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를 위한 포르투 화가의 기도

마음의 축을 찾기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열하루의 기록 [0]

by sw

유독 길게 느껴진 석사 첫 학기, 마치고 나니 올해 2주가 남았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잃어버린 열정도 찾고, 머리를 비우고 싶었다.


대학생 때부터 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였다.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다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연말 분위기 내며 몸 따뜻하고 마음 풍족한 연말을 보냈다가는 내년에도 마음의 축을 세우지 못할 것 같았다.

딱 세 시간 책상에 앉아 깊게 고민하고, 출발까지 40시간 남은 포르투행 항공권을 구입했다. 아조레스 제도라는 난생처음 듣는 경유지를 자가환승 해야 하는 고난도의 비행이었지만 그냥 샀다. 티켓을 구입하고 나서야 알아봤더니 대서양 한가운데 있는 포르투갈령 섬이라고 한다. 다행히 쉥겐 덕분에 별도의 비자 발급은 필요가 없었다.


밤 비행기 출발까지 남은 40시간을 정말 바쁘게 보냈다. 출발 당일까지 주문했던 하이킹 가방이 도착하지 않아, 당일 낮 보스턴 REI 매장에 가서 가방과 침낭을 구입했다. (정말 얇은 시트형 침낭으로 하나 샀는데, 이때까지는 몰랐다. 겨울 비수기 순례길 알베르게는 대체로 보일러 혹은 난방을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평소 필요최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별도의 하이킹화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해 평소에 신던 운동화만 한 번 깨끗이 세탁했다. (이 또한 3일 차부터 매일같이 후회했던 결정이었다. 완주를 하고 글을 쓰고 있는 현시점까지도 발목이 퉁퉁 부어 일상생활을 할 때도 스틱을 챙겨 다니고 있다.)


옷도 그냥 입던 것들로, 특히 잘 마르는 러닝 의류 위주로 챙겼다. 작년 6월부터 반년 넘게 보스턴(정확히는 케임브리지)에 거주하면서 총 세 번의 러닝 대회에 출전하였고, 그 덕분에 세 종류의 러닝 의류를 참가 기념품으로 받아 운동을 할 때 상당히 애용하고 있다. (기능성이 아닌 일반 면 티셔츠 등을 챙겼더라면 매일 밤 마르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전전긍긍했을 듯하다.)


물론 우여곡절이라는 것은 늘 그렇듯 있었다. 비행 40시간 전에 티켓을 구입한 만큼 좋은 조건의 티켓이 얼마 없었다. 가장 저렴한 티켓을 골랐는데 그 티켓의 치명적인 단점은 수하물이었다. 부치는 짐은 너무 배부른 소리이고, 심지어 들고 타는 짐(Hand-carry) 또한 가져갈 수 없고 오로지 작은 노트북 가방 혹은 개인 백팩(Personal Item 항목) 하나만 들고 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챙긴 배낭은 Hyperlite Mountain Gear(HMG) 사의 최대 55L가 수납 가능한 거대한 하이킹 가방이었다.


일단 침착하게 체크인 데스크로 향했다. 억양을 보니 라틴계 승무원이셨다. "연말이라 승객이 너무 많아 힘드시죠?"부터 시작해서 "밤비행기 탈 생각에 벌써 힘들었는데, 이렇게 밝게 체크인 도와주셔서 힘이 나요."까지 지상직 승무원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감사 표현을 다 하고 그냥 나머지는 운에 맡기기로 했다.

@sangwonsohn.photography (2025) | All photos are my copyright.

다행히 내 진심 어린 감사가 잘 먹혔던 모양이다. 55L짜리 하이킹 배낭이 Personal Item으로 문제없이 통과한 것도 모자라, 면세 구역에서 안내 방송으로 누군가 "생웡 쏜~"하고 부르길래 가슴이 철렁했는데 알고 보니 나를 앞 좌석이 텅 빈 넓은 비상구 좌석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신 것이었다. 여행의 시작부터 감사한 일의 연속이었다.


미국에 와서 친구들로부터 취미가 정말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취미가 정확히 뭘까, 난 왜 취미가 많을까 하고 고민해 본 적이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취미는 결국 귀찮아질 준비, 혹은 귀찮아질 마음의 여유다. 작년부터 비행을 할 때마다 Flight Book 혹은 Log Book이라고 하는 설레는 취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기말고사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Log-1, Log-2 따위의 수식이 먼저 떠오른다.) 주로 일본과 유럽 몇몇 국가들의 수집가 기질이 강한 사람들이 하는 취미생활로 알고 있다.


내가 즐기는 대부분의 취미는 주로 나 혼자 즐기는 것임에 반해, 이건 내 로그북을 조심스레 승무원께 건네고 답장을 기다리는, 마치 기장과 기내에서 펜팔을 하는 기분이라 묘하게 두근댄다. 가장 중요한 건 부탁을 드리는 타이밍이다. 한창 바쁠 이착륙 시간대와 식사 제공 및 면세품 판매 시간대를 피해서, 딱 기내에 불이 꺼진 지 한 시간쯤 지나서가 가장 좋다. 면세 구역에서 산 초콜릿이나 간단한 간식을 함께 드리면서 부탁하면 센스 있는 승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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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이 '로그북'이라는 취미 생활 덕분에, 달갑게 느껴지지 않을 법도 한 환승이 그저 설레는 일로만 여겨졌다. 로그북 두 페이지를 하루에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몸은 조금 피곤해도 두 배로 두근대는 느낌이었다. 두 페이지에는 각각 상세한 비행 정보와 함께 "Great travels! Happy Holidays! :)"와 "Just a little taste of the AZORES"라는 짧은 메모도 적혀 있었다. 특히 아조레스 제도에서 포르투로 향하는 비행편의 승무원께서는 아조레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녹차와 홍차 티백 하나씩을 노트 사이에 테이프로 붙여서 선물해 주셨다. (이 두 티백은 순례길 말미에 모든 카페와 식당이 문 닫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정말 값진 역할을 해준다.)

