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인의 테넷 / 2022년 7월 호 칼럼
아마존은 미국 기업, 특히 IT 기업 가운데서도 경쟁과 생존이 가장 치열한 조직문화로 자리 잡은 곳이다. 이찬희 야놀자 CPO(Chief Product Officer)는 아마존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마치고 국내 복귀를 결심했다. 어떤 생각과 계획이 있는지 몹시 궁금해 그를 지난 5월 시애틀에서 만났다.
이상인: 오랜만이다. 이제 한국으로 완전히 이사를 가는 건가?
이찬희: 반갑다. 아직 시애틀과 서울을 오가는 삶을 병행하며 살고 있지만, 정리가 마무리되는 대로 한국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상: 10년 넘게 외국 생활을 하다 한국에 돌아가는 느낌은 어떤가?
찬: 이제 야놀자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뭐라 말하긴 이르지만, 개인적으로 아마존에서 경험했던 많은 부분을 야놀자에 적용하고, 이를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설렌다.
상: 아마존에 얼마나 있었나?
찬: 9년 정도다.
상: 사실 이쪽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아마존의 평판이 ‘대단히 일이 많은 회사’ 혹은 ‘경쟁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회사’로 유명하지 않나. 그리고 이런 사실 때문에 직원들 평균 근속기간이 1년 조금 넘는 것으로 안다. 그런 곳에서 9년간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유지했다는 것이 대단하다. 비결이 무엇인가?
찬: 과찬이다. 분명 아마존은 회사 분위기가 공격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직원들의 경쟁이 장려되는 곳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가 어떤 이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고, 나조차도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인 특유의 근성과 끈기 덕분에 오히려 그런 환경에서 더 치열하게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나 한다. 또 치열한 과정을 통해 이들의 비즈니스를 최대한 많이 배워가겠다는 확고한 목표 의식도 있었다.
상: 공감한다. 한국인들의 일에 대한 열정과 능력은 이제 글로벌기업에서도 알아주는 부분이다. 한국에선 SK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온 것으로 안다. SK에서 나와 바로 아마존에 입사했나?
찬: 시카고에 가서 MBA를 마치고 아마존에 입사했다. 사실 젊을 때 여행을 너무나 좋아했다. 수십여 나라를 여행하기도 했는데,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면서도 해외에서 많은 경험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해외 취업을 한국에서 바로 하는 길이 거의 없었고, 또 회사 잘 다니다가 갑자기 해외여행을 본격적으로 하기도 쉽지 않았던 터라 MBA에 도전하게 됐다.
상: 아마존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했나?
찬: 처음에 간 팀은 아마존 로컬이라는 그룹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영국과 미국의 티켓팅 서비스를 론칭하는 작업에 투입되었다. 지금이야 너무 당연하게 실시간으로 시스템이 연동되어서 티켓 판매가 가능하지만, 예전에는 고객 경험 측면에서 형편없게도 이러한 부분들이 실시간이 아니어서 수동으로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러한 수동적 프로세스를 실시간 연동 시스템으로 재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전담했는데, ‘안 되면 되게 하라’ 같은 일이었다.(웃음)
상: 아마존 로컬에서 얼마나 근무했나?
찬: 2년 정도 근무 후 아마존 내에서 첫 조직개편을 경험했고, 아마존 로컬이 다른 부서와 통폐합되며 많은 사람이 회사를 떠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마존 트래블에 잠깐 갔다가 6개월 후에 또 다른 조직개편이 있었다. 그 후 조인한 팀이 퇴사할 때까지 함께했던 아마존 글로벌팀이다.
상: 한국에 계신 분들은 미국의 조직개편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미국 대기업에선 생각보다 조직개편이 많이 일어나긴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해고되기도 한다. 쉽지 않은 조직개편을 두 번이나 넘기고 조인한 아마존 글로벌은 어떤 곳이었나?
찬: 아마존 글로벌은 말 그대로 아마존을 다른 나라에 진출시키는 일을 하는 그룹인데 이곳에서 6년을 넘게 함께했다. 처음에 들어갔을 때는 수십 명 수준의 조직이었는데, 내가 나올 때는 수백 명이 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것은 아마존의 코어 비즈니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제대로 익힐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에 아마존을 소개하는 일, 비즈니스를 만드는 일, 협업하는 일, 확장하는 일 등 아마존의 거의 모든 부분에 관해 배울 수 있었다.
상: 듣기만 해도 정말 어마어마한 경험인 것 같다. 특히 얼마 전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아마존×11번가’의 성공적인 론칭을 만들어낸 주역으로 안다.
찬: 한국 시장이 정말 가능성이 큰 마켓이고 꼭 필요한 곳이었지만, 상당히 까다로운 곳이기도 했다. 다행히 최종 파트너로 선정된 11번가에 예전에 SK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가 많이 계셨고, 아마존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이해, 서로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잘 맞아떨어져 성공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라 생각한다.
상: 이번에 가게 된 야놀자는 본인의 커리어 측면에서 다시 한번 만족할 만한 회사라 생각하나?
찬: 앞서 이야기했듯 여행을 너무나 좋아한다. 또 SK에서 했던 업무 중 하나가 네이트의 여행 서비스였다. 그래서 야놀자와 그들의 성장 과정을 오랜 기간 흥미롭게 지켜봐왔다. 이 회사가 현재 다양한 분야와 글로벌 무대 진출이라는 비전을 갖고 실행에 옮기는 것을 보며,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모든 순간에서 고객이 더 즐겁게 누릴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불편하고 어렵고 고민되는 부분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해외 IT 회사에서 일하고 한국에 돌아온 사람들이 완벽하게 자리가 잘 잡힌 전통적인 대기업이 아니라 성장하는 기업에 들어가 그 회사를 함께 키워나간 좋은 선례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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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CPO와의 만남은 필자의 고민거리에 대해서도 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해외에서 열심히 일하는 많은 한국인 노동자가 고민하는 부분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의 지난 10여 년간의 행보처럼 일에 대한 열정과 목표 의식이 있다면, 전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직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서 시작한 그의 새로운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