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에게 잠옷은 사치, 모든 옷을 껴입은 냉골의 밤

마음의 축을 찾기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열하루의 기록 [4]

by sw

글을 쓰는 이 시점에는 미국에서 열리는 공모전을 하나 준비하느라 바쁜 연초를 보내고 있다. 조금 안일한 마음일 수도 있지만, 두 고양이 곁에서 맘껏 읽고 싶었던 문학 책들을 읽고 엄마랑 모처럼 한국에서 열리는 상설 전을 보러 가고, 저녁에는 잠이 잘 오는 차 한 잔을 우려 놓고 마시면서 브런치에 글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난겨울에 이미 팀원들에게 함께 공모전을 하겠다고 대답을 해버린 바람에 의도치 않게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무언가 시간에 쫓기는 일정이 있다 보니, 미루려면 한없이 미룰 수 있는 이 순례길 글을 예상보다는 천천히 쓰게 된다. 오늘은 벌써 세 번째 정기 온라인 회의를 마치고 밀린 낮잠을 좀 자면서 빈둥거리다가, 자기 전까지 두 시간 정도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한 가지는 최근에 선물 받은 책들을 두 시간 정도 읽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브런치에 4일 차 글을 올리는 것이었다. 오늘은 뒤의 것을 하기로 마음먹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이날 끝마치지 못한 채 임시저장하였고, 글을 마무리하는 오늘은 여섯 번째 정기 온라인 회의를 마친 날이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운동 루틴을 만들고 싶어 퍼스널 트레이닝을 4회만 끊어서 아주 자세하게 운동 자세와 원리를 배우고 있는데, 글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이 마치 동화 작용과 이화 작용의 관계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화 작용의 운동만 해서도 안되고 이화 작용의 운동만 해서도 안되듯이, 누군가 쓴 글을 읽기만 하는 것도 반대로 나 혼자 주야장천 쓰기만 하는 것도 옳지 않다. 올해는 조금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서 작년보다 더 타인이 쓴 글을 많이 읽고 좋은 표현을 익히고 문장력을 기르고, 나아가 타인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내실을 기르고 싶다.

이렇게 세 문단 정도 시작에 앞서 딴 소리를 한 다음에, 4일 차를 이제 시작한다. 전날 묵은 숙소(목이 퉁퉁 부은 나를 위해 얼음을 챙겨 준 따뜻한 숙소)도 나름 훌륭한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밤에 얼음찜질을 하고, 파스도 열심히 바르고 자서 그런지 어제만큼의 끔찍한 통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딱 보름 정도 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 통증이 흐릿해졌다. 감사한 일이다. 우리 숙소는 213호였나 그랬다. 그래서 1층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계단을 타고 내려와야 했는데, 계단을 내려오면서 발목 때문에 낑낑대서 형의 웃음을 사기도 하였다.

이때만 해도 우리 둘 모두의 깔창에 로고나 글자가 남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다 사라졌다.

1층에서 한창 아침 식사를 하는데 옆자리에 50대 정도로 보이는 영국인 부부가 자리를 했다. (어제 형이랑 나랑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체크인할 당시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은 표정으로 체크인을 하던 부부였다.) 형도 영국에서 지내고 있고 나도 미국에서 지내고 있기에, 어색하지 않게 스몰 토크가 시작되었다. 부부의 출발지, 하루에 대략 몇 km씩 걷는지, 다른 운동도 하는지 등등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 부부는 놀랍게도 순례길을 걷는 게 아니라 달린다고 했다. 거의 10kg에 육박하는 배낭을 멘 채로 달렸다 걸었다 하는 트레일 런을 한다고 했다. 물론 아내는 운동선수 출신이고 남편도 밀리터리 출신이라고는 했지만, 형이랑 나랑 20대 중반 젊은 남성으로서 걷기만 해도 빌빌거리고 있는 것 같아 서로 약간 민망함을 느꼈다. (나는 발목이 너무 아파서 민망함 정도에서 끝났는데, 형은 이때까지만 해도 무릎이 아프지 않아서 그런지 '자극'을 받은 듯했다. 종종 내 앞에서 몇백 미터 달리다가 이내 포기하고 다시 걷는 걸 목격한 것을 보면 말이다. ENTJ는 말릴 수 없다.)


