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축을 찾기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열하루의 기록 [1]
지난 12월 20일부터 30일까지 꼬박 열하루, 거리로는 약 280km가 걸린 여정이었다. 인간은 늘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랩탑을 챙겨 매일 일과를 마치고 그날 느낀 감정과 그날 있었던 순례자의 길 에피소드 등을 글로 정리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내 최근 3년간 내 배낭여행을 돌이켜 보았고, 그보다 무리하면 무리했지 쉬울 리 없는 이 일정 상 랩탑은 보스턴에 놓고 오는 게 낫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 대신, 대부분의 기억이 휘발되어 버리지 않게끔 정말 최소한의 기록이라도 아이폰 메모장에 해두자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그렇게 Day 1 란에 남긴 메모는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시차적응 없이 출발. 몸을 녹일 뜨신 물, 난방, 낡지만 아늑한 알베르게, 마실 물, 30km쯤은 거뜬한 두 다리, 장관을 바라볼 두 눈, 파도와 바닷소리를 감상할 두 귀, 머리와 몸 모두 사용하면 충분한 샴푸, 향기 좋은 마른 수건" 뭐 이런 식으로 짤막짤막하게 단상을 남겨 두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또 감사하게도 그 단어들을 다시 읽으면서 어느덧 보름이 지난 과거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위에 적은 짤막한 단상들과 그날 촬영한 몇 장의 사진들로 오늘의 1일 차를 장기 기억으로 변환해 보려고 한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함께 걸었던 동행, 걷는 내내 서로 의지했던 동반자 형이 하나 있었다. 형한테 실명을 거론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진 않았지만, 내가 이렇게 글로 순례자의 길 여정을 회상하듯 형은 지금쯤이면 열심히 내 얼굴이 잔뜩 들어간 영상을 만들고 있을 테니 서로가 서로의 저작물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하겠다. 정말 반가운 존재였다. 내가 제 아무리 출발 40시간 전에 포르투행 항공권을 발권했다고 한 들, 믿는 구석이 하나라도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무모한 결단을 내리긴 어려웠을 것이다.
유독 버겁게 느낀 가을 학기 종강을 앞두고 반드시 어디론가 혼자 떠나야겠다는 확신은 선 때였다.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오래전부터 노래를 불렀던 아르헨티나, 그중에서도 파타고니아 트래킹. 두 번째도 꽤 오래전부터 마음속 버킷리스트로 두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미지의 남미와 추억의 유럽을 놓고 고민하던 중, 마음이 결정적으로 유럽으로 기울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항공권 발권을 미루고 미루던 와중에 보스턴 to 부에노스 아이레스 항공권의 가격이 2천 불을 넘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유럽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정보를 좀 얻고자 '유랑' 카페에 4년 만에 접속했다. 그리고 접속한 그날, 단 두 시간 전에 올라온 글을 하나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영국에서 박사하고 있는 학생(98년생 남자)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이 버킷리스트인데, 친구들이 힘들다고 아무도 안 가려고 하네요... 혼자 걷는 게 부담이 되어서 동행을 구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데, 이 글을 올린 나무98이라는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왠지 잘 통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보다 딱 한 살 많고 서로 껄끄러울 것 없는 동성이기도 하고(이런 동행 카페에서 이성에게 동행 문의를 하는 것 자체가 다르게 해석될까 싶어 애초에 연락 시작을 않는 편이다), 석사생과 박사생 뭔가 걷는 내내 대화 주제나 고민거리도 많이 겹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반가웠다. 형과 처음 연락한 게 12월 1일인데, 가기로 확정하고 항공편을 결제한 게 12월 16일인가 하니까 별말 없이 기다려준 형에게도 다시 한번 고맙다.
드디어 12월 20일 날이 밝았다. 보스턴 현지 시간 18일 밤비행기로 출발해 무박으로 이틀을 바쁘게 돌아다녀서 그런지 별다른 시차의 어려움도 겪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이 시점에 여독과 함께 미국 동부의 시차와 유럽의 시차가 한꺼번에 찾아와 낮에는 고양이처럼 누워서 자고 밤에는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형과 오전 10시 포르투 대성당(Porto Cathedral) 앞에서 처음 만나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함께 순례자 여권(Credential del Peregrino)을 두 권 구입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순례자 여권에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 두 번 이상 도장(Stamp라고들 부른다)을 찍으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완주를 하면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이때까진 쉽다고 느꼈다. 우리가 걷는 12월 20일부터 31일까지 얼마나 많은 가게와 상점이 문을 닫는 지를 철저히 간과했기 때문이다.)
