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감성은 어디에서 오나
바야흐로 애플의 시대이다. 스티브 잡스와 조나단 아이브가 떠난 지금, 그가 남긴 문화와 유산은 그 색이 바래지기는 커녕 새로운 리더십 아래 더욱 더 공고해지고 있다. 여타 기업들 -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 은 비상사태를 넘어 자포자기에 가까운데, 사과 마크의 세례를 받은 새로운 세대들이 점차 주류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디자인학과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대학생이 PC를 가지고 다니는 건 가물에 콩나듯하며, 초딩인 우리 아이도 시원한 스크린의 윈도우 랩탑보다는 키보드가 끈적끈적해진 맥북 에어를 고집하고 있다 (zoom 카메라에 더 멋있게 나온다나). 사실 젊은 세대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도 애플 생태계에 Lock in 되는 건 매 한가지인데, 저 멀리서 이리오라 손을 흔드는 앱등이 맥 유저들을 보면 도대체 무슨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지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감성이 느껴지니까' 란 이유를 댈 지 모르겠다. 나에게 감성이 뭐냐고 묻는다면 - 참 난감해하면서 - 설명이 되지 않는 느낌을 뭉뚱그려 놓은 것이라 말할 것 같다. 정의 자체가 정의 안되는 것이라면 논의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그래도 실체가 없는 녀석이 아니니 예시를 하나 들어 보도록 하자. 필자에게 가장 금방 떠오르는 감성의 예는 바로 벤츠가 되시겠다. 비록 구경만 하는 처지이지만 형형색색의 자동차 디자인 중에서도 '메르세데스'를 구분짓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외형에 나타난 '선'이다. 철판의 접혀진 모양, 각도, 매끄러움은 전체 인상을 단숨에 구별하는 요소는 아니지만 미세하나 확실한 차이를 만든다. 특히 서로 떨어진 두 기판 사이의 이격된 거리, 예를 들어, 문짝과 바디 사이의 틈은 마치 외형에 그어진 잉크선에 가까운 것으로 그 폭이 작고 균일한 것은 자동차 업계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금속 공예술과도 같다.
보다 소박한 감성 럭셔리로 스타벅스 리저브 스토어를 살펴보자. 일단 천장고가 매우 높고, 기둥은 잘 눈에 안 띄이도록 만들어진 공간 내부에 테이블들이 매우 방만하게 흩어져 있다. 이렇게 낮은 밀도는 손님의 수를 희생할지라도 사치스러운 공간 경험을 맛보게 하려는 디자이너의 의도가 담겨져 있다. 이에 더해 손에 닿는 모든 곳은 나무, 가죽, 포설린, 주석, 유리 등 비싸거나 귀하고 무겁고 다루기 힘든 재료로 가득 차 있다. 시각적 기호 또한 그러한데 날씬하지만 강렬한 로고는 무언가 고고한 느낌을 주고 패턴들은 금색, 은색, 흰색, 검정색 등 전체적으로 어두우면서도 화려한 색을 덧입고 있다. 자동차에서 느껴지는 차이보다 훨씬 더 쉽고 노골적인 방법인 셈이다.
2008년 10월 14일 Apple의 special event에서 스티브 잡스는 조금은 이례적으로 팀 쿡과 조나단 아이브에게 상당한 발표 시간을 할애하였다. SVP (Senior Vice President of Design) 로서 조나단 아이브가 소개한 것은 노트북의 새 제조 프로세스인 Unibody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말한 것을 하나하나 자세히 따라가보자.
랩탑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얇고 가벼우면서도 튼튼하게, 특히 torsionally rigid - 판을 뒤틀었을 때 견딜 수 있도록 -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맥북의 구조적 문제를 떠맡아온 것은 겉을 둘러싼 알루미늄 케이스가 아니라 내부 구획을 나누는 마그네슘 합금 골조로서, 금형에 주입시키는 주조(die casting) 방식으로 만든다. 다음 단계로 그 아래에 프레스로 얇게 한 알루미늄 케이스를 부착, 구조적으로는 보강판(stiffening plate) 역할을 하게 한다. 팜 레스트 (palm rest), 즉 손바닥이 올라가는 상판도 비슷하게 지지되는데, 마그네슘 골조 위로 올라가는 추가 골조와 용접(welding)이 되고, 바닥의 알루미늄 케이스 부분과는 둘레를 따라 플라스틱으로 밀봉(gasket) 된다. 한 마디로 꽤 복잡하다 (1).
