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결'을 아시는지요?
표구를 배우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봐라. 자꾸 봐라."
오빠는 일을 할 때 옆에서 계속 보라고 한다. 오빠가 하는 것을 보며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묻고 듣는데 처음 표구를 배우고자 마음먹고 오빠의 일을 보기 시작하며 처음 들은 몇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종이에 관한 얘기인데 기회가 된다면 종이 이야기는 나중에 글로 남기고 싶다. 단순할 것 같은 종이가 재료도 다르고 재료에 따라 질이 달라지고 결도 모두 다름을 알게 되었다. 겨우 다른 것을 알게 된 것인데 그 후에 종이에 대해 찾아보며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종이의 다양함에 놀라며 공부하고 있는데 후에 정리를 해 볼 생각이다.
배접을 연습하고 초배, 웃개 걸기 등 표구 과정을 익혀가며 동시에 오빠로부터 배우는 것은 표구의 역사이다. 오빠의 표구장인의 삶은 60여 년 전 소년의 나이에 지금은 사라진 박당 표구사의 꼬마에서 시작되었다. 배접을 할 때, 초배를 바를 때 오빠는 중간중간 오빠의 표구 인생뿐 아니라 전체 표구의 역사를 들려주신다.
진지하게 들을 얘기도 있고, 필기를 해 가며 들을 중요한 얘기도 있지만 그중엔 재미있는 것도 있는데 바로 '수결'이다.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는 sign이 과거에도 있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바로 수결이라 불린 현재의 싸인이다. 지금은 편지로 불리는 간찰을 살펴보는데 끝부분에 한자인지 상형문자인지 조금은 글자와 다른 표시가 있었다. 오빠는 그것을 지금의 '싸인'인 '수결'이라고 알려주었다.
간찰마다 글씨도 다르고, 수결도 다르다. 어떤 것은 장난스럽고, 어떤 것은 단정하다.
처음 배접을 배우기 전 작업대 앞에서 오빠에게 책에서 배우지 못한 이런 이야기들은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재미와 흥미는 그것에서 끝나지 않고 60년의 세월을 한 우물을 판 오빠의 길을 지금이라도 배워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 것이다.
지금 나에겐 표구를 배운다는 것은 문화를, 역사를 배우는 시간이다.
단지 기능, 기술에 국한된 것이 아닌 그 시대 문화의 한 부분을, 그리고 표구의 모든 재료가 되는 나무와 종이와 비단을 배우는 포괄적인 일로 다가온 순간이다.
오빠는 늘 바쁘다며 공방을 차리고도 이것저것 정신없는 내게 많이 보고 열심히 배우라 한다. 그리고 곧 이순을 바라보는 여동생인 나에게 물려받으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오빠의 표구사 옆 상가가 비었길래 공방을 차렸다. 반은 표구를 하는 공간으로 반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은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모든 것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면, 미술을 시작하고 내 그림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마무리하고 싶단 생각에 표구를 배우게 된 것이 그냥 객기 어린 결과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다. 지나간 나의 시간이 미술을 배운다고 갑자기 관심이 생긴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수결'을 처음 안 날의 그 재미있고 신났던 감정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끝없이 연습해야 하는 배접이 조금 지루할 때 다시 처음 표구를 시작하던 그날을 생각한다.
봄이 시작되고 공방은 겨울의 경직을 걷어내고 있다.
신나고 재미난 일을 다시 시작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