영국인 부부와 앞으로 걸어갈 루트에 대한 대화도 나누었는데, 사실 그도 그럴 것이 5-6일 차까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다. 스페인의 Tui 지역을 통하는 내륙길로 갈 것인지, 혹은 배를 타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국경을 지나는 해안길을 따를 것인지 말이다. 영국인 부부는 내일 배를 타고 해안길을 간다고, 그게 대다수가 택하는 간편한 루트라고 했다. 나는 사실 제대로 알아본 건 아니지만, 내륙길을 골라서 '국경을 발로 통과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인으로서 평소에 우리나라에서 발로 국경을 넘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부부가 너무 tremendous 한 농담이라고 방긋 웃어주셨다.


유럽 사람들에게 비행기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게 그렇게 신기한 경험은 아닌 것 같다. 예전 배낭여행 때 프랑스 니스에서 모나코로 넘어갈 때도 그렇고, 프랑스 릴에서 내 가장 친한 프랑스인 친구 Loup와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내다가 당일치기로 벨기에에 다녀왔을 때도 그렇고 그냥 '쓱~' 차로 지나가는데 어느 순간 국경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매번 호들갑을 떨었는데 친구들은 그런 나를 더 신기하게 바라봤었다. 그래도 이번처럼 '발'로 국경을 넘는 건 자동차나 기차로 넘는 것과는 기분이 많이 다를 것 같아 형과 내륙길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 날도 출발이 살짝 늦어졌다. 9시 반쯤 스트레칭과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걷기 시작했는데 발목 통증이 바로 올라왔다. 형이 10시에 근처 약국이 여니까 약국에 들러서 테이핑을 할 수 있는 테이프를 구입하자고 했고, 다행히 약국에 테이프가 있어서 축구부 출신(XX고등학교 해리케인이라고 하던데 내가 아는 해리케인만 셋이 넘는다)인 형이 전문가의 손길로 내 왼 발목에 칭칭 테이프를 감아주었다. 걸을 때 한결 나았다. 형도 이 날부터 본격적으로 발바닥에 통증을 느끼면서 양말을 두 겹 씩 신기 시작했는데, 형 양말이 금세 구멍이 나는 바람에 내가 도톰한 양말 한 쌍을 제공했다. 테이핑과 양말 나눠 신기, 정말 눈물겨운 우정이 아닐 수 없었다.

SW & MH was here. (형, 우리는 was가 맞아. 우리는 하나니까.)

이 날 원래 계획대로라면 36km를 걸어야 했는데, 둘 다 일찌감치 무리라는 걸 알았기에 거리에 대한 부담 없이 최대한 걷는 데까지 걸어보기로 하고 걷기 시작했다. Chafe라는 걸을 맛 나는 아주 예쁜 해안가 길을 지나니까 믿기 힘들 정도로 신기한 길이 나왔다. 보자마자 모로코를 여행할 당시 걸었던 메르주가 사하라 사막이 떠올랐다. (다행히 카카오 초콜릿 같이 생긴 낙타 똥은 하나도 없었다.)

내 앞에서 사막에 발자국을 내면서 터벅터벅 걸어가는 형을 보니, 마치 영화 '듄'의 한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막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풍경이었다. (놀랍게도 듄 아직 끝까지 안 봤다.) 첫 사흘은 폭풍우와 비바람, 이 날은 사막. 직접 걸으면서도 이렇게 하루하루 다채로운 경험을 하는 게 신기했다. 이 날 걸은 사막 느낌의 모래언덕들은 오늘 구글에 검색해 보니, Praia da Amorosa라는 동네의 뒷산 느낌인 것 같다.

어느덧 사막 존을 통과하고 나서는 Anha라는 수풀이 우거진 풀숲 길이 나왔다. 정말 아름답고 고요했다. (이따가 글을 다 쓰고 나서 배경 사진을 고를 때, 이 Anha의 수풀 길을 배경 사진으로 고르지 않을까 싶다. 아님 말고.) 이 당시에 메모장에 남겨둔 감상이 있어서 짧게 발췌해 본다.

"비가 오니 몸이 무겁고, 해가 뜨니 목이 마렵다. 목이 마려우니까 지난 사흘간 내린 비가 그동안 물 챙길 무게를 줄여 주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뭐든 감사할 이유는 찾기 나름인가 보다."

해가 뜨기 전까지는 춥고 습해서 목이 마른 느낌을 한 번도 못 느꼈는데 이 날은 걷는 내내 낮에 목이 말랐기 때문에 이런 단상을 남겼었다.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서 계속 잔잔하게 반성하고 고민하고 떠올렸던 메시지들, 다 결이 비슷하다. 부정적이게 보려면 한없이 부정적으로 볼 수 있고, 긍정적이게 보려면 한없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나는 한 번 사는 인생 후자로 살련다하고 다짐했다.