https://www.youtube.com/watch?v=sxbiIpXZfG8
이후 조나단 아이브는 애플이 오랫동안 찾아 온, 이미 최고인 맥북을 더 가볍고 튼튼하게 할 방법을 찾았다면서 환한 웃음을 짓는다. 그들이 발견한 Unibody란 것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알루미늄을 압출(extrusion) 하여 두껍고 기다란 판을 만든다. 가래떡 만드는 과정을 생각하면 쉬운데, 뜨겁게 반죽된 쌀(알루미늄)을 틀(금형) 쪽으로 뒤에서 봉으로 쑤우욱 밀어준다. 이를 적당한 크기로 절단하면 책 사이즈의 알루미늄 판재가 나온다. 다음으로 9단계의 절삭(machining) 과정을 거치는데 맨 처음에 판에 먼저 기준점이 되는 구멍(registration hole)을 뚫고 필요 없는 부분을 두껍고 성글게 깎아낸다. 이후 키보드의 키뚜껑 및 터치패드를 위한 구멍을 뚫고, 나사를 끼울 구멍도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은 레이저와 컴퓨터에 의해 컨트롤되므로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절삭(machining)이라고 부른다. 이후 CNC grinding과 bead blast(작은 구슬을 스프레이하여 무광택 균질한 표면을 만들기), anodizing(양극처리로 산화피막을 만들어 부식방지) 을 거쳐 Unibody가 완성된다.
애플은 Unibody 실물까지 관객에게 배포하였으나 반응은 대체로 - 스티브 잡스나 조나단 아이브의 상기된 얼굴과 대조적으로 - 시큰둥했다. 그러나 이 한없이 가볍기만 한 프레임은 사실 같은 해 1월 WWDC에서 발표된 1세대 맥북 에어에 이미 적용된 것이었다 (2). 당시 서류 봉투에 꺼낸 얇디 얇은 노트북에 환호하던 관객은 정작 그 핵심 기술을 마주하였을 때 그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였다.
Unibody의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가벼움과 튼튼함이다. 1.1kg의 알루미늄 덩어리는 절삭을 통해 110g의 가벼운 구조체로 변하는데 그 얇기와 튼튼함은 이전 맥북 프레임을 훨씬 능가한다. 이 방식의 또다른 장점은 레이저와 컴퓨터 덕분에 금형을 통해 주조했을 때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정밀도를 자랑한다는 것이다. (주조란 붕어빵을 연상해 보면 쉬운데, 표면이 빵빵하도록 강한 압력으로 사출해야 하고 틀의 경계 사이로 붕어빵 주위의 바삭한 부분처럼 재료가 튀어나와 후처리를 해 주어야 한다) 경악스러운 것은 레이저 드릴인데, 얇게 절삭된 알루미늄 판을 순간적으로 '증발'시켜 0.02mm 크기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구멍을 뚫는다. 아니 도대체 보이지도 않는 구멍을 왜 뚫냐고? 그곳으로 LED 빛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켜져 있을 때만 빛나고 평시에는 평평한 알루미늄 판인 sleep 등을 만들 수 있다. 애플은 이 효과를 위해 이 기술을 가진 세계 유일의 회사를 통째로 사버렸다 (3).
