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을 보는 눈
얼마 전 아침에 공방에 나가니 오빠가 표구사로 와보라 하였다. 비단 부분이 얼룩진 액자를 보여주며 누구의 작품인지 아냐며 모를 것을 확신한 듯 바로 '무위당'선생님의 작품이라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작품은 난초만 봐왔는데 이번엔 대나무였다.
전 날 저녁 늘 타던 버스 정류장에서 조금 더 걷자 하고 다음 정거장을 향해 모퉁이를 도는데 누군가 버리려고 내놓은 액자가 보였다 했다. 눈에 익은 글씨와 그림을 본 오빠는 얼른 주워 표구사로 가져왔다며 얼룩진 비단만 보고 버린 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것을 오빠가 발견했다는 안도감을 얘기하였다.
며칠 뒤 공방에 있는데 오빠가 액자를 보러 오라 하였다. 얼룩진 액자는 다시 배첩을 하고 비단을 발라 새로운 작품이 되어 있었다. 쓰인 글씨와 그려진 대나무를 설명하는 오빠는 보물을 발견한 듯 신이 나 있었다. 표구사엔 선생님의 작품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었다.
이곳에 표구사를 차리고 선생님의 스승으로 모신 오빠의 마음이 보인 시간이었다.
작년 친구 산방에 갔다 선생님 작품의 표구를 보던 오빠가 친구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표구를 다시 해 줘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먼저 표구를 한 이를 함부로 생각한 것은 아니고 테두리에 두른 붉은 띠를 보더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날 가져온 액자는 며칠 뒤 다른 표구의 작품으로 친구 산방에 걸리게 되었다.
미술을 할 때 선생님은 작품을 많이 보라 하였다. 오빠도 시간이 날 때마다 표구사에 걸린 작품을 설명하고 표구를 배우고 있는 내게 자꾸 보라고 한다. 같은 과정을 거치는 표구를 왜 보라 할까 했는데 배첩을 배우기 시작하자 오빠가 할 때는 쉬워 보이던 일이 내가 하니 얼마나 어렵고 땀이 나던지....... 순서도 틀리고 방법도 틀리고. 본다는 것은 익숙해지는 것이고 익숙해지면 알게 되는 것임을 표구를 배우면서, 미술을 배우면서 알게 되는 사실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인가를 익히는 과정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꾸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다 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그것이 사람이던 우정이던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표구사에 걸린 대나무 액자를 보며 자꾸 감탄을 하자 오빠는 내게 선물로 그 액자를 주겠다 했다. 나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얼른 고맙다며 받았다. 얼마간 표구사에 걸고 곧 나의 공방으로 가져 올 생각인데 표구사에 갈 때마다 작품 앞에 서서 감탄을 하며 가져 올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