세 시간을 꼬박 걷고 Viana do Castelo 마을의 거의 유일하게 문 연 식당에 도착했다. 어차피 메뉴에 적힌 단어 하나도 못 읽는 건 똑같고 그냥 주인장에게 믿고 맡김 요리를 주문했다. 형은 이 날도 페일 에일을 물어봤다가 까여서 포르투갈 국민 맥주를 받았고, 나는 낮이지만 레드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주인장이 산도와 온도를 고르라고 하길래, 산도는 높은 걸로 온도는 상온에 있던 걸로 달라고 했다. 음식은 우리에게 꼭 필요로 했던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어우러진 돼지고기와 감자 요리였다. 우리나라의 돼지갈비찜과 비슷한 간장 양념의 음식이었는데, 정말 배가 고팠는데 맛있게 잘 먹었고 와인과도 잘 어울려서 술에 약한 나도 홀짝홀짝 잘 마셨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듯이 주인장이 친절한 것도 큰 장점이었다. 주인장이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내 가방에 꽂혀 있는 태극기를 보더니 '꼬레이아 두 쑬'하고 웃었다. 뒤에 두 쑬 붙는 게 왠지 불어의 '코에 드 푸드'와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아서 다행히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5년 전에 유럽 배낭여행을 할 당시보다 훨씬 우리나라와 우리나라 사람을 잘 알아보는데, 반가운 일이다. 계산할 때도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형이랑 나랑 식사에 너무 만족해서 얼마 나올지 예측을 하고 있는데 30유로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뭐... 평소보다 꽤 비싸지만 고기도 나왔고 술도 각자 한 잔씩 했으니 괜찮다고 하고 있는데 17유로를 돌려주었다. thirty(30) 유로가 아니라 thirteen(13) 유로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13유로는 너무 저렴한 것 같다. 밥 먹고 다시 걸으면서 한 10분 정도는 형이랑 그 식당 칭찬만 했던 것 같다.

50mm로 확대해서 촬영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훨씬 멀리서부터 아주 큰 크기로 보이는 거대한 성당이었다.

Viana do Castelo 마을을 마저 걷는 동안 아주 긴 철로 만들어진 도로도 건넜다. 걷는 동안 철이 계속 삐그덕거리고 옆에는 차가 쌩쌩 지나다녀서 조금 겁이 났다. 낮에 걸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고, 맞은편에 정말 역대 봤던 모든 성당들 가운데 가장 웅장하게 생긴 성당이 하나 멀리서도 보여서 그 성당만 보면서 걸었다. 걸으면서 속으로 '설마 저 멀리 있는 성당까지 올라가는 게 순례길 루트는 아니겠지...?' 하면서 걱정도 했을 만큼 정말 산 꼭대기에 있었다. 다행히 아니었다.

15.54km 걸은 시점에서 혼자 촬영한 1분 30초 분량의 짧은 영상도 하나 남아 있다. (영상은 거의 형이 찍어서 내가 찍은 내 독백 영상은 한 서너 개뿐이다. 나는 글쟁이라 주로 메모장에 짤막짤막하게 썼다.) 영상에서 혼자 주절주절 떠든 내용을 좀 받아 적어보자면,


"오늘은 어느덧 걸은 키로수가 15.54km입니다. 어, 아까 5km쯤 걸었을 때 왼발목이 너무 아파서 오늘 한 10km밖에 못 걷겠구나 했는데 어느덧 또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까 15km까지 왔습니다. 근데 또 왼쪽이 아파서 오른쪽에 힘을 실어서 걸었더니 오른쪽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오른쪽에도 테이핑을 하고 지금 현재는 양쪽에 다 테이핑을 하고 걷고 있습니다. 저기 앞에 형이 걸어가고 있는데, 형과의 거리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너무 뒤처지지 않게 너무 민폐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열심히 걸어보려고 합니다."