https://www.youtube.com/watch?v=ZT6siXyIjvQ
애플의 진정한 위대함은, CNC 절삭의 대량 생산에 있다. 이전 맥미니나 아이팟 등 절삭 가공을 한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정밀도와 세련미에 따라오는 댓가는 너무 명확한 것이어서,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슈퍼카나 항공기, 최고급 시계 등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애플은 그 기술이 무르익을 때 즈음 과감한 결정을 하였는데 시장에 나와 있는 일본 업체의 CNC 기기를 3년간 모두 싹쓸이 하기 시작했다 (4). 이는 오늘날 중국이나 대만 어디엔가 어마어마한 CNC 농장이 24시간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중국 노트북 업체들의 감성이 예사롭지가 않다. 물론 그 아름다운 곡선까지 따라하기엔.. 특허가 무섭겠지
이러한 혁신 뒤에 있는 것은 애플의 더 나은 제품을 향한 마인드일 것이다. 이미 경쟁자와 상당한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방식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든다 하더라도 그 가능성을 절대 과소평가 하지 않으며, 결국에는 도박에 가까운 결정으로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것 말이다. 이러한 애플의 유별난 '제품 최고주의'는 여느 테크 대기업에서 볼 수 없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역학 관계를 낳기도 했다. Unibody 같은 프로젝트에 조니 아이브가 정점에 있다는 사실은, 최종 사용자에게 제공되는 가치를 위해 모든 공학적인, 그리고 재무적인 타당성이 동원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 과장되게 말해 애플에게 디자인은 프로젝트의 시작이자 존재의 이유인 셈. 존 스컬리에 따르면 같은 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방문한 사람이 있었다는데, 애플에서 웅성웅성하던 회의실이 회사 최고 인싸 집단인 디자이너들이 등장하자마자 잠잠해진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디자이너가 들어오기도 전에 미팅이 시작되어 디자인에 대한 왈가왈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5).
이러한 디자인 우선 정책은 물론 스티브 잡스의 호위 아래에 가능해진 것이었다. 초창기 조니 아이브도 생산이 까다로운 아이디어 때문에 존 루빈스타인이라는 상사에게 엄청난 갈굼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승진 이후 잡스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청, 걸출한 엔지니어이자 아이팟의 아버지라 불리우던 이 중역을 결국 퇴선시켰다 (4). 또 다른 조직적 차원의 배려는 모든 예산 집행과 권한을 CFO 1인에게 집중시킨 것이다. 이는 애플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복잡한 매니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효과를 낳았는데 덕분에 조니 아이브와 같은 디자이너들은 비용에 신경을 안 쓰고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다. 이는 다시 말하건대 애플이 돈을 버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에 온 힘을 집중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잡스가 월 스트리트의 단기 실적에 대한 압박을 귓등으로 듣는 통뼈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5).
우리가 알아 본 유니바디는 사실 매우 안 좋은 사례일지도 모른다. 애플이라는 매우 예외적인 집단이 때린 만루홈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를 통해 우리는 애플이 추구하는 감성이란 것이 어떤 감상적 스토리나 사치스러운 느낌이 아니라 이전 제품에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색, 촉감, 모양, 무게감이 만드는 총체적인 놀라움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속도, 발열, 메모리 용량과 등 엔지니어링 문제와 동일한 스펙트럼 선상에 있으며, 오히려 이러한 공학적 스펙 또한 철저히 인간의 경험에 근거한 선택이어야 함도 알게 된다.
이는 결국 제품 공정을 artistry 단계로 끌어올리는, 편집증적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한 잡스의 집착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이다. 어찌보면 이러한 위대한 제품과 팔리는 물건을 등가에 놓는 것은, '공부 열심히해서 대학가면 남자/여자들이 줄선다'라는 시쳇말처럼 일견 개연성있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섣불리 따라하기 힘들어 보이는 이유는 (1) 이윤을 공리에 놓는 기업 목적에 대한 발상의 대전환이, (2) 사용자가 느끼는 가치를 판단하고 호위할 수 있는 눈과 냉철함이, 그리고 (3) 고객이 더 나은 경험을 위해 지갑을 연다는 믿음 - 아니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에 가까운 신념 - 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애플을 향한 찬사에도 불구하고 느끼는 아이러니가 하나 있으니 바로 '강남 소나타', '3초 루이비똥'과 같이 필부필부의 일상을 파고드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성공 공식이다. 애플의 핸드폰, 노트북, 패드를 넘어서서 와치와 에어팟은 이제 젊은 세대들의 필수가 아닌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에르메스 줄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인스타그램이 애플 매출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에도 생각이 미친다. 잡스는 자신의 철학이 저 멀리 코리아에서 인간의 욕망과 존엄성에 대한 고뇌를 불러올 것을 알고 있었을까? 감성의 구현이 선택의 문제가 되는 순간이 온다면, 디자이너는 이러한 변화에 얼마나, 어떻게 기여를 해야 될 것인가?
(1) https://www.youtube.com/watch?v=qI8q_bvi7To
(2) https://en.wikipedia.org/wiki/MacBook_Air
(3) https://blog.bolt.io/manufacture-like-apple/
(7) https://www.youtube.com/watch?v=Um_g8sQ_p3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