는 이 작품의 의미가 특히 남다르다. [코코]에 나오는 망자의 다리를 미구엘이 처음으로 건너는 장면과 망자의 도시에 도착하는 장면 등을 작업했는데, 내가 [코코]에 참여해 작업하는 동안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코코]는 이승에서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면 저승에서도 죽지 않는다는 테마를 갖고 있는데, 픽사에서 [코코]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본인 이름 외에 기억하고 싶은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을 넣을 수 있게 해줬다. 나는 그곳에 친할머니의 이름을 남겨 추모할 수 있어 기억에 남았다.


이: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다.


김: 아무래도 픽사도 하나의 직장이다 보니 섭섭하거나 미울 때가 있는데, 이런 종류의 감동적인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줘 용서가 되곤 한다.


이: 마지막으로 성영 님처럼 픽사의 아티스트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김: 사실 픽사는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달리 프리랜서보다는 정직원을 뽑는 데 중점을 둔다. 그 이유는 가능성 있는 아티스트를 뽑아 함께 성장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스킬이 이미 완성된 사람을 찾기보다는 전체적인 이해도를 바탕으로 하고 싶은 게 확실한 사람을 선호한다. 3D 스킬이 좀 떨어지더라도 실사 촬영을 잘한다거나, 빛을 다루는 라이팅 능력이 탁월하거나 본인의 연기력이 뛰어나 이를 애니메이션에 적용할 수 있다면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작품들을 포인트 있게 구성한다면 더 눈에 띄는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김성영 애니메이터와 대화를 나누며 픽사가 왜 뛰어난 애니메이션 회사인지, 이 회사가 30년 넘게 최고의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온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좋은 결과는 뛰어난 한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문화와 시스템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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