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에게 더 걸을 힘과 용기를 주는 순간들

마음의 축을 찾기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열하루의 기록 [2]

by sw

2일 차는 그렇게 새벽 4시에 시작되었다. 잠귀가 밝은 걸 0에 두고 잠귀가 어두운 걸 10에 둔다고 할 때, 나는 한 3-4 정도 되는 편이다. 4시가 되기 전부터 무언가 인기척이 느껴져 '얕은 수면' 단계로 이미 옮겨갔는데, 어두운 남성 그림자가 내 발목을 톡톡 두드리니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 한 번에 깼다.


"상원아 자는데 정말 미안한데, 나 베드버그 물린 것 같아. 불 잠깐 켜도 돼?"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저절로 몸을 벌떡 일으키고야 말았다. 당장 상체를 들지 않으면, 나도 이 베드버그가 득실대는 알베르게에서 그들의 숙주로 전락하고 말 것 같은 불안 때문이었다. 형이 불을 켜고 난 다음에는 형 걱정부터 했던 것 같다. (형이 이 글을 읽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그도 그럴 것이, 형의 약지 손가락이 정말 벌에 쏘인 것처럼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2일 차는 전체 일정 중에 가장 많은 거리인 36km를 걸어야 하는 정말 강행군의 날이었던 만큼, 일단 형이 침낭을 들고 내 침대로 옮겨 와 함께 자기로 하고 둘이 한 침대에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형은 혹시 모를 베드버그를 씻어내기 위해 샤워를 한 번 더 하고 머지않아 깊은 잠에 들었는데, 나는 아침 6시 반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뭐랄까, 이미 판데믹 확진 판정을 받은 뒤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대화를 해도 별 걱정이 안 되는데 아직 걸리지 않은 사람은 마스크가 늘 신경 쓰이는 뭐 그런 것과 비슷했다.


다행히도 아침에 일어나서 형의 손가락과 목 뒤를 다시 유심히 보니, 그간 보고 들었던 베드버그 자국과는 거리가 멀었다. 베드버그 유경험자인 형, 그리고 수많은 LLM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제미나이에 의하면 베드버그는 일자로 쭉 자국을 남기는 데, 형은 정말 웬 이상한 벌레에 쏘이거나 물린 게 틀림없었다. 일단 여행만 이튿날부터 가져온 모든 의류를 태우거나 버리지 않아도 되어서 안심이 되었다. 나였으면 일단 밤 사이에 귀국 항공편 한 번 들여다봤을 것 같은데, 형이 생각보다 의연하게 대처해서 나도 베드버그 공포증으로부터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 만에 동침(?)을 하면서 형과 급속도로 가까워졌으니 꼭 베드버그 사태에도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이런 생각은 순례길을 걷는 내내 다양한 영역에서 확장되고, 결과적으로 내가 앞으로 살면서 견지하고 싶은 태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둘 다 이 숙소에서 더 오래 머무는 것이 그리 바람직한 의사결정이 아니라는 데 빠르게 동의했고, 계획보다 이른 아침 7시 30분에 집을 나서기로 결정했다.


놀랍게도 우리가 걷기 시작한 지 15분 정도 지나자마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해안가를 따라 걸었기 때문에 바람도 정말 거세게 불었다. 이 당시 형이 촬영했던 영상들을 다시 재생해보면 바람소리에 오디오가 씹힐 정도로 비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정말 한 발 한 발 내딛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출발할 당시에는 정말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어두컴컴했던 데 반해, Mindelo라는 해안가 마을을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빗줄기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Mindelo 주위의 호수를 건너는 길은 정말 열하루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이었다. 정말 하루 종일 내릴 것 같은 비가 귀신같이 멈추고 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그 몽환적인 느낌이 배가 되었다.


정말 감사했던 것은, 이 나무판자로 이어진 호수길은 비가 5분만 더 왔어도 우리가 건널 수 없게 잠겼을 거라는 점이다. 실제로 호수 중 수심이 가장 깊은 부분의 나무판자들 사이로는 물이 서서히 올라와서 우리가 건너는 동안에도 물 위를 걷는 듯한 아슬아슬한 기분을 선사했다.