운명의 장난같이 출발 15분 만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꽤 강한 비였다. 런던에서 교환학생 할 때처럼 무심하게 맞으면서 지나갈 그런 비가 아니라, 조금만 맞아도 양말 사이에 물이 들어차고 시야가 흐릿해질 정도의 그런 비였다. 오전 10시에 출발해서 11시 13분에 형이 처음 촬영한 우리의 시작 영상이 있는데 이 영상 속 우리는 각각 우비와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웃으며 걷고 있다. 비가 정말 미친 듯이 올 때쯤 우리가 계획했던 첫 경유지인 Paroquia do Salvador de Matosinhos라는 웅장한 성당 앞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스탬프를 받으려고 했는데 점심시간인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래서 빠른 포기를 하고 근처 식당에서 비를 피하며 점심을 먹기로 했다. 성당 앞을 지나는데 벽에 아주 작은 글씨로 "MATEUS 7:21" "TIAGO 4:4" "REVELACAO 2:9"라는 세 구절이 적혀 있었다. 이때를 시작으로 꾸준히 벽에 적힌 성경 구절이라거나 각종 메시지를 발견하곤 했는데, 순례자의 길이라서 그런지 정말 뼈를 맞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거나 소름이 돋는다거나 하는 신비한 경험을 자주 했다. 저 세 구절 중에서는 마태복음 7장 21절의 말씀이 이 길을 시작하고 노력을 실천하는 우리에게 가장 와닿는 구절이 아닐까 싶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Matosinhos 마을의 한 카페 겸 햄버거 매장에 들어갔다. 내부 인테리어가 모두 나무였는데 물에 젖은 생쥐같이 흠뻑 젖은 우리를 정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들여보내준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배정받았던 좌석이 어디인지는 그날 식당을 찾은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물 발자국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먼저 주문한 발로나 핫초콜릿이 나왔는데, 정말 꾸덕꾸덕하고 마시면 피로가 풀리는 듯한 착각을 심어주는 당도의 음료였다. 이 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핫초콜릿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마시는 법: 두 시간 십오 분간 폭풍우 맞으며 떨면서 걷기!"라고 올렸을 정도로 맛있었다. 솔직히 버거는 그냥 그랬다.
잘 먹고 잘 충전하고 심기일전해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정말 준비가 안 된 바보였기에(매번 걸으면서 서로한테 "너 MIT 석사 맞아?" 혹은 "형 Oxford 박사 맞아?"를 주고받을 정도로 바보 같은 시행착오를 자주 겪었다.) 3일 차인가 4일 차까지는 Camino 공식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지 않고 구글맵과 화살표만을 철저히 의지하면서 걸었다. 그래서 정말 많이 돌아가고 가끔은 가지 말아야 할 위험한 경로로 산행을 하다가 발목과 무릎을 다치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지만,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면서 포르투 해안가길과 스페인 Tui 내륙길을 거친 산티아고 순례길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Camino 공식 앱에 의지하길 바란다. 이 바보들은 오후 2시에 처음으로 Camino de Santiago 가리비 껍데기 로고와 화살표가 적힌 안내판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는 경로가 좀 간단했다. 그저 해안가를 따라 쭉 북쪽(스페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되었다. 그러다가 예쁜 포토 스폿이 나오면 멈춰 서 사진도 찍고 즐기면서 걸었다. 며칠쯤 지나면 몸도 마음도 급격하게 지치는 때가 오는데, 이 때는 찍은 사진과 영상도 정말 첫날에 비하면 현저하게 적다. 아무튼 오후 4시 30분쯤 Santiago de Compostela 성당까지 247km 남았다는 화살표와 함께 인증숏을 남기면서 형과 농담도 주고받았다. "형, 이거 생각보다 너무 쉬운데?" "상원아, 우리 하루 30km씩 걸으면 8일 컷 하겠는데?" 뭐 이런 경솔하기에 짝이 없는 무서운 농담들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첫날 폭풍우가 내렸던 걸 감안하면 정말 순조롭게 잘 걸었다. Vila Cha라는 해안가 마을까지 무려 28km를 넘게 걸었다. 문제는 머물 곳이었다. 둘 다 안일하게 구글맵 Open Now 기준으로 정렬을 해서 연 알베르게를 서너 군데 정도 돌았는데 정말 한 곳도 문을 열지 않았다. 이때부터 둘이서 '이래서 비수기 순례길을 사람들이 추천하지 않는구나'하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 현지인께서 연 알베르게 한 군데를 소개해 주셨다. 1층에는 자그마한 카페 겸 매점, 2층에는 방 8개 정도 있는 성수기에만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하는 그런 곳이었다. 사장님 인상이 너무 좋아서 한 시름 놓았다. 2층 전체에 우리밖에 없으니 가장 넓은 방에서 편하게 자라고 하시고 침대 두 개와 화장실이 있는 방 키를 내어주셨다.
