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Islands National Park
'세계의 허파' 하면 아마도 아마존을 떠올리실 겁니다. 그러나 대기 중 산소의 70-80%는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생산된다고 하는데요, 해조류(海藻類) 덕분이지요. 오늘은 이 해조류 중 남부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켈프(kelp) 사진을 나누어 볼까 해요.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의 산타바바라(Santa Barbara) 앞바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섬들이 '채널 아일랜즈(channel islands)', 즉 '해엽 군도'입니다. 총 8개의 섬 중에 5개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요, 그 주변으로 어획과 채집이 금지된 해양 보호구역들을 끼고 있는 바다생물의 낙원이지요.
몇 달 전 채널 아일랜즈 국립공원 내 다섯 섬들 중 하나인 산타 크루즈(Santa Cruz) 섬에 다녀왔는데요, 오늘 나눌 사진들은 대부분 그때 찍은 것들입니다.
이곳에서 켈프는 많은 해양생물의 보금자리이자 영양분의 공급원으로 생태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켈프는 하루에 50cm까지 자라서 가장 빨리 자라는 식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요. 바닷속 단단한 암초에 고착해서 공기주머니를 이용해 수직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뿌리, 줄기, 잎사귀가 있는 나무와 비슷한 모양이 되기 때문에, 모여있으면 숲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켈프는 육지의 나무나 풀들과 모양만 비슷할 뿐 생물학적으로나 해부학적으로는 전혀 다르답니다.
켈프는 고사리나 버섯처럼 포자(胞子; spore), 즉 홀씨로 번식합니다. 칼날처럼 생긴 잎사귀(blade라고 합니다) 위에 울퉁불퉁 솟아 있는 것이 포자를 담고 있는 포낭(sorus)이고 잎사귀와 줄기 사이 타원형 모양이 공기 주머니 입니다.
켈프 잎의 표면은 좀 미끄럽지만 그 밑은 '뽀드득' 소리가 날 것처럼 반드럽고 부들거립니다.
수표면 가까이에서 햇살을 받은 켈프 잎사귀는 반투명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산타 크루즈 섬의 북쪽 해안선은 거친 파도와 바람을 막아줄 작은 만(灣)들이 많이 발달해 있는데요, 이 곳에서 파도와 함께 살랑거리는 켈프는 참 아름다웠습니다.
켈프는 물고기들의 좋은 은신처 입니다. 그래서 켈프 주변에서는 다른 곳 보다 많은 물고기들을 볼 수 있지요.
그렇게 한가롭게 켈프 숲을 누비다가 그 뒤로 갑자기 깊고 푸른 바닷속 풍경이 나타나면 순간 겁이 좀 나기도 했습니다.
생태계와 인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켈프. 그러나 이곳 남부 캘리포니아의 켈프 숲은 점차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일부 지역의 켈프는 예년에 비해 90%나 감소되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도 지구온난화로 해수온도가 높아지면서 켈프가 살기 힘든 환경이 조성되었고, 수달이나 불가사리와 같은 성게 포식자의 개체수가 줄자 보라성게의 개체수가 일부 지역에서는 60배나 불어났고, 배고픈 성게가 켈프를 말끔히 먹어치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외래종인 '아시안 켈프'의 침범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채널 아일랜즈는 중국과 미국을 오가는 대형 화물선의 항로인데요, 이들 화물선이 중국 바다에서 담아온 선박평형수(ballast water) 속에 아시안 켈프의 포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과거에는 아시안 켈프의 포자가 켈리포니아 앞바다에 방출돼도 이곳의 낮은 수온 때문에 살아 남지 못했지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수온도가 높아지면서 이제는 이곳에서도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이죠.
기후변화는 단순히 온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태계 곳곳에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또 불가사리-성게-켈프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생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각 부분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 한 부분이라도 훼손되면 자칫 생태계 전체가 위험해 질 수 있는 것이지요.
아무쪼록 계속된 연구와 보전노력으로 켈프 숲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서상원 (캘리포니아대학교 환경과학경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