한 시간 반 가까이 비바람을 뚫고 걸었더니 몹시 허기가 졌다. 딱 아홉 시 정각이 되었을 때 Arvore 마을의 주유소 근처에 연 자그마한 빵 가게를 발견했다. 잴 것도 없이 그냥 그곳으로 직행해서 반질반질한 크루아상과 에그타르트를 인당 한 조각씩 주문하고 커피도 한 잔씩 했다.


이 날부터 우리의 커피 사랑이 시작되었다. 너무 추워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건 생각도 안 났을뿐더러 팔지도 않았다. 별도로 '롱'이라고 덧붙이지 않으면 주로 에스프레소가 나오는데, 우리는 초반에 주로 그냥 커피를 주문해서 사이좋게 에스프레소를 받았다. 사실 불어로는 '카페 알롱제'하고 멋들어지게 좀 걸쭉한 아메리카노 비슷한 음료를 주문하는 편인데,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에서는 영어든 불어든 대부분 의사소통에 실패했다. 당연히 그 나라의 언어를 숙지하지 못한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하는 내내 스페인어 혹은 포어 학습에 대한 강한 열망을 느꼈다.

이쯤 딱 빵 가게 창문 틈으로 멋지게 뜬 무지개도 보고 형과 서로의 가족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덧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는 하도 비가 자주 그리고 오래 와서 해가 떠있거나 비가 멈춘 때에 실내에 앉아 있으면 뭔가 죄책감을 느낄 정도였다. 지금 걷지 않으면 미래의 나에게 큰 부채를 지우는 듯 한, 정말 순례자의 길마저도 한국인스럽게 걸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덕에 해가 바뀌기 전에 계획대로 완주할 수 있었다.

한없이 걷다가 Povoa de Varzim이라는 모래사장을 지나는 동안에는 족구 비슷한 걸 하는 현지인들도 많이 마주쳤다. 이들이 우리를 보더니 "까미노?"하고 물었고 그렇다고 대답하자 이내 손을 번쩍 들고 흔들며 응원을 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순례자의 길은 특히 비수기의 그것은 정말 고독하고 외로운 여정이기에 마주치는 인연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한걸음 두 걸음 더 걸을 큰 원동력이 되어준다. 이 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그들이 한껏 두 손을 치켜들고 인사를 건네는 사진을 업로드하면서 "더 걸을 힘과 용기를 주는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문구를 적었다.


12시 30분쯤 되니 귀신같이 또 허기가 졌다. 형이랑 배꼽시계 타이밍이 비슷해서 참 다행이라고 느꼈다. 나만 배가 고프면 잘 걷고 있는 사람 괜히 멈추라고 하는 게 미안할 텐데 형도 항상 내가 배고프다고 느낄 때쯤 배고프다고 해서 여행 내내 배를 주리지 않고 끼니를 챙겼다. 12시 반쯤 Agucadoura라는 비교적 큰 마을에 있는 상당히 훌륭한 타파스 식당에 방문했다. 형의 의견도 들어봐야겠지만, 이 날 먹은 점심이 열하루 중에 가장 맛있었던 식사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를 담당한 서버가 영어에도 능통하고 상당히 서글서글한 타입이라 식사 내내 기분이 참 좋았다. 전에 음식 리뷰 유튜버인 '더들리'씨가 음식이 맛있거나 친절하거나 둘 다 해당되면 가장 좋지만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친절한 식당이 낫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는데, 참 공감한다.

나는 오감 중에서 시각이 가장 발달하고 미각이 가장 덜 발달한 사람이기에 사실 뭘 먹어도 사흘 정도 지나면 맛있었다는 '기억'만 남는다. 그러나 친절한 서버의 표정과 제스처, 그리고 그 식당의 따뜻한 색감 등은 아주 오래 기억에 남는다.

점심때 처음으로 형이랑 술을 한 잔씩 했는데, 형은 라거를 마셨던 것 같고 나는 서버가 추천해 준 오렌지가 들어간 샹그리아를 마셨다. 왜 형이 마신 음료까지 기억을 하냐면, 형이 열하루 내내 주문할 때 페일에일 없냐고 물었는데 단 한 명의 서버도 이해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번 그 대신 뭘 갖다 주는지 유심히 봤기 때문이다. 형이 부디 영국으로 돌아가서는 좋아하는 페일에일을 양껏 마시며 순례자의 길을 추억하길 바란다. 이 날 샹그리아를 마실 시점에 우리는 이미 4시간 가까이, 19km나 걸은 뒤였다. (1시간에 거의 5km를 걸었다는 건데 이 날 오버페이스를 하는 바람에 우리 둘 다 상당한 고역을 치르게 된다.)

