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중반즈음 썼던 일기
누구나 그러하듯 나도 매일 잠들기 전 하루의 감상을 떠올린다. ‘오늘도 실패했어.’ ‘아, 밥 먹을 때 유튜브 틀지 말걸, 책 읽는데 시간을 너무 쓰지 말았어야 했고. 오늘도 운동을 못했잖아.’ ‘아, 사람이 왜 이렇게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요즘 부쩍 나는 티끌같은 하루치 실패를 읊조리며 태산같은 죄책감 속에서 잠들곤 했다.
나는 나의 자원을 배분하는게 어렵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어떠한 기준 없이, 기분에 따라 사용하는 습관이 들었다. 이것은 넘치는 체력과 열정으로 루틴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우리 엄마의 탓을 살짝쿵 하고 싶다. 어쨌든 내가 무언가를 탐닉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그 선택이 어찌저찌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유의 유무가 자원의 낭비인지 투자인지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슬슬 깨닫는다. 이미 써버린 시간으로는 꼭 해야했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정된 자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 내 20대를 보낸 것 같다. 그렇게 보면 공공연히 알려진 인간의 성장과정을 나도 참신하지 않게 밟고 있다. 원한다면 우주라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패기를, 스스로를 신이라 착각하는 젊음을 어리석게도 또 부럽게도 보는 으른의 초입에 당도해 버렸다.
내 한계의 언저리를 가늠하게 되고 부터는 다들 중히 여기는 우선순위에 관심이 갔다. 그러고 깨달은 것이 우선순위 백날 세워봤자 그것에 따라 사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행동보다는 생각의 지분이 훨씬 많은 삶을 살고 있다.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그럴 기분이 아니더라도 몸을 추스려서 ‘일단’ 시작하라고들 하는데, 이 조언은 내 경우 의지가 아니라 몸과 나의 관계 문제였다.
하도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이 시점에서 이 행동을 선택한다면 자원의 낭비가 되겠구나’를 인지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미치겠는 건, 알아도 실천이 안되는 개떡같은 상황을 실시간으로 경험하는 과도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일일교사로 일한지 벌써 4년이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여전히 번아웃 증상이 온다. 퇴근 후를 알차게 보내지 못하는 내 한계가 의지의 문제인 줄 알았던 첫 해, 자책하며 보낸 두번째 해, 무언가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셋째 해. 넷째 해가 되어서야 어이없이 깨달았다. 아, 내 체력이 저질이라 그랬구나.
나의 애정에 목말라 하다 비뚤어져 흑막이 되어버린 나의 몸. 어느새 내 인생경제의 실세가 되어버린 몸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내면세계만이 퓨어하고 클린하고 영적인 줄 착각했던 이원론자가 스스로에게 불러온 재앙. 스텟에 몰빵한 자의 최후. 대대적인 조정이 필요한 것 같은데,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