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함박스테이크 먹어봤어"
엄마와 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
다방이 아닌 카페에서 엄마에게 커피를 사 드리고 싶었다.
의자에 앉아 주문을 하려는데 종업원이 다가와 나가달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엄마를 보며 나이가 많은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순간 얼굴이 붉어진 엄마를 보며 뭐라도 말하려 했지만
엄마는 그냥 나가자며 나를 이끌고 그 자리를 일어섰다.
화도 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붉어진 얼굴의 엄마를 보자니 얼른 그곳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냥 나와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한바탕(?) 난리를 쳤어야 했는데.......
집으로 가자는 엄마를 잠시 기다리게 하고 그 당시 커피 맛이 좋다고 소문난 다른 카페로 갔다.
이번에는 먼저 들어가 물었다. 연세 드신 분이 함께 와도 되냐고.
사장님은 오히려 그게 무슨 말이냐며 상황을 물었고, 이야기를 듣고는 엄마를 위한 커피를 내려주시며
커피에 대한 설명을 아주 상세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해 주셨다.
엄마는 그날 설탕과 프림이 들어가지 않은 그 커피를 끝까지 다 마셨다.
그리고 그날 이후, 더 이상 카페에 가지 않으셨다.
그 일이 있고 한참이 지나 엄마와 경양식집에 가게 되었다.
가기 전부터 엄마는 몇 번이나 “내가 가도 되겠니” 하고 물었다.
예전 일이 엄마에게 상처로 남았다는 걸 알기에 괜찮다고, 식당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엄마는 메뉴판을 한참 보다가 함박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조금 놀라서 함박스테이크가 뭔지 아느냐고 묻는 내게
엄마는 “나도 예전에 먹어봤어.” 라며 메뉴판에 쓰인 다른 메뉴도 먹어본 적 있다는 말을 건넸다.
그 순간, 엄마는 더 이상 ‘엄마’가 아니었다.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았던 사람, '박원희'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었다.
소녀였을지도 모르는,
청년이었을지도 모르는 어떤 날의 '박원희'가 내 앞에 앉아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있었다.
지글지글 달궈진 철판 위에 달걀노른자가 흘러내리고, 반숙의 노른자 위에 고기를 찍어 먹는 법을 아는 사람. 그날 엄마는 수프와 샐러드, 그리고 함박스테이크를 남김없이 드시고 커피까지 마셨다.
내가 자기 일을 시작한 어른이 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엄마는 먼 곳으로 떠나셨다.
그때 원주에 이마트가 생겼는데 엄마는 가보고 싶어 하셨다.
나는 몇 번이나 다녀오면서도 엄마를 한 번도 모시고 가지 않았다.
함박스테이크도 그날 이후로 다시는 사 드리지 못했다.
엄마가 떠난 뒤, 한동안 홍시와 팥죽을 먹지 못했다.
엄마가 좋아하던 음식이었고, 끝내 제대로 사 드리지 못한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수프와 양배추 샐러드, 그리고 함박스테이크가 나오던 경양식집을 떠올리면
나는 여전히 그날의 엄마를 떠올린다.
“나도 이거 먹어봤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엄마를 조금 알게 되었다.
요즘 나를 엄마라 부르는 아이는 가끔 묻는다.
아기 때 어린이집에서 만난 아이인데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 '선생님'이란 호칭이 아닌 '엄마'라는 호칭으로 나를 부르는 아이이다.
엄마도 이런 거 먹어봤냐고, 엄마 때도 이런 게 있었냐고.
아이의 물음에 살짝 발끈하며 나는 대답한다. 있었다고!, 먹어봤다고!.
약간 흥분된 모습으로 먹어봤냐 물어본 음식을 열정적으로 얘기하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곧 흥미를 잃고 자기 할 일을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경양식 집에서의 나와 엄마가 떠올랐다.
곧 나는 엄마가 그때 했던 말을 하게 될 나이가 된다.
“나도 함박스테이크 먹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