@sangwonsohn.photography (2021) | All photos are my copyright.


얼떨결에 무사히 포르투에 도착하였다. 전역한 후 얼마 되지 않아, 4년 전에 혼자 요시다 포터 사의 22L 작은 럭색 백팩 하나 들고 여행했던 추억의 도시다. 4년 전 가장 좋았던 레코드샵과 각종 자그마한 갤러리에 들러 추억팔이를 좀 하였다. 나는 주로 방문했던 도시에 몇 년쯤 지나 다시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럴 때마다 꼭 예전에 찍었던 동일한 장소에서 최대한 비슷한 각도로 사진을 남기고는 한다. 이번에도 그런 무의미한 놀이를 오랫동안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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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에는 물론 야경이 아름다운 동루이스 다리도 있고 포트 와인 한 잔 하면서 그 야경을 관람할 수 있는 모루 정원도 있지만, 내 기억에 가장 깊게 새겨진 곳은 Rua do Almada라고 하는 도심 뒤편의 언덕 거리였다.

Francisco라고 하는 맛 좋고 분위기 좋은 자그마한 에스프레소 바도 하나 있고, 그곳부터 해서 쭉 위로 올라가다 보면 화가 개개인의 갤러리나 작업실과 오래된 레코드샵 등이 포진되어 있다. Louie Louie라는 레코드샵은 각 나라의 라이카 스토어를 제외하면 내가 서유럽을 배낭여행할 때 가장 오래 머물렀던 상점일 것이다. 레코드판부터 시작해서 CD, 카세트테이프까지 정말 많은데 전부 잘 짜인 원목 서랍과 진열대에 놓여 있어 낭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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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과 이 날, 같은 각도로 사진을 찍다 보니 내 취향도 조금씩 변하고 애정하던 가게도 4년 새 조금씩 변했다고 느꼈다. 특히 21년도 10월에는 쳇 베이커에 한창 빠져 있던 때라 그의 쿨 재즈 앨범들을 한 움큼 집어서 사진을 찍었다면, 이 날은 엘라 피츠제럴드, 찰리 파커, 루이 암스트롱의 CD를 집어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큰 틀에서 '내가 좇는 것들'이 여전히 비슷하다는 점에서 위안과 평화 같은 따뜻한 감정을 많이 느끼게 되었는데, 예전에나 지금에나 가장 아름다운 앨범 재킷과 내용물을 가진 밸런스 좋은 레코드판 하나를 고르라면 쳇 베이커의 것을 고르는 건 같다는 점에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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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일몰이라 동루이스 다리 위에서 해 지는 걸 볼까 싶어서 위에서 말한 Rua do Almada 거리를 걸어 내려오던 때였다. 한 자그마한 갤러리에서 흰 수염이 마치 산타클로스의 그것만큼 풍성하게 난 푸근한 인상의 화가와 눈이 마주쳤다. 무엇을 그리고 계시냐고 여쭤봤다. (할머니와 엄마가 모두 화가인지라 기본적으로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포어로 대답하셨지만 고유명사인 '성 프란치스코'는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도 내일부터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다고 영어로 말씀드렸지만 'Camino de Santiago'라는 단어는 전달이 된 모양이었다. 붓을 잠시 내려놓으시고는 동양인으로 보이는 낯선 순례자(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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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자신이 그리는 객체와 점점 닮아간다는 것이 20년 넘게 화가와 살아온 내 생각이다. 우리 할머니는 일평생 꽃밭과 꽃을 그렸고, 꽃이 꼭 생화가 아니더라도 항상 아름답듯이 하늘로 가신 뒤로도 가족들에게 아름다운 존재로 남아 있다. 엄마는 당신의 성격처럼 차분하고 책이 빼곡히 쌓인 책가도와 고양이를 주로 그리는데, 늘 잔잔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내게 힘이 되어주는 것이 마치 묵직한 책장 같고 자주 체하고 여린 모습은 마치 고양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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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의 어느 화가는 한평생 성경 속 인물들, 주로 성 프란치스코를 그렸다고 했는데, 그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모습을 보며 과연 ‘자신을 평화의 도구로 써달라고 기도한 성 프란치스코’를 그리는 자 답다고 느꼈다. 이 때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도 전이었는데 뭔가 이때부터 되게 묘한 숭고함을 느꼈던 것 같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그 이해할 수 없는 포어 기도문과 그 현장 분위기는 정말 Holy 하달까. (비슷한 경험을 순례길 사흘차엔가 나흘차에 다시 하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또 이어서 적어보겠다. 마치 영화의 떡밥처럼 나중에 기술할 이야기들을 잔뜩 써두었는데 정작 쓰다가 잊어버리게 될까 봐 염려가 된다.)


-마음의 축을 찾기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열하루의 기록 [1]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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