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ster Nov 04. 2016

인생은 반면교사의 연속이다

마지막 에피소드


< 이전 편 읽기

그동안 '뉴욕에서 디자인 회사 만들기'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변변치 않은 제 이야기를 연재해 왔습니다.

사실 이 글들은 디자인과 뉴욕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제 입장에서는 성장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느끼고 배운 점들을 글로 정리해 나가면, 이것이 저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주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많이 체득화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놓친 몇 가지 점이 있다면 ‘이면’을 조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바라보는 달이 밝을수록 그의 이면은 그만큼 더 어두워지듯이, 제가 나름 이래저래 떠들었던 이야기들 밑에는 차마 말하기도 부끄러운 실패와 좌절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 마지막 회에는 제가 여러 번 좌절했던 경험들 또 그것에서 배운 것들을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가장 조용한 사람

SVA(School of Visual Arts)를 졸업 후 취업하게 된 RGA에서 디자이너 생활은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습니다. 사실 학교 재학 시절 한국 친구들과 주로 어울린 탓에 직장 생활 적응뿐 아니라 실전 영어 사용에도 꽤나 고전 중이었습니다. 게다가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 차원의 팀 구성과 인력 조정 탓에 첫 한 달간 앉아만 있었죠. 사실 이제 팀을 구성하고 인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럴 법도 한 일이었는데, 저는 졸아서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에 가시방석 같은 매일매일을 혼자 조용히 보냈습니다. 지금 같으면 아주 당당하게 나 할거 없으니까 시킬 것 있으면 달라고 매니저들에게 말한 후 걍 페북이나 할 텐데 말이죠. 이렇게 초장에 정말 쫄아서 본격적으로 업무들에 시작된 후에는 더 정신이 없었고, 미국 사람들의 정말 거침없는 의사 개진과 커뮤니케이션 페이스로 인해 좌절에 좌절을 거듭하는 환경이었습니다. 사실 미국이라는 사회는 자유로운 의사 개진이 많이 보장을 받는 만큼, 합리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경우 의견에 대한 많은 관심과 의사 개진자에 대한 힘이 실립니다. 반대로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봐주지 않죠. 그만큼  Visablity가 중요한 사회인 것이죠. 제가 회사 스트레스 및 언어 스트레스로 점점 말이 없어져 가며, 저는 점점 회사 안에서 주류와 멀어져만 갔습니다. 제가 나타나도, 퇴근을 해도 그냥 시킨 거만 해주고 나면, 이방인이나 다름이 없었죠. 제 개인 성격은 사실 정 반대에 가까웠지만 남들이 바라보는 저는 그저 말없는 동양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녔습니다.


시간은 금세 흘러 1년이 지난 어느 날, 3시간에 걸친 장시간의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함께 있던 직원 중 하나가 엘리베이터에서 저에게

  

You are literally the quietest person, I have ever met.
(
너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말 없는 사람이다.)


조소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동료의 말에 억장이 무너졌었죠. 남들이 저를 그렇게 바라 보고 평가하는 것도 너무나 화가 났고, 이를 바꾸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하고 있지도 않았기에, 제 자신에 대한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날부터 매일 새벽 6시에 집을 나와 1,2시간씩 무작정 디자인 관련 아티클 혹은 최신 뉴스를 읽고, 길을 걸을 때면 항상 오디오를 듣고 다녔습니다. 또한 저만의 원칙을 세웠죠. 앞으로 회의에서 한마디라도 못하면 적어도 다른 이들이 들을 수 있게 기침이라도 한다. 그렇게 아주 느리지만 확실하게 걸음마를 띌 수 있었습니다.