오후 3시쯤 하늘에 구멍이 난 듯이 비가 쏟아졌다. 양말에는 이미 물이 잔뜩 들어차서 걸을 때마다 저벅저벅 소리가 났다. 2019년도 논산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데, 여름에 물이 들어찬 양말과 신발을 신고 걷는 것과 겨울에 그렇게 걷는 것과는 또 느낌이 달랐다. 여름에는 발이 습기에 썩는 느낌이 들면서 굉장히 불쾌하다면, 겨울에는 발에 고인 물들이 그 상태로 조금씩 차가워지면서 마치 발에 물을 잔뜩 묻혀서 냉동실에 집어넣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의학적으로는 '동상'이라는 표현이 있겠다.

조금만 더 걸었다가는 '동상원'이 될 것 같아 두려웠는데, 폭풍우로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문이 열린 작은 성당이 하나 보였다. '나 홀로 집에'의 케빈처럼 허겁지겁 성당 안으로 뛰어 들어갔는데, 성당 안에 'Silent Night' 노래가 아주 노래 가사 그대로 고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Frank Sinatra 아저씨가 부른 버전 말고, 성가대 아기들이 부른 정말 잔잔하고 병아리 같은, 청아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성당 안에 사람도 나와 형 둘밖에 없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한 10분 앉아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두 곡 가득 귀에 담고 나왔는데, 형이랑 둘이 문 밖으로 나오면서 누구 하나 먼저랄 것도 없이 "정말 Holy 하다"말했을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2025년 12월 21일 오후 3시, Igreja Paroquial de Apulia 성당, 폭풍우와 Silent Night, 오래 기억날 것 같다.

오후 3시 40분쯤 Apulia라는 동네를 지나면서 순례자의 길 일정 최초로 하루 30km를 돌파했다. 비가 그쳤더라도 사흘동안 밤새 내린 비 때문에 온 땅이 진흙 범벅의 물바다가 되어 있거나, 도저히 두 발로 걸어갈 수 없는 수준의 개울이 되어버린 곳도 많았다. 교회 일 년에 한 번 나가는 수준이지만 나름 모태신앙인지라 기억하는 성경 구절 몇 개가 있는데, 이 날 걸은 길 같지 않은 길들이 너무 고난으로 느껴져서 로마서 8장 18절이 떠올랐다. 나중에 또 쓰겠지만, 실제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 그 순간이 막 대단한 영광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그 전날 선물 받은 아름다운 해 질 녘 노을, 그리고 중간중간 보내주신 따뜻한 도움의 손길 등이 더 Glory로 받아들여졌다.

4시부터 6시까지 온갖 고난의 길을 뚫고 걸었더니 다리는 진작에 힘을 잃었다. 이틀 연속 비바람과 폭풍우를 뚫고 걸었던 터라 컨디션도 상당히 별로였다. 둘 다 암묵적으로 동의한 바가 있었다. '절대 이틀 연속 알베르게는 묵지 말 것.' 오늘은 별이 하나라도 좋으니 제발 호텔이든 호스텔이든 푹 잘 수 있는 곳을 골라보자고 했다.


그래도 나름 순례자의 마음으로 숭고하게 걷는 건데, 5성급 호텔에서 호캉스를 하면서 걸을 순 없었다. 선택지가 많았다면 이곳저곳 봐가면서 골랐을 텐데 이 날도 연 숙소 자체가 한 군데밖에 없었다. 간신히 연 곳을 하나 찾았고 별 세 개짜리 호텔이었는데 어젯밤 알베르게 사태를 경험한 우리한테는 별 다섯 개로 느껴지는 아주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힘들어서 땅을 보며 걷던 와중에 나를 부르고 당근 먹고 가겠냐며 활짝 웃어준 당근 농부 아저씨와의 따스한 일화를 추억하면서 2일 차를 마무리한다.


- 마음의 축을 찾기 위해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열하루의 기록 [3]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