한 20km 걸었을 무렵, 시간으로는 오후 4시 반쯤부터 Carreco라는 마을이 나왔는데 요 언덕 마을 길이 참 예뻤다. 형도 걷는 내내 이 길이 여태껏 걸은 길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며, 어릴 적 살던 독일 동네랑 닮아 있다고 했다. 심심할 때쯤 길고양이 가족들도 한 번씩 마주치고, 배추를 캐러 나오신 농부 아주머니도 만나 인사도 나누고 재밌게 걸었다. 아주머니께서 포어랑 몸짓을 섞어가면서 지금 산길에 들어서기엔 많이 늦었다고 걱정해 주셨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었던 것이, 지나온 길에 머물만한 문 연 숙소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서서히 노을이 지기 시작했는데, 순례길을 걸은 지 4일 만에 처음 마주한 노을이었다. 걸으면서 주황빛의 면적이 서서히 넓어지는 그 그러데이션을 즐기면서 발걸음을 한걸음 한걸음 옮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을 지는 걸 그저 즐겼는데, 며칠 뒤부터는 노을 지는 걸 조금 두려워하게 되었다. 보통 해가 지기 전까지 목표 지점까지 도착해야 했는데, 늘 노을이 지는데 우리가 갈 거리는 한참 남아서 일몰을 15분 앞두고 산 한가운데 있는다거나 할 때 형이랑 나랑 '제발 해 조금만 늦게 져라' 기도하면서 걷기도 했다. (이 날은 해가 완전히 진 이후에 마지막 10분간 산을 통과하면서 "배추 아주머니 말 듣을걸"하면서 후회에 후회를 거듭했다.)

다리가 너무 아프면 그냥 주저 앉거나 누워서 문 연 곳을 찾았다.

원래 같으면 저녁을 먹어야 했는데, 23일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둔 저녁 시간대라 그런지 문을 연 식당이 하나도 없었다. 이미 해는 진 지 오래였고 조금만 지나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해진다는 경험적 데이터가 있는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있는 힘을 다해 걸었다. 구글맵의 Open Now 기능은 정말 믿을 것이 못 된다. 걷는 내내 Open Now 기준으로 문 연 식당까지만 젖 먹던 힘을 다해 걷고, 그 식당의 굳게 닫힌 문을 보고 좌절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헛된 희망과 좌절이 반복될 때면 위 사진과 같이 땅바닥에 주저앉거나 누워 다음 희망을 찾아 검색과 걷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도착한 지역이 바로 Afife. Afife가 우리가 이 날 두 다리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그나마 사람의 인적이 있는 동네였다. 이럴 때 한 번씩 '우버 10분만 타면 큰 동네 나오는데 고?'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악마의 속삭임을 하긴 했지만 걷는 내내 끝까지 절대 타협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 아무도 몰라도 우리 자신들은 우리가 치팅했다는 걸 알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이나 우버 이런 거 도움 일체 없이 오로지 두 발로 완주하고 싶었다.

다행히 Afife에는 문을 연 작은 슈퍼마켓이 하나 있었다. 번역기를 들고 근처에 우리를 재워줄 알베르게가 있는지 물었고, 슈퍼마켓 주인분께서 거리로 나와 오른쪽을 가리키며 "2km 더 가면 작은 식당 하나 나오는데, 그 집에서 가게 2층을 평소에 알베르게로 운영해"라고 포어로 말해주셨다. 그때부터 그 가게 2층 알베르게 하나에만 온 희망을 품고 그저 직진이었다. 아무리 구린 숙소여도 더 비교하고 알아볼 여력도 없었기에 형이랑 그냥 무조건 거기 들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가게에 도착해서 주인장을 기다리자 주인장이 우리를 받아주겠다고 30유로를 내면 4인용 2층 침대 방, 40유로를 내면 2인용 퀸사이즈 침대 방을 준다고 했다. 첫날 퀸사이즈 침대 방에서도 어차피 베드버그 공포를 느꼈기에, 그냥 10유로 아낄 겸 4인용 2층 침대를 골랐다.

진짜 너무 추웠다.

당연히 방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다르게 말하고 싶다. 방에 우리 말고는 있는 게 없었다. 보일러 난방은 당연히 없었고 라디에이터라든지 조금이라도 열을 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무것도 없었다. 문장 그대로 방이 밖보다 추웠다. 2층 침대가 두 개 있어서 형과 각각 침대 하나씩을 쓰기로 하고, 형에게 형은 1층에서 잘 건지 2층에서 잘 건지 물었다. 형은 무조건 2층에서 잘 거라고 하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2층 침대 시트에서 자는 중에 베드버그 떨어질 것 같아서"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고민 끝에 1층에서 잤는데, 그 이유는 2층에서 불어오는 외풍이 정말 턱이 돌아갈 것 같이 심했기 때문이다.


