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이야기
지난해 4월 오빠의 표구사 옆 빈 상가에 표구공방을 열었다. 나를 아는 이들에겐 생소한 소식이었다. 그동안 내 시간 속에 표구라는 것은 단지 오빠가 표구장이라는 것 외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표구공방을 차렸다니 다들 의아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빠의 표구 인생은 어릴 적에 시작되었다. 인사동에 위치한 지금은 사라진 박당 표구사에서 시작된 표구 일은 칠십 중반이 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봐 온 표구사에서의 오빠는 늘 작업대 앞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등을 보인 자리에서 종이를 자르고 풀을 바르고 말리는 작업을 거쳐 액자를, 족자를, 병풍을 만들어내고 가끔 작업대를 내려와 잠시 쉬는 것이 오빠가 보여준 모습이었다. 표구사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에서도 오빠의 삶 전부는 작은 표구사안에 있었다. 나 또한 다른 이들보다 표구 명칭에 관해서나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었기에 별 차이가 없었다.
몇 년 전부터 미술을 배우면서 그림뿐 아니라 그림을 완성시키는 표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 일과 관련이 있으니 관심을 가진 것인데 그러면서 오빠에게 가장 기본 작업인 배접부터 배우게 되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열심히 배우진 못하면서도 눈은 항상 그쪽으로 향하고 볼 땐 쉬워 보이던 그 일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배접을 배우면서부터였다. 오빠는 배접을 하는 내게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와의 종이를 현재와 과거로 설명하고 나무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틈이 날 적마다 옛 조상들의 글씨를, 그림을 설명해 주었다. 지금의 사인과 같은 수결이 예전에 존재했던 것을 옛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알게 되었다. 표구사에 걸려있는 작품과의 인연, 그리고 그림을 그린 이와 글의 쓴 이와의 만남을 듣는 시간도 내겐 흥미롭고 신기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문득 오빠의 귀한 이 일이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던 중 옆 빈 상가를 보게 되었다. 상가는 그전에도 비어 있었는데 그때 보인 것을 보면 상가와의 만남도 인연이란 생각이 든다. 무작정 가게를 얻고 작업대와 개인책상을 들여놓았다. 개인공간에 놓인 책상은 내게 작은 놀이터가 되었는데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수업도 준비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열심히 표구 일도 익히리라 마음을 먹고 나름의 시간을 쪼개던 중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 일이 생겼다. 늘 건강하던 오빠가 어느 날부터 힘이 빠지고 핏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괜찮다. 괜찮다 하는 오빠의 안색은 날마다 창백해지고 힘이 없어 걷는 걸음조차 위태해 보였다. 급하게 병원에 가니 혈소판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수혈을 하고 약을 처방받고 온몸에 피가 다 쏟아진 듯 창백한 오빠의 얼굴을 보며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한 엄마와의 아픔이 또다시 다가왔다. 병원에서 약을 먹고 지켜보자 하였지만 오빠는 계속 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지고 힘이 빠지는 게 보였다. 무섭고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다시 병원 응급실에 간 오빠는 그곳에서 당뇨란 얘기를 들었다 수치가 500이 넘었다는 소리에 다시 마음이 더 깊이 요동쳤다.
오빠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살아오며 오빠의 인생을 들은 적이 없었다. 표구사 옆에 공방을 차린 후에야 겨우 오빠와 동생처럼 지내고 있던 터였다. 처음 표구를 배울 때 이야기, 표구를 배우며 힘들었던 이야기, 오빠는 기억하지만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할머니 이야기, 그리고 우리 엄마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남매임을 제대로 알아가던 차였던 것이다. 왜 하필 지금이지? 쉽지 않은 마음은 두려움과 슬픔으로 다가오고 그러면서도 옆에서 오빠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몇 달간의 시간을 병원을 오가며 가라앉는 마음을 추스르며 보내게 되었다. 표구 일도 전혀 할 수 없던 오빠는 한 동안 병과의 싸움을 싸워야 했다. 몇 달의 시간을 보내고 오빠는 호전을 보이게 되었다. 조금씩 건강이 나아지면서 오빠가 처음으로 한 일은 다시 작업대 앞에 선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다가왔던 이 일은 오빠의 시간이 아주 많지 않음을, 또한 나의 시간도 많지 않음을 알게 하였다. 오빠의 표구 일의 귀중함을 알고 시작된 일이 게으름을 부릴 수 없음을 다시 알게 된 것이다. 오빠가 회복을 해가며 나는 다시 배접을 손에 익히고 있고 초배를 배우고 웃개 거는 일을 배우고 있다. 아직 손에 익으려면 한참이 걸릴 일이지만, 오빠의 60년의 세월을 절대 따라갈 순 없지만 나의 시간에 맞춰 표구 일을 배워 나가려 한다.
내 그림의 겉을 꾸미려 시작한 표구는 이제 조금씩 남은 나의 삶을 채울 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아직은 서툴고 힘들지만 혼자 설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다. 무엇보다 남매가 이어진 두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며 서로의 삶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은 귀한 일이고 축복된 일인 것을 알고 있다.
상운당 표구사와 상운당 표구 공방.
공방의 또 다른 작은 공간 안에 소소한 책방도 준비하고 있다. 작은 공간이 주는 풍성한 여러 향기를 뿜어내고 싶다는 소망은 공방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생겨난 것이었다. 풀의 접착력이 종이와 종이를 잇고, 종이와 나무를 잇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공간이길 바라고 있다. 글이 주는 위로가 넘치는 곳으로, 그림이 주는 풍성함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 오빠에게 표구를 배우며 들었던 흥미로운 이야기보따리들이 풀어지는 사랑방이 되길 소망하고 있다. 이야기는 사람을 만지고 보살피고 돌아보게 한다. 얼떨결에 차린 듯했지만 지나 보니 내 인생의 계획자가 분명한 뜻을 가지고 이곳에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는 확신이 생겼다. 누군가의 60년의 외길 인생을 그의 여동생이 듣고 그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전해주는 상운당 이야기를 아주 낮고 조용하게 들려줄 계획이다. 그리고 그전에 나는 60년의 이야기를 아주 잘 들을 생각이다.
그림을 멋지게 끝내려 시작한 표구는 그 안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그 이야기를 들려준 나의 오빠의 인생을 들여다보게 하였다. 한 사람의 인생은 나의 인생과 이어지고 있었고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과도 닿게 하였다. 어린아이의 삶도 치열한 청년의 삶도 숨차는 중년의 삶도 그리고 조용한 듯 요동치는 노년의 삶도 그저 스쳐 지나지 않게 하였다. 표구사와 공방 앞에 지나는 이들이 쉬어 갈 의자를 마련하자 고갯길을 오르며 숨찬 이들이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가곤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그곳이 어디이든, 누구와 함께 있든 간에 이야기가 빠지질 않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들려주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곧 이순을 맞이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나의 귀가 순해져 세상의 일을 바르게 듣고 이해하는 나이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