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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Sep 28. 2017

보이는 것들의 타당성

타당 타다당. 탕!



문이 끼익 열리며 정장을 입은 젊은 청년들이 몰려 들어왔다.

활기차게 인사를 건네는 그들은 2세라 영어 실력도 출중하다.

옴메야... 안 그래도 번쩍번쩍한 시내 빌딩의 기에 눌렸는데

편한 차림으로 친구 만나러 나온 내 후줄근한 모습이 대비된다.


모임은 살가운 분위기로 끝맺었지만

주눅 든 마음은 쉽사리 제 모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며칠 후 친구와 이날의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나와는 영 반대편 스펙트럼을 달리는 성향이라

무대 뒤 이면을 알려주고는 한다.

내가 작은 것을 볼 때 그녀는 큰 그림을 생각하고

내가 사람의 마음에 집중할 때 (또는 매여 있을 때) 일의 진척을 환기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없는 서로의 모습에 감탄하고

남들이 봤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칭찬 배틀을 뜨는 일도 흔하다.

일종의 친선 경기 같은 활동인데,

미지의 영역을 손쉽게 관찰할 기회를 얻는데서 오는 감사 표현이다.


"그렇게 다들 차려 입고는 있지만 알맹이는 크게 다를 바 없어.

비즈니스의 첫 번째 계명은 자신의 약함을 감추는 거야.

그렇게 신뢰감을 형성함으로써 교류가 시작되거든.

하지만 겉모습에 신경 쓸 이유가 없는 건

그분들에게 언니가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왜 같이 하자고 했겠어.

결국에는 겉보다 내용물이 더 중요한 거잖아."


흐으음, 그렇구나.

남들이 나에게 가지는 감상이 중요하다. 되도록이면 나에게 호의적이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는 동기의 기저에 안개처럼 깔린 착한 아이 증후군이다.

친구는 시야를 흐리는 안개를 걷고 딱딱한 실체가 있는 조경을 잡아냈다.


그녀가 보는 세상은 정책과 일의 진행 상황과 그 안에 얽힌 상관관계의 회로다.

상대방 입장에 따라 반응하느라 고무공 같이 종잡을 수 없는 동선을 자랑하는 나와 다르다.

자신의 노선을 지킬 필요가 있는 나. 주변의 필요에 민감하고픈 친구.


같은 현상을 봐도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한다.

열길 사람 속 모르지만 차려입은 슈트 단 하나로

몇십여 년 알고 산 내 인생보다 순간 더 나은 평점을 준다.


그렇다면,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일이 얼만큼의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 걸까.



글. 그림 상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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