가장 외로운 사람

새로 회사를 옮긴 지 1달 반 정도 지났을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프로젝트의 흐름에 따라 클라이언트의 종류에 따라 오래 지속돼온 프로젝트들이 갑자기 변경되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맡아야 했던 일은 그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종류 중 하나였죠. 기존의 팀이 6개월간 해왔던 프로젝트를 선두가 돼서 다 부시고 재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로서는 선택권이 없었기도 했고, 사내 정치에 조금만 더 눈이 밝았었다면, 조금은 덜 고생했을 텐데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하지만 회사원이 까라면 까야죠. 그래서 깠습니다. 아주 시원하게. 그랬더니 클라이언트는 좋아하더군요. 하지만 클라이언트 프레젠테이션 이후 팀원들 반응이 생각보다 좋지가 않았습니다. 이후 3개월간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저는 첫 1달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2달간을 기존의 팀 멤버들과 불편한 동거에 들어가게 되었죠. 그들에게 저는 프로젝트 리더라기보다는 침략자에 가까웠고, 마치 일제강점기의 독립군과 순사들이 쫓고 쫓기듯이 엄청나게 많은 의사 충돌이 있었죠. 후에는 제가 손을 많이 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실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누가 언제나 옳고 누가 언제나 틀렸다는 없습니다. 하지만 롱런의 관점으로 봤을 때, 프로젝트를 한방에 손바닥 뒤집듯이 엎으면 엄청난 출혈 또한 감수해야 함을 인지해야 함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특히 팀원들과의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설득의 과정 없이는 프로젝트의 리딩이 정말 어렵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죠.  



이방인

Glass ceil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외국인으로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이들이 겪게 되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라는 뜻인데, 저 또한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유리천장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고, 본인의 한계인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은 복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재니마게도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인종적 특성은 재미나게도 때로는 단점으로 때로는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인종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경험 및 관찰들을 일반화하는 것이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제 경험을 전제로 말씀드립니다. 우선 동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경우 그 수가 엄청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영역은 일반적으로 Methodological 한 부분과 함께 Presentation 같은 부분도 중요해 지기에, 점차 비영어권 출신의 경우 네이티브들이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들이 수반됩니다. 그리고 동양권 문화가 사실상의 겸손과 순종의 미덕을 공유하는 점들이 있는 만큼 앞에 나서기 꺼려하는 부분들도 분명히 없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이 일정 부분 극복이 되고 난 후에 생기는 묘한 장점들이 있는데 그것은 이렇습니다. 정곡만 제대로 잡는다면 떠듬떠듬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한 집중도가 가끔은 네이티브보다 더 생긴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외국인으로서 어떠한 가치적인 부분 혹은 콘셉트적인 부분들에 대해 최대한 미사여구를 제외하고 그 본질을 이야기하고자 하다 보면, 네이티브들이 일반적으로 구사하지 않는 간결한 전달법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인종 차별적이기도 하지만, 동양인들의 미적인 감각과 완성도에 대한 서양인들의 존경 또한 분명히 존재하기에 이러한 부분을 이용한다면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길을 택할 경우, 결코 프로젝트 리딩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바라보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위에 계신 Chief 레벨 분들은 분명 당신을 프로젝터 리더 그 이상으로 생각할 때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숙함보다는 유창함인 경우가 많으며, 어떠한 상황도 극복 가능한 탄탄한 내공일 확률이 많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저는 매일 같이 좌절합니다. 제 위의 Executive 레벨들의 클라이언트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이나 Partner들의 세일즈 능력 등을 보면, 물론 경험 차에서 나오는 것 이겠지만, 확실하게 저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백인 주류 사회에서 살아가는 제게 극복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인종적 장벽을 넘어 나의 유창함을 어필 하기란 아직도 제게 통곡의 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은 반면교사의 연속이다.


정말로 인생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좌절과 Core를 놓치지 않으려는 발악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끊을 놓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놈이라는 말이 맞는구나 라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도 매일 같이 힘내어 반면교사 중이신가요? 그렇다면 저와 함께 지금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내 쉬어 보죠. 그리고 다시 달리는 겁니다. 우리 인생이 다 그런 거 니까요.


PS. 그동안 제 이야기를 읽어 주신 분들 모두 XOXO


뉴욕 오피스 디자인팀 멤버들과 함께.



글쓴이 이상인은 현재 뉴욕의 디자인 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 중이며, 
팟캐스트 쌩스터 아이디어의 진행자로도 활동 중이다. 


쌩스터 발행 매거진들 보기

Design and Digtal >>
뉴욕에서 디자인 회사 만들기 >>
디자이너 미국 취업 공략법 >>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디자인팀 분위기 만들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