대충 짐을 풀고 곧바로 근처에 연 몇 안 되는 식당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자랑 아닌 자랑을 하나 하자면 내가 식당 하나 기갈나게 잘 고르는 것 같다. 해안가이니만큼 해산물 요리를 하는 식당이 좋겠다 싶어서 Restaurante Salitre라는 곳으로 갔는데, 처음에는 이 날 저녁 예약 만석이라고 거절을 당했다. 그래서 슬쩍 예약 타임테이블을 봤더니 8시부터 X자가 잔뜩 있는 것이었다. 당시 시간은 7시 10분쯤, 50분이면 진짜 다 먹고 계산까지 하고도 남는다고 말씀드렸더니 웃으면서 들여보내 주셨다. 이 또한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이때부터는 온몸에 진이 빠져서 메뉴 들여다볼 여력이 없어서 그냥 주인장 믿고 맡김(오마카세라고 많이 하던데 우리말로는 믿고 맡김이라고 하지요)으로 주문했다. 가시가 있거나 비린내가 심한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날 먹은 생선 요리는 정말 훌륭했다. 생선 살도 정말 짭조름하고 함께 나온 빵도 잘 어울려서 든든히 잘 먹고 첫날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게 돕는 그런 식사였다.
숙소로 돌아가서는 첫날 비에 젖은 의류 세탁을 시도했다. 감사하게도 포어만 할 줄 아시는 사장님께서 영어를 할 줄 아는 따님께 전화를 걸어 동시통역을 해가며 빨래를 해주셨다. (한국에서 삼성 다닐 땐 갤럭시를 사용했는데, 기기에 내장되어 있는 동시통역 기능이 정말 그리웠다.) 이 날 내 e-Sim은 너무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지 유독 인터넷이 안되어서 숙소 2층에 있는 와이파이에 연결해서 여쭤볼 내용을 잔뜩 캡처해서 가지고 1층 사장님께 찾아가는 식으로 힘겨운 소통을 이어갔다.
이 날 방에는 킹 사이즈 침대 하나와 퀸 사이즈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첫날이라 그런지 형이 더 작은 침대를 고르면서 더 편하게 자라고 배려를 해줬다. 딱 두 번 사양하고 더 이상 서있을 힘이 없어서 큰 침대에 누워서 자기로 했다. (이때까진 몰랐다, 어차피 둘이 그날 한 침대에서 자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형이 먼저 씻고 나오더니 내게 뜨거운 물장난 아니라고 어서 씻으라고 했다. 이 날 느낀 감사함은 대체로 씻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우다다 기록한 것들이다.
"몸을 녹일 뜨신 물, 난방, 낡지만 아늑한 알베르게, 마실 물, 30km쯤은 거뜬한 두 다리, 장관을 바라볼 두 눈, 파도와 바닷소리를 들을 두 귀, 머리랑 몸 모두 사용하면 충분한 샴푸(숙소에 바디워시가 따로 없었다), 향기 좋은 마른 수건(가끔 낡은 숙소에 가면 수건에서 제대로 안 말라서 나는 쉰내가 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날 수건은 정말 향긋했다.). 감사한 마음이 확 올라온다. 특히 뜨신 물에 목을 가져다 댈 때."
이렇게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모든 게 순조로운 줄 알았다. 새벽 4시에 형이 발목을 톡톡 두드리며 날 깨우기 전까진.
"상원아 자는데 정말 미안한데, 나 베드버그 물린 것 같아. 불 잠깐 켜도 돼?"
-마음의 축을 찾기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열하루의 기록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