겨우 잠에 들기까지도 정말 우당탕탕 쉽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가장 먼저, 첫날부터 내게 가장 큰 감사를 느끼게 해 준 '뜨신 물의 샤워'가 더는 불가능했다. 지난 사흘간 형에게 먼저 씻을 권리를 양보했던 나는, 이 날 처음으로 형보다 먼저 씻기로 했다. 처음 물을 틀었을 땐 사실 어느 정도 씻을만한 미지근한 물이 나왔다. 따뜻한 물이 10이라고 하고 냉수가 0이라고 할 때, 나는 6에서 시작해서 바디워시를 닦아낼 때쯤 3이 되었던 것 같다. 정말 닦아내는 내내 너무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다. 그리고 그거 아는 독자 있는지 모르겠는데, 차가운 물로 비누 거품 씻어내면 괜히 더 안 닦인다. (찬물로 하는 설거지 느낌이랄까.)

다 씻고 나와서 형에게 각오하고 화장실에 가라고 전했다. 한 1분 지났나? 화장실에서 10초에 한번 꼴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형 이야기를 들어보면, 형은 3에서 시작해서 0으로 샤워를 마쳤다. 너무너무 안쓰러웠지만, 속으로 '휴... 먼저 씻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잠깐 스쳐 지나갔다.

냉수 샤워를 한 불쌍한 형은 2층 침대에 올라가 두툼한 침낭 속에 들어가 오들오들 떨며 저녁 배달이 가능한 식당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아시안 음식에 줄여 있던 형은 초밥을 골랐고, 나는 유럽에서 먹는 초밥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 차라리 야끼소바를 메인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1인 1 야끼소바와 나눠 먹을 용으로 초밥 한 줄을 주문하기로 했고, 오들오들 떠는 형을 위해 내가 1층으로 내려가 배달 음식을 받아 왔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유럽에서 잘못 만든 초밥은 정말 먹지 못할 만큼 비리다. 이날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야끼소바로 대충 배를 채웠고, 우리 둘 다 초밥은 한 점씩 맛을 본 후 젓가락을 갖다 대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모든 스노볼이 어디까지 굴러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지막 문단에서 공개)


나는 목 부분이 유독 예민한 편이다. 목에 추위를 많이 타서 터틀넥을 정말 좋아하면서도, 조금이라도 까슬까슬한 느낌이 드는 니트류는 불편해서 입지 못하겠다. 항상 캐시미어 100%의 보들보들한 재질이라거나, 혹은 아예 면 100%의 부들부들한 재질이어야 목을 가만히 두고 내 할 일을 할 수가 있다. 만약 울이나 거친 재질의 꽈배기 니트 같은 거 잘못 입었다가는 하루 종일 왼손으로는 니트의 목덜미를 쥐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목도리도 예전에 할머니들 자주 하시던 면 목도리나 아주 부드러운 캐시미어 목도리만 고집한다. 또, 훈련소에서 방탄모를 쓸 때는 턱끈이 목 부분에 계속 닿는 느낌이 너무 불쾌해서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순례길을 걸으면서, 이러한 예민병이 다 고쳐졌다. 당장 이 날도 너무 추워서 23km를 걷는 내내 입었던 땀에 젖은 목폴라를 빨지도 않고 다시 껴입고 잤다. 거기에 모자라, 걷는 내내 그 위에 입었던 경량패딩과 바람막이 재킷까지 전부 다 입고 잤다. 그 상태 그대로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할 수 있을 정도로. 아니 실제로도 그 상태 그대로 다음 날 아침 세수와 양치만 하고 출발했으니 실제로 그랬다. 내가 가장 못 견디는 맨살 맨목에 터틀넥, 그것도 울-폴리 혼방의 따끔한 재질을.


물론 중간중간 온몸이 한 덩어리로 굳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한 번씩 깨서 몸을 녹이곤 했지만, 그래도 밖에서 노숙하는 것보다는 훨씬 잘 버티며 잤다. 형이랑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둘 다 알람소리보다 일찍 깨서 이 날도 해뜨기 전에 이곳에서 탈출하기로 했다. 나 먼저 간단히 양치와 세수를 하기로 하고 방 문을 열었는데, 정말 과장 좀 보태서 기절할 뻔했다.

전날 형이랑 나랑 각각 한 점 먹고 버리기로 해서 묶어둔 초밥 쓰레기 봉지 주위로 불개미떼 천마리 정도가 바글바글 모여 파티를 하고 있었다. (형한테 이 현장 사진이 있는데, 에어드랍할 때 제발 그 사진은 빼달라고 부탁했다.)

덕분에 잠에서 단번에 확 깬 채, 다섯 번째 하루를 맞이하게 되었다. 쓰레기 봉지만 들고 거리의 쓰레기통으로 내던지고, 해가 뜨기도 한참 전인 6시반쯤 5일차 일정을 시작했다.


- 마음의 축을 찾기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열하루의 기록 [5]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