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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상원 Sangwon Suh Sep 28. 2015

#03 올룰롤로 가는 길: 지뢰밭의 코끼리

어제 인터넷 뉴스를 보니 의정부시내에 멧돼지 두 마리가 출현했단 기사가 있다. 놀란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가능지구대 경찰관들이 실탄을 쏴 한 마리를 사살하고 도망간 또 다른 한 마리를 쫒고 있단다. 인터뷰했던 소방 당국 관계자는 멧돼지를 발견하는 즉시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올룰롤로 가는 길

소떼를 모는 마사이족

출장차 왔던 나이바샤에서 마사이 마라로 가는 길. '올룰롤로'라는 마사이 마라의 관문까지 230km 남짓이지만 차로 5-6시간 정도가 걸린다. 왜냐면 소떼를 몰고 길을 건너는 마사이족 때문에 자주 정차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로교통이 발달한 나라에서 온 운전자나 탑승객 입장에서는 열불 터지는 일이다.


한 시간이나 왔을 까? 가던 차가 또 속도를 늦춘다. 또 소뗀가 하고 있는데 이번엔 뭔가 좀 다르다. 트럭 한대가 길 밖으로 나가 떨어져 있고 그 옆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또 도로를 따라 그쪽으로 걸어 가는 행렬이 길다. 가까이 가서야 무슨 일 인지 알 수 있었다.

올룰롤로 가는길에 목격한 코끼리 로드킬

코끼리가 트럭에 치인 것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코끼리는 이미 죽어 있었다.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맛있는 코끼리 고기를 얻으려고 온 것이란다. 처음 온 사람들은 고기를 좀 가져간 모양인데 지금은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총을 들고 와서 통제를 하는 통에 서로들 눈치만 보고 있다.


로드킬

'헐, 코끼리 로드킬이라니. 역시 케냐는 스케일이 다르구나.'


처음엔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올룰롤로로 가는 길에서 목격한 이 사건은 여행 내내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요컨대 내가 목격한 코끼리의 로드킬은 케냐의 야생과 문명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동물이 차에 치어 죽는 것을 미국에선 로드킬(roadkill)이라고 한다. 보통 스컹크나 너구리 같은 작은 동물들이 많이 죽는다. 그러나 노르웨이에서 산길을 운전하다 보면 노르웨이말로 엘리그(elg)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무스(moose)라고 부르는 큰 사슴을 조심하라는 표지판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렇게 큰 동물을 들이받는 사고가 실제로 간간이 발생한다고 한다. 호주에서는 캥거루를 조심하라는 표지가 많고 강원도 산길엔 고라니 주의 표지판이 있는 것처럼.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에서도 몇 년 전 큰 길가로 내려오던 흑곰을 어떤 할머니께서 모시던 차량이 들이받아 차량은 반파되고 흑곰은 즉사했으나 할머니께서는 큰 부상이 없으셔서 뉴스에 나왔던 것이 기억난다. 할머니께서는 인터뷰에서 곰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얼마나 깜짝 놀라셨는지를 실감나게 설명하셨다. 그런데

곰은 얼마나 놀랬을까?

산에 뚫린 고속도로는 곰의 입장에서 보면 누가 허가도 없이 자기네 집 뒷마당에다 사격장을 만들어 놓고 알아서 총알 잘 피해 다니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누가 누구의 권리를 침해하나?

소떼를 몰고 길을 건너는 마사이족 때문에 정차를 하게 되면 운전자는 도로를 마음 놓고 빨리 달릴 수 있는 권리를 마사이족에게  침해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마사이족 입장은 좀 다르다. 조상 대대로 소를 먹이러 다니던 땅인데 갑자기 누군가 길을 내 놓고는 차를 달려 자신들과 소들을 위험하게 하니 말이다.


글머리의 멧돼지 얘기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는  


왜 멧돼지가 시내에 나타나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야, 너희들! 왜 우리가 살던 데에 함부로 들어와서  우리한테 총질이야?


멧돼지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멧돼지 입장에선 인간은 참 '황당한' 족속인 것이다.


코끼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상 대대로 아카시아 잎을 찾아 마음 놓고 다니던 땅에  이리저리 도로가 뚤린다. 건널목을 이용할 줄도 교통법규를 이해할 줄도 모르는 코끼리에게 도로는 지뢰밭이나 마찬가지다. 인간들은 코끼리의 뒷마당을 어느새 지뢰밭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마사이 마라에서 만난 코끼리 가족. 아기 코끼리 중 한 녀석이 다른 한 녀석에게 한참을 짓궂게 장난을 건다.

악순환

뿐만 아니다. 습성상 장거리를 이동하며 먹이를 찾는 코끼리는 지뢰밭을 건너다 몇몇 가족을 잃고서야 찻길로 가면 안된다는 걸 힘들게 배웠다. 코끼리는 죽음을 슬퍼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몇몇 안 되는 동물 중 하다. 자꾸 새로 생기는 도로 때문에 코끼리의 이동 범위는 점점 좁아져 간다. 불안해진다.


더구나 도로교통이 발달하고 서구 문명이 유입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유목을 포기하고 정착해 농사를 짓는다. 먹이를 찾을 수 있는 땅이 줄어 배가 고픈 코끼리는 주변에 갑자기 늘어난 경작지의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 일 년을 열심히 지은 농사를 코끼리의 한 끼 식사로 망치는 건 우습다. 화난 농부는 코끼리에게 복수를 한다. 사살하기도 하고 전기충격 울타리를 설치하기도 한다. 코끼리는 더 화가 나고  불안해진다. 농부들의 원성도 높아만 간다. 이런 악순환이 오늘도 케냐에선 계속되고 있다.


이 악순환은 앞으로 더 자세히 얘기할 마사이 마라가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의 한 단면이다.   


배우러 가는 아이들

올룰롤로 가는 길 중 B3는 그나마 잘 포장된 도로다. B3를 나와 C13을 타고 또 80km가량을 가야 하는데 이 길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가는 길 허허 벌판에 엔콜코리 남자 중학교가 2km 가면 나온다는 표지판이 있다.   

엔콜코리 남자 중학교 2km 표지판.

얼마쯤 가다 교복을 입고 걸어가는 남자 아이들 한 무리를 만났다. 보통 10km 정도 떨어진 학교를 걸어 다니는 것은 예사라고 한다.

비포장도로를 걸어 하교하는 어린 학생들

아이들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읽고 쓰는 것을 배워 자신들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랄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사이족을 비롯한 이 지역 원주민들도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버리고 점차 서구화된 교육과 생활 방식에 눈을 뜨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마사이 마라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올룰롤로 관문에 도착하자 트랜스마라 카운실에서 나온 군인과 수색견이 타고 온 크루저를 수색한다. 대체로 밀렵군이 가지고 들어오는 실탄, 총, 덫 같은 것이 있는지를 수색하는 것이라고 한다.  

올룰롤로 관문에 도착해서 차량과 짐 검사를 받고 있다.

이 관문을 지나면 드디어 야생동물의 지상낙원 마사이 마